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화, 『지극히 내성적인』, 창비, 2016.

섬뜩한 심리의 효과적 배치

  2012년에 단편소설 「팜비치」로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최정화의 첫 번째 소설집 『지극히 내성적인』이 출간되었다. 약 열 편 내외의 소설이 실리게 되는 첫 번째 소설집은 한 작가의 주된 특성을 이해하고 차후 작품세계의 흐름을 짐작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에서 소설가 오난영과 마주한 “나”, 미옥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어쩌면 작가라는 얘길 먼저 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앞에 서면 괜히 내 속마음을 들켜버리는 게 아닌가 싶은 서늘한 구석이 있었답니다.”(131쪽) 작가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설계자일 수도 있고 유희를 제공하는 광대일 수도 있으며 시대를 읽는 지식인일 수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최정화에게 소설가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정신분석가에 가깝다.
  ‘내성’이라는 키워드를 책 제목으로 내세운 데서도 알 수 있듯 최정화는 내면세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작가다. 작품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설명을 듣는다면 그녀의 소설은 의식의 변화나 감정의 흐름을 과도하게 추종해 무질서하고 지루할 것이라는 편견이 생길지도 모르겠으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구체적으로 말해보자. 최정화는 첫째로 섬뜩한 심리에 천착하고 둘째로 그것이 효과적으로 드러나도록 플롯을 잘 짠다. 「작가의 말」을 빌려서 최정화의 소설작법을 말해보면 다음과 같다. “어딘가 굉장히 소름 끼치는 구석”이 있는 경험에서 창작의 계기를 얻은 다음, “이야기가 입을 벌렸다가 다무는 느낌” 혹은 “내내 흐물흐물한 미소를 짓다가 마지막에 입을 쫙 벌”리는(271쪽) 느낌으로 소설을 완성하라. 최정화는 내면을 다루되 질서보다는 균열에 집중하며 그것이 도드라지도록 선택과 배제의 과정을 거쳐 서사를 조직한다. 이성적으로 사리를 분별하며 심리적으로 안정돼 있는 인간형은 최정화의 소설 속 중심인물의 성격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매우 적다. 사람은 신경증적 존재라는 것이 최정화의 인간론이라면 당신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 최정화 소설의 메시지다.
『지극히 내성적인』에 수록된 첫 번째 작품인 「구두」는 남편과 두 자녀가 있는 여성인물 “나”의 내면을 다룬 고백체 소설이다. 삼십대 후반에서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화자는 최근에 신경이 예민해져서 전주의 외삼촉댁에서 잠시 쉴 계획이며 자신이 없는 동안 집안일을 대신할 가사도우미를 구하는 중이다. 한 여자가 면접을 보기 위해 “나”의 집에 방문하면서 내적갈등이 시작된다. 과거에 유행했으나 지금은 부도난 브랜드의 망가진 구두를 신고 온 여자는 구직자임에도 불구하고 화자의 집에서 전혀 위축되지 않고 마치 자택에 돌아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여자가 안주인으로서의 자신의 지위를 탐하는 것 같다고 여긴 “나”는 침입당한 것 같아서 불쾌하다. 남편이 여자에게 친절하게 대하자 화자는, 전에는 사람들에게 친절한 남편의 성격을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무척 불합리하다고 판단한다. 식탁에서 둘째 아이가 여자 옆에 앉으려 하자 “나”는 커다란 소외감을 느낀다. 여자의 별자리는 황소자리인데, 첫째 아이가 별자리 운세에 따르면 황소자리 여자는 관능적 쾌락을 좋아한다고 설명하자, 화자는 여자의 음흉한 본색이 폭로되었다고 믿는다. 객관적 근거 없이 피해망상증에 사로잡힌 “나”는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자신의 편견을 강화하는 확증편향성을 보인다.
  ｢구두｣의 긴장감은 외부의 사건보다는 그것과 마주한 “나”의 심리적 태도가 수용적인가 배타적인가에 따라서 유발되고 해소된다. 여자는 교통사고로 인해 남편과 사별했다. 화자는 여자의 슬픈 사연을 듣고 여자에게 연민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이 정보를 곡해하고 이용한다. 남편에게 여자가 고아이며 여자의 배우자와 아이들도 모두 사망했으니 여자에게는 지인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기운이 있는 것 같다는 식으로 저주에 가까운 거짓말을 한 다음 “나”는 우월감과 승리감에 도취된다. 심리적 안정감을 획득하자 화자는 이전까지와는 달리 여자의 인상을 좋게 본다. 여자가 “나”의 사랑스러운 자녀들과 더불어 행복감을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해야겠다는 관대한 생각도 하면서 여자를 채용하기로 한다. 그런데 뒤늦게 여자가 본인의 헌 구두 대신 “나”의 구두를 훔쳐 신고 간 사실을 발견하자 화자의 심리는 다시 격변한다.

  “그 여자가 내 구두를 탐낸 거라면, 그래서 바꿔 신고 간 것뿐이라면 그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고작 구두 한켤레쯤은 없어져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전 자꾸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 여자가, 자기가 나인 줄로 착각하고 내 구두를 신고 갔다고 말이에요.”(26쪽)

  “나”에게 있어서 여자는 이미 안주인이라고 하는 하나의 상징적 지위를 두고 대립하는 경쟁적 관계로 상정돼 있다. 화자는 여자의 물욕과 도둑질 때문이 아니라, 여자가 본인을 안주인이라고 착각한 것이 틀림없다는 자신의 확신 때문에 치를 떤다. 주관적 강박에 사로잡힌 “나”에게 객관적·경제적 손실은 하등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외부자의 시선에서 보면 화자가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쉽게 진단할 수 있겠지만 화자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답답해 보이겠지만 일인칭의 세계라는 것이 대체로 이러하다.
최정화는 개인의 좁은 내면세계를 형상화한 다음 그의 역린을 포착하고 자극하여 그 세계를 비틀어 놓음으로써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앞으로도 최정화의 소설에서는 덧없는 경쟁구도에 매몰된 채 타자를 배척하고 실수와 갈망을 무한반복하며 세월을 허비하는 독선적 인물들이 등장할 것이다. 모두가 모두를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가 도래한다면 등골이 오싹해 질 일은 없을 테니 최정화의 창작적 욕망도 사그라질 것인데, 아무래도 단기간에 그럴 것 같지는 않으니 앞으로도 최정화의 신작들을 계속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5 00:2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