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읽기] 인간의 이익추구에 대한 정당화


허쉬먼. 앨버트. <열정과 이해관계>. 김승현 역. 1976(1994). 나남출판.



김경필(본교 사회학과 박사과정 수료)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행위를 하는데 있어 손익계산을 판단의 준거로 삼는 경우가 많다. 특정한 행위를 할 때, 그 행위가 나에게 이익이 되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합리적 행위이고, 한 개인이 이러한 행동을 했을 때, 대부분의 경우에는 비난받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이익을 극대화시켰을 경우 찬사를 받는 경우도 많고, 언제인가부터는 국가의 정책이나 사업도 손익계산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지만 인류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이익의 추구는 기피되는 행위였다. 고대 동서양의 철학자들은 대부분 이익 추구를 목 높여서 비판했고,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인간으로 여기지도 않으려 했다. 기독교 시대에도 이는 마찬가지여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금전과 소유의 욕망을 권력욕 및 색욕과 더불어 인간의 삼대 죄악으로 규정, 비판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정당화되어 오늘에 이르렀고, 많은 사람들은 고대 이론가들의 이야기보다는 스미스의 이야기에 더 익숙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우리시대의 대표적인 이론가 중 한 명인 앨버트 허쉬먼의 고전 『열정과 이해관계』에는 이 질문에 대한 사상사적인 대답이 제시되어 있다.



무해하고 온화한 돈벌이

허쉬먼에 따르면 이익의 정당화는 사상사적으로 볼 때, 17, 18세기에 상업과 산업의 발달을 환영하고 옹호하였던 사람들에 의해 가능해졌다. 그들은 당시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맥락에서 이익 추구를 옹호했다. 중세 이후로, 특히 17, 18세기 동안 빈번해진 전쟁과 내란 때문에 종교적 가르침을 대신하여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엄격히 규율할 새로운 행위 규범을 찾고 있었고, 상업과 산업의 발전이 바로 이런 규범으로 작용하리라고 기대했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상행위에 종사하게 되면 악행을 저지를 수 없을 뿐 아니라 군주의 변덕, 자의적 정부, 모험적 외교정책에 쐐기를 박게 된다는 말이다. 저자에 따르면 내외적인 질서를 유지하기에는 위험한 제도로 인해 당시 항상 위협받고 있던, 사회적 파멸을 피하기 위한 방책을 찾는 데서 자본주의의 확산이 가능했다.


이 책의 서문 앞에 나오는 몽테스키외의 말은 이러한 생각을 단적으로 잘 보여준다. “열정이 인간을 사악해지도록 부추기지만 이해관계에 얽매어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몽테스키외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상거래는 날마다 관찰할 수 있는 야만적 방식을 다듬고 부드럽게 한다”. 몽테스키외는 이른바 ‘온화한 상업(doux-commerce)'론을 설파하며, 상업은 질서와 규칙, 경제성과 온화함을 주기 때문에 상업을 통해 창출된 부는 긍정적 효과를 낳는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열정을 강제와 억압을 통해 없애기보다는 이해관계를 통해 견제한다는 논점인데, 이것은 칼뱅과 같은 이들의 주장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것이었다.



스미스와 상상력의 종말

허쉬먼은 이러한 생각이 아담 스미스 이후로 맥이 끊긴다고 지적한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다양한 감정과 열정을 다루지만 사람들의 주된 욕망은 물질적 복리를 증진시키는 것이라 결론짓고, ‘국부론’에서 이 목표가 어떤 조건에서 성취되는가를 자세히 분석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야망, 권력욕 및 존경에 대한 욕구가 경제발전에 의해 충족된다고 주장함으로써 열정이 열정에 대항하고 이해관계로 열정에 대항한다는 생각을 뿌리 채 흔들어 놓았다. 스미스는 결국 열정과 이해관계를 동일시했고, 스미스 이전 많은 이들이 규명하려 했던 이해관계가 열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사색은 끝났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책의 마지막 절에서 허쉬먼은 당대의 현실을 이야기하며, 과거 유산이 사라진 것을 개탄한다. 우선 그는 맑스주의자들의 자본주의 비판을 논하며, 이것이 정당하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자본주의의 억압과 인간소외를 이야기하는데, 사실 자본주의는 파괴적인 인간의 충동과 어떤 성향들을 억누르고 단순하고 예측가능한 일차원적 인간성을 만들어 내려고 했던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비판은 번지수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푸리에, 프로이드, 베버의 주장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데, 그 이유는 이들의 비판에는 많은 열정으로 충만한 ‘완전한 개성’의 시대였던 이전 시대가 당대 사람들에게는 몰아내야 하는 사악함으로 가득한 세계로 인식되었다는 점이 간과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주 인용되는 마지막 구절에서 허쉬먼은 우리가 과거 자본주의 옹호론을 이해함으로써 자본주의에 대한 논쟁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쟁점의 해결은 차치하고라도 논쟁의 수준이라도 좀 올려보자는 것이다. 당대는 물론 현재에도 추앙받는 이론가들인 케인즈나 슘페터조차 적어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저자가 보기에 과거 자본주의 옹호론자들이 주장한 논점을 반복하거나 조악하게 축소시켜놓는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1 14:1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