[기자 칼럼] 그들은 아직도 여기에 있다  


지난 2월, 나는 로마에 있었다. 3주간의 유럽 여행에서 내가 머무른 마지막 도시였다. 그곳에서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다. 나는 여기에서 밥을 먹다가도, 세수를 하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문득문득 그곳을 생각한다. 발길이 닿는 여기저기마다 무심하게 펼쳐지던 오래되고 거대한 유적들의 광경을 생각한다. 가는 곳마다 줄을 길게 늘어서 있던 다양한 인종의 관광객들, 그 앞에서 아무렇게나 날아오르던 퉁퉁한 비둘기 떼들을 생각한다.


길거리에서 셀카봉을 팔던 아저씨들은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곤니치와’를 외쳤다. 식당 앞에서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들도 나를 보며 외쳤다. 니하오! 막상 식당 안으로 들어가 보면 나에게 바가지를 씌우기 위한 마음가짐으로 중무장한 웨이터가 퉁명스럽게 영어를 할 수 있냐고 물었다. 하지만 이탈리안의 억양이 잔뜩 가미된 그들의 영어에 ‘익스큐즈미?’라고 되묻기라도 하면 그들은 한숨을 쉬며 피곤하다는 듯 제스쳐를 취했다. 어딜 가나 그랬다. 나도 영어를 말할 수 있다고, 그런데 너희의 발음은 정말 거지같다고, 나는 한국말로 중얼거렸다. 유난히 친절했던 택시 기사는 여지없이 세 배의 요금을 요구했다. 길을 물어보려고 다가가면 누구든 인상을 쓰며 노, 라고 말했다. 소매치기들은 호시탐탐 내 가방을 노렸다. 마음이 자꾸 움츠러들었다. 나는 돈이 나오는 어눌한 기계가 된 기분이었다. 이것이 내가 겪은 로마인 이야기이다.


교황이 살고 있는 바티칸 시티를 품은 그 오래된 도시에서, 동양이라고는 오직 일본과 중국밖에는 모르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곳에서, 비(非)백인이자 비(非)서양인이자 비(非)카톨릭신자인 나는 며칠 동안 완전한 타자로서의 삶을 체험했다. 그들은 나에 대해 잘 몰랐고, 나도 그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여행지에서의 감상적 기분이 더해져 나는 무척 쓸쓸했고, 집으로 돌아가 엄마를 보고 싶었다. 원래대로 지금 여기의 나로 돌아와 그때를 돌이켜본다. 그런데 타자의 삶이라니? 대체 내가 배제된 타자들의 외로움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다는 말인가? 고작 며칠 동안 겪었던 쓸쓸함을 아직까지도 곱씹으면서 말이다. 내가 안전하게 안착해있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배제되는 수많은 타자들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나는 원래 내가 있었던 자리로 돌아왔다. 그들은 아직도 여기에 있다.  


신아현 기자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1 08:5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