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 〈인권중심 사람〉 소장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새로운 연대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을 잊어서라도 편해져야 할 사람들은 끝내 그러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다. 반면 그 누구보다 그것을 철저히 기억하고 반성해야 할 사람들은 그것을 잊게 하기 위해, 그리고 기억하는 이들을 매도하기 위해 발악을 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어느덧 2년이 되어간다. 한편 아직 편해질 수 없는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정작 불편해야 함에도 그렇지 않은 이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본지는 세월호 2주기에 즈음하여 인권운동가 박래군 선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사 후 2년, 여전한 정부와 여당의 방해
  작년 1월 1일, 시민들 600만 명의 서명 운동으로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 발효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8월에는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가 구성되어 조사 활동에 들어갔다. 참사가 일어난 지 2년이 지난 지금, 조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물었다. “무언가 변화가 생기길 기대했는데 별로 달라진 게 없어요. 특조위가 만들어졌지만, 정부와 여당이 집요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방해하고 있습니다. 특조위 구성으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특별법의 내용을 보면, 특조위의 활동 기한이 1년입니다. 6개월 연장이 가능하고 3개월간 조사 보고서를 작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법이 발효된 게 작년 1월 1일이죠. 그런데 위원들은 3월에야 임명되고, 그 뒤로도 예산 배분과 인력 배치는 계속 미뤄졌어요. 그나마 작년 8월에 조사관이 배치되고 예산을 받아 조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올해 6월까지 조사를 끝마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조사 개시 시점을 작년 1월로 보는 것이죠. 특검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습니다. ‘충분한 조사 활동 시간 보장’이 우리의 주장이고, 여기에는 세월호가 인양된 뒤 정밀 조사할 수 있는 기한까지 포함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정부는 국회에 제출한 2016년 예산안에서 특조위가 요구한 예산안의 69%를 삭감함으로써 특조위의 활동 시한을 올해 6월로 보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이에 4·16가족협의회와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이하 ‘4·16연대’)는 지난 2월, 특조위의 조사 활동 기간, 권한 등과 관련된 특별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3월에는 이 개정안의 처리와 특검안 의결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80시간 동안 삭발 단식 농성을 했고, 시민들의 릴레이 필리버스터가 이어지기도 했다.  

                                                                               세월호라는 ‘사건’과 대한민국
  한편 작년 해양수산부 주도로 마련된 시행령안에서 특조위의 조사범위는 ‘재해·재난 예방대책 마련’이라고 명시된 애초의 특별법과 달리 조사범위를 ‘검증 및 세월호 관련 대책’으로 축소되기도 했다. 이처럼 정부는 세월호를 하나의 ‘사고’로 그 의미를 축소하고 조사를 되도록 빨리 종결시키려 하고 있다. 반면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사건에 대한 엄정한 조사와 참사 재발 방지를 위한 안전사회 건설을 주장한다. 그렇다면 세월호는 왜 하나의 ‘사건’이며 사회 전체의 문제인가. “세월호 사건은 그 동안 감춰져 있던, 혹은 우리가 애써 외면해 온 이 나라의 문제들이 한꺼번에 드러난 사건이라고 봅니다. 세월호 사건 초기 대응의 한심한 수준, 주요 언론들의 오보와 허위 보도는 이미 잘 알려져 있지요. 사법부가 보여주는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고요. 또 개인적으로는 20년간 쌓여온 신자유주의의 모순이 한순간에 폭발한 것이 세월호 사건이라고 봐요. 선박 규제를 왜 완화했습니까? 누가 그걸 허락했습니까? 어쨌든 살 수 있었던 사람들이 죽었고, 구조되지 않았습니다. 왜 책임져야 할 이들은 아무도 여기에 대해 반성하지 않습니까? 결국 국민의 목숨은 기득권 세력의 수익 다음으로 그 순위가 밀려난 것이죠.”
  
                                                                             마지막 기회와 새로운 가능성
  4·16연대는 세월호 사건 관련 사안에 대응하기 위해 피해당사자, 시민단체, 시민회원 등으로 구성된 ‘통합적 상설 단체’로, 작년 6월 창립되었다. 4·16연대의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 물었다. “4·16연대의 목표는 크게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건설’입니다. ‘책임자’란 탁상 위의 책임자까지 포함하는 것이죠. 이들을 처벌하기 위해서 정확한 진상 규명이 선행되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는 세월호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사회를 건설해야 합니다. 물론 쉽지 않은 작업이죠. 사실 앞에서 제시한 목표들은 하나의 사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사회 구조 자체를 바꾸는 ‘변혁’에 가까운 것이기도 해요. 진실을 은폐하려는 사람들이 많고, 이들이 곳곳에서 고리를 만들어 기득권 세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죠. 책임 소재를 밝히고 처벌하는 것은, 그들을 압도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지요.”  
  시민 600만 명의 서명이 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진 것이 박 위원이 말한 ‘힘’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지만, 기소권도, 수사권도 주어지지 않은 이 특별법은 박 위원의 말처럼 가야할 길이 ‘쉽지 않은’ 것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박 위원은 이를 평가절하하기보다 기득권 세력을 압박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세월호 사건에서 이러한 힘을 더 강하고, 더 지속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전에도 새로운 사회 건설을 촉구하는 많은 움직임이 있었지만, 세월호 사건의 진행 양상은 그것들과 조금 다른 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시민 단체, 혹은 어떤 운동 단체가 활동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 당사자들이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시민들이 폭 넓고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죠.
  이러한 양상은 기존의 ‘대책위 운동’이나 ‘풀뿌리 운동’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소위 ‘대책위 운동’의 경우 어떤 이슈가 생길 때마다 대책위를 만들고 수직적인 질서로 운영되다보니 한 사람이 여러 현안에 소모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풀뿌리 운동’의 경우 지역 사회, 혹은 공동체 단위의 사안에 힘을 발휘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연결되어 사회 전체를 향한 ‘정치적 힘’이 되지 못했죠.
  4·16연대의 규약에서도 밝혔지만, 이제는 수평적 네트워크에 기반한 연대가 필요합니다. 우선 ‘큰 그림’보다 ‘작은 실천’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나와 나의 주변 사람들, 그리고 지역 사회가 공유하는 문제점에 대한 활동들에서부터 시작해야죠. 그 다음에는 이 움직임들이 서로 연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다른 문제에 대해 활동하는 사람들이 연대할 수도 있고,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다른 활동을 벌일 수 있습니다. 지금도 매일, 혹은 일주일 단위 등으로 세월호 진상규명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단위가 100곳이 넘어요. 해외로까지 넓혀 보면 더 많고, 대학생 단위들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4·16연대는 이 분들을 연결시키고 공유와 토론의 장을 만들어드릴 뿐, 어떤 일관된 활동 지침을 내리거나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작지만 자발적이고 끈끈한 운동들이 서로 촘촘히 엮일 때 진정한 민주 사회를 만들 정치적 동력이 만들어진다고 봅니다.” 인터뷰 내내 박 위원은 ‘꾸준함’, 혹은 ‘그래도 해야 한다’와 같은 말들은 반복하기도 했다. “소설가 박민규 씨도 말했지만, ‘내 구명조끼 입어’라고 친구에게 말했던 아이들이 우리에게 건네준 마지막 기회입니다. 몇 년이 걸리든 해야죠. 그래서 작지만 끈질기게 이어갈 실천을 강조하는 겁니다. 대학원생 여러분들도 각자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겁니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제가 절대로 할 수 없는...또 저도 강사 생활을 해봤습니다만, 해결되어야 할 일들도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문제에, 그리고 곳곳에서 일어나는 인권 관련된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곳곳에 거점이 생겨나, 나중에는 촘촘히 연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인터뷰: 곽태진, 문장원 기자
■ 정리: 문장원 기자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5 00:0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