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우칼럼] 하이데거를 사랑한 철학자들


박민욱(철학과 석사과정)

작년 초에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개인일기인 이른바 <검은 노트>가 출판되면서 유럽에서는 그의 친나치적 성향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되었다. 아직 한국에는 하이데거의 검은 노트>가 번역되지 않아서 직접 확인할 수는 없지만 외신의 보도에 따르면 하이데거의 사적인 기록물에 친나치적이고 반유대적인 내용이 곳곳에서 확인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그는 생전에 나치즘 혐의에 관해 단지 5년간의 공적인 학문활동금지 처분을 받았을 뿐이다.


하이데거의 철학적 사유가 갖는 탁월함과 하이데거의 행적은 별개의 문제일까? 하이데거의 사상은 분명 생전에나 사후에나 현대유럽철학에 큰 영향을 끼쳤고 그의 저작들은 지금도 여전히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적어도 누군가가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탐독한다고 해서 그를 마치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즐겨 읽는다는 사람을 대하듯이 이상하게 여길 수 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철학자 하이데거의 탁월함과 학문적 공로는 나치종사자 하이데거에 대한 책임과 비난에 대해 정당화나 옹호의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전후 독일은 모든 분야와 지위를 막론하고 친나치적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처벌이 이루어졌으나 하이데거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규정’을 적용받지 않았다. 하이데거는 탁월한 철학자라는 이유로 많은 프랑스 철학자들(대표적으로 장 폴 사르트르)의 지지를 받았고 하이데거의 나치 부역 전력에 대한 평가를 맡았던 자크 라캉은 이러한 자국의 여론에 큰 부담을 느꼈었다. 하이데거의 옹호자들의 논거는 다음과 같다. 1)철학과 정치사상은 별개이며 하이데거의 저작은 나치즘의 흔적이 전혀 없다. 2)천재적인 철학자의 능력(Geschick)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3)나치즘 동조는 단지 하나의 실수였다. 그는 그저 ‘수동적 방관자(Mitlaufer)’였을 뿐이다. 이들의 주장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철학자 하이데거와 나치즘을 옹호한 하이데거는 별개의 두 인격인가? 한 철학자의 천재성과 그의 실수할 권리는 과연 양립할 수 있는 근거인가? 전쟁에 휩싸인 독일에서 ‘어쩔 수 없이’ 혹은 ‘실수로’ 나치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다는 일반 독일인들의 처지가 한 대학의 총장이자 탁월한 사상가로 평가받는 인물에 대한 타당한 변명이 될 수 있을까? 그 누구보다도 큰 사회적 책무를 짊어진 한 대학의 총장이자 교수가, 그 누구보다도 엄밀해야 할 ‘철학자’가 말이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동시대의 철학자들의 사랑과 지지 덕분에 전후 독일의 나치즘 숙청으로부터 보호를 받았다. 그리고 하이데거는 이들의 지지에 대해서는 실제로 ‘수동적으로 방관’했다.


확실히 하이데거를 변호했던 철학자들은 그를 위해 적극 나섰다는 점에서 하이데거를 사랑했던 자들이지만, 단지 하이데거만을 위했던 ‘사랑에 눈이 먼’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직업이자 소명인 이른바 철학함은 ‘지혜(sophia)’에의 ‘사랑(philos)’이며 이 사랑으로 참된 것을 이성의 눈으로 ‘올바르게 보고자 함’을 의미한다. 학문의 길을 걷는 자가 마땅히 사랑해야 할 바는 올바름과 진리이지 누군가의 사상이 아니며 누군가 그 자체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우리가 사랑해야할 바는 올바른 앎이고 ‘누구의 앎’은 물론 일정부분 올바른 앎에로 인도하는 길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누구의 앎’ 자체를 진리로 여기는 순간 그 앎은 ‘독단(Dogma)’이 된다. 지금 사랑하는 게 ‘좋은 앎’인지 ‘누구의 앎’자체인지의 구분은 ‘사랑의 눈으로 더 깊이 (愛智)와 광신(狂信)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참되고 더 깊은 앎을 위해서는 우리가 알고 있고 배우고 있는 그 앎이 ‘정말 올바른지’ ‘그가 정말 옳은지’를 따져 물어야 하며 이 따져물음을 우리는 다름 아닌 ‘비판’이라고 부른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1 15:4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