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의 가능성을 꿈꾸며

독일의 신학자이자 반나치운동가로 활동했던 마르틴 니묄러Friedrich Gustav Emil Martin Niemöller는 그의 유명한 시 <그들이 왔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나를 잡으러 왔지만 나를 위해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연대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이 유명한 구절은 투쟁적 의지를 북돋워야 하는 상황에서 자주 인용되고는 하는데, 그 근거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한 부분을 파고든다. 우리는 고립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거대 세력에 맞서 권리를 주장하거나, 의혹에 관한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매체들은 ‘외부세력’이라는 표현을 즐겨 활용한다. 이는 문제되는 사안의 직접 당사자가 아닌 개인이나 단체를 두고, 별도의 불순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를 덮어씌우기 위해 쉽게 차용되는 표현이다. 약자들 간의 연대를 이루고자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외부세력이란 이름표를 달아줌으로써, 그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에 관계없이, 누가 말하는지에 주목하여 갈등의 본질을 효과적으로 흐리게 된다.
그러나 연대의 주체가 이른바 ‘성분’이 다른 사람들로 구성되는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니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취재하면 반드시 그들 주변의 ‘외부세력’을 목격하게 된다. 사고를 겪지 않은 사람들이 사고 피해자들과 연대하고, 그 지역에 살지 않는 사람들이 그 지역의 갈등 해소에 참여한다. 얼핏 보면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고, 그래서 더욱 다른 속셈을 의심하기 쉽다. 그러나 이들은 공포를 이겨내고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연대할 수밖에 없음을 경험으로써 이해하게 된 사람들이다.

이번 달 본지에서는 다시 돌아온 4월을 맞아, 4.16 세월호 참사와 밀양 송전탑 투쟁을 돌아보는 취재를 진행하였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밀양 주민들의 고통이 여전히 현재형이라는 사실을 남아 있는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의 주변에 ‘외부세력’으로 지칭되는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슬퍼할 만큼 슬퍼했고, 고통을 함께 나눌 만큼 나눈 사람들이 각자 일상으로 돌아간 후에도, 그들은 당사자들의 주변을 떠나지 않고 있다.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투쟁의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는 일. 그것은 어쩌면 가장 소극적인 의미에서 ‘연대’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나의 삶은 언제까지 안전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나에게 왔을 때, 나를 위해 말해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4 16:1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