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에 대한 오해와 진실: 하드코어 힙합에 대하여

강일권(힙합/알앤비 미디어 리드머 편집장, 음악평론가)


  지난 2005년, 가리온의 “불멸을 말하며”라는 곡이 발표됐을 당시 한국 힙합 팬들 사이에서는 새삼 ‘하드코어 힙합’에 관한 담론이 불같이 솟아올랐다. 대부분 제대로 된 하드코어 힙합이 나왔다며 반기는 분위기였는데, 그럴수록 난 의아함만 더해갔다. 가리온 특유의 정제된 언어로 만들어진 가사의 그 곡은 하드코어 힙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두 하드코어 힙합을 프로덕션, 즉, 비트 스타일로 구분하던 게 문제의 원인이었다. 실제로 난 종종 sns를 통해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도대체 하드코어 힙합이 뭔가요? 드럼 강하게 때려주는 뭐, 그런 힙합음악인가요?’. 얼핏 이제는 누구나 다 알고 있을 법한 장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음악적으로 대충 감은 잡아도 구체적인 정의를 알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포털 사이트에 검색을 해보니, 아니나다를까 여전히 해당 장르에 대한 당황스러운 해석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이번 시간엔 바로 이 하드코어 힙합(*필자 주: ‘하드코어 랩’이라고도 표기한다.)에 대해 제대로 알려드릴 참이다.

  사실 하드코어 힙합의 정의는 이미 그 단어 자체에 드러나 있다. 이 장르의 선구자들인 스쿨리 디(Schoolly D), 부기 다운 프로덕션스(Boogie Down Productions),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 N.W.A, 쿨 쥐 랩(Kool G Rap) 등의 랩만 들어봐도 알 수 있듯이 하드코어 힙합은 주로 남자들의 시점에서 매우 공격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을 담고 있는 랩을 통틀어 일컫는다. 욕설이나 직접적인 성적 표현 등을 여과없이 뱉는 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프로덕션적으론 아직 쥐-펑크(g-Funk)로 대표되는 웨스트 코스트 힙합이 수면으로 부상하기 전인 1980년대에 등장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이스트 코스트 힙합, 그중에서도 붐뱁(Boom Bap)의 영향력 아래에서 성장해 왔다. 그렇다 보니 음악적으로도 매우 육중하거나 둔탁한 드럼과 단출한 샘플 루핑이 주가 됐던, 우리가 흔히 로우(Raw)한 비트라고 말하는 초기 이스트 코스트 힙합의 스타일을 곧 하드코어 힙합의 음악적 특성으로도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반드시 알아야 할 점은 하드코어 힙합은 음악적인 스타일로 구분하는 게 아니라, 랩, 즉, 가사가 어떠한 표현과 내용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정의된다는 사실이다.

  자, 그런데 이쯤에서 한 가지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여기저기 게시판을 둘러보고 검색을 해보니 의외로 많은 분이 하드코어 힙합에 대해 아래와 같이 해석하고 있었다.

“하드코어 힙합은 단순히 공격적이고 직설적인 내용의 힙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힙합’, 혹은 ‘본질을 잃지 않은 힙합’을 일컫는 것이다.”

  그런데 한 마디로 말씀드리자면, 이러한 해석은 너무 확대해서 해석한 것이다. 물론, ‘hard-core’라는 단어에 ‘핵심적인’이라는 뜻이 담겨 있긴 하다. 그러나 하드코어 힙합에서 ‘hard-core’는 포르노 영화나 B급 영화 등에서 볼 수 있는 노골적이고 거침없다는 의미다. 예전에 가리온이 두 번째 싱글 [그 날 이후]를 발표했을 때 하드코어 힙합에 대해 위와 비슷한 발언을 한 적이 있긴 하다(‘본질을 잃지 않은 힙합’). 하지만, 절대 혼동하면 안 된다. 당시 공연장에 있었던 (99% 확실한) 내 기억에 따르면, 가리온이 언급한 ‘본질에 더 다가가는 힙합이 하드코어 힙합’이라는 말은 자신들이 새롭게 또 하나의 의미로 정의하고 싶다는 거였지, 현재 장르로서 언급되는 하드코어 힙합의 의미 자체를 부정했던 것이 아니었다.

  또 한 가지 많이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하드코어 랩과 갱스터 랩(Gangsta Rap)의 차이일 것이다. 일단 큰 특성 면에서는 두 장르가 다르지 않다. 단지 갱스터 랩은 실제 갱 출신이거나 그들과 연관 있는 랩퍼들이 (주로 총, 마약, 여자와 관련된) 갱스터 컨텐츠에 초점을 맞춘 내용의 랩을 발표하고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되면서 또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쉽게 구분이 될 것이다. 둘 다 노골적이고 공격적인 랩 음악인 건 같지만, 하드코어 힙합은 갱스터 랩이 다루는 주제의 범위보다 더 포괄적인 내용을 담는다는 것. 그러니까 따지자면, 갱스터 랩은 하드코어 힙합의 서브에 놓이는 셈이다. 갱스터 랩은 최초 하드코어 힙합의 영향력 아래에서 탄생했지만, 곧 갱스터 랩이 엄청나게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하드코어 힙합을 대중에게도 알리게 되었다는 점은 흥미로운 사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건 하드코어 힙합은 거침없고 노골적인 표현과 내용들을 담아내는 랩을 통틀어 일컫는 장르이기 때문에 비트의 스타일로 구분할 수 없다는 점입다. 단지 초기 하드코어 힙합이 인종차별 문제를 비롯한 블랙 커뮤니티와 관련한 주제에 주로 시선을 들이댔다면, 오늘날에는 그 범위가 스웨거(Swagger)와 파티 등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이 달라진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5 00:4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