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우칼럼> 윤명식 본교 철학과 석사과정 재학

여성혐오 시대의 단상

  “한국에서 남자로 살면서 (남자라는 이유로) 직접적으로 이득을 봤다고 생각한 적 있어?” 언젠가 친구가 나에게 질문했을 때 나는 쉽게 답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남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아왔기 때문이었다. 남자인 내가 남자의 시선 밖에서 세상을 보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가정생활, 교육 과정, 친구들과의 대화나 각종 매체의 영향 속에서 나는 남자로서 세상을 보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남자다움의 규정은 사람들마다 상이했지만 그 속에는 ‘남자는 여자보다 강하다.’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신체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남성이 우월하다는 전제는 공기처럼 짙게 깔려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남성의 경제적 우월성이 감소하자, 남성 기득권에 익숙한 이들로부터 남성 역차별에 대한 분노가 표출됐다. 그런데 남성이 피해를 입었다고 호소하는 사례들은 여성들이 남성들을 미워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이를 바로잡고자 정책적인 오류를 시정하는 일이나 고착화된 성 역할을 바꾸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애꿎은 여성 전체 혹은 한 개인을 미워하는 것은 부당하다. 한국 경제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은 권리나 이익을 가져가게 된 것도 아니다. 여성과 남성의 임금격차는 계속해서 줄어들고는 있지만 출산,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승진의 어려움 등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남성의 경제적 지위가 예전보다 낮아진 것은 남성 대 여성의 문제라기보다는 저임금 정책, 열악한 노동환경으로부터 발생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신체적인 우월성으로부터 하나의 가상이 반복해서 덧씌워진다. 오랜 옛날부터 사냥이든 농사든 여성보다는 남성이 더 잘 할 수 있었으며, 따라서 남성이 경제적으로 더 유능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더 우월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 가상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와는 다른 배경을 가진 과거의 예시를 끌고 오는 것은 지금의 남성우월성을 정당화하거나 복원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성의 우월함을 정당화한다고 해서 갑자기 취업이 잘 되고 임금이 오르는 마법이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다. 사무실에서 생수통을 갈 수 있는 것이 사회적 우월함으로 연결될 것 같지는 않다. 왜 그 우월한 체력으로 유치원 교사가 될 생각은 하지 않는지 묻고 싶기도 하다. 재생산 노동이나 저임금 노동은 여성의 몫일까?
  성 역할에 대한 인식이 변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가 겪는 경제적인 상황(외환위기, 미국발 금융위기 등)에 따라서 그때마다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신체적인 차이가 존재하지 않거나, 신체적 차이가 무의미하므로 성 역할이 고정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아니다. 단지 누군가가 여성 혹은 남성이라는 이유로 행동을 강요받거나 제약받는다면, 각자의 성에 맞는 가치관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거나, 나아가 그 가치관에 익숙해져야만 한다고 요구된다면 이는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성은 약자가 아니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온순하고, 수동적인 사람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절대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는 것 또한 아니다. 여성은 남성과 같은 권리와 기회를 누려야 할 것이며, 동등한 주체여야 할 것이다. ‘나는 여성을 좋아하므로 여성혐오자가 아니야.’라고 하더라도 여성을 단지 성적 대상으로만 볼 뿐이라면, 여성을 동등한 인격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면 여성혐오라고 할 수 있다.
  성 평등의 성취는 국가를 위해, 출산을 위해, 아이를 위해 이뤄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성 평등은 인간의 행복추구권으로서 요구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고작 누군가의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며, 특정한 자리에서 기분 나쁜 말을 하지 않도록 평소에 연마하는 것도 아니며,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제기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페미니즘은 단지 여성만의 문제를 다루는 여성만의 운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성이 가부장인 양 이 운동을 ‘허락’한다거나 ‘불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여자로서의 삶을 산 적이 없다. 그러나 이해하고자 시도하는 것은 가능할 것으로 믿는다. 페미니즘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 않더라도, 조그만 고민이나마 계속한다면 더 나은 생각과 실천을 할 가능성이 내게도 있지 않을까 한다. 혹은 당신에게도.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4 20:1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