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수업, 높은 등록금

  대학원에서 생활하는 일이 녹록치 않다는 사실에 대해서라면 이미 진학 이전부터 숱하게 들어온 바였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긴 하다. 하지만 내가 놀랍게 생각했던 것은 ‘대학원’이 ‘수업’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도 별 볼 일이 없거나 전혀 쓸모가 없어 보일 지경이기도 하다는 점이었다. 나는 대학원 수업의 질에 대해서만큼은 상당한 기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불만을 아주 강하게 느꼈던 것 같다. ‘수업에 의존하려들지 말라’는 선배들의 조언을 들어보지 않았던 것이 아니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타율적으로 공부하지 말라’는 주문으로만 여겼지 실제로 수업 자체에서 뭔가를 배우기가 어렵다는 뜻으로 이해하지는 않았다.
  수업은 대개 선생들의 최근 관심사에 따라 짜여졌다. 다시 말해 한 학기의 수업을 개설하는 데 있어서 학생들의 의견은 별로 반영이 되지 않거나, 전혀 반영이 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선생들의 최근 관심사였을 뿐이므로, 선생들이 수업의 대요와 세목을 낱낱이 파악하고 있을 리 없었다. 대학원 수업이라는 게 원래 다 그래야 좋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선생이 지금 막 공부해 나가고 있을 것들을 수업의 내용으로 삼았을 때 선택될 수 있는 수업 방식은 ‘발제’ 방식뿐이었다. 학생들은 정해진 커리큘럼에 맞춰 해당 주차의 수업 내용을 요약해간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 그것을 읽는다. 남의 글이 대개 그러하듯이 그 자리에서 슥 읽어서는 의미를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많다. 수업을 열심히 준비해왔다고 해서 그 사실이 꼭 달라지는 것만은 아니다.
  그건 선생도 마찬가지다. 선생 역시 학생이 써온 글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학생의 발제문 읽기가 끝나면 선생은 ‘자 그럼 각자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해보자’고 툭 던지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은 침묵한다. 발제자도 침묵한다. 너도 나도 잘 모르는 것들. 이야기를 던져봐야 시시콜콜한 이야기들뿐이다. 누군가가 질문을 던진다. 수업을 열심히 준비해온 모양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잘 모르겠는데요…….” 그러나 그의 궁금증을 없애주는 답변은 대개 나오지 않는 편이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한 학기가 다 끝났을 때, 내게 남아 있는 지식은 ‘들어본 적만 있을 뿐’인 희미한 것들밖에 없다. 하지만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한 학기 동안 수업을 세 개씩이나 들으면서 해야 했던 과제며 텍스트 독해며 하는 것들이 대단히 많은 시간 투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나는 도대체 왜 우리가 이처럼 힘만 들고 얻는 것은 없는 수업 방식들에 대해서 마냥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모든 수업이 학생들의 필요와 수요에 따라 열려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이상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한 학기에 몇 과목쯤은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수업이 개설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내가 뭘 잘 몰라서 늘어놓는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난 지금껏 ‘다음 학기에 어떤 수업이 개설되었으면 좋겠습니까?’하는, 당연한 질문을 받아본 기억이 한 번도 없다. 또한 수업을 개설하는 선생들은 자신의 최근 관심사만 수업할 게 아니라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들, 혹은, 어떤 질문이 나오더라도 자신이 그에 대해서는 꽤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을 수업해야 하는 게 아닌가? 내 공부가 부족하여 힘든 것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불만도 없다. 내가 불만인 것은 힘은 힘대로 들고 배운 건 배운 것대로 없는, 한 학기였다. 그리고 그런 한 학기에 500만원에 육박하는 등록금을 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등록금을 벌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는 데 있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4 22:2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