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을 만드는 공간이 햄버거를 만드는 공간보다 사람을 위하지 못 한다/ 김민섭

  재작년 여름에, 아들이 태어났다. 기쁘고 소중해야 할 날이지만 산후조리원에 아내와 아이를 두고서는 혼자 밖으로 나왔다. 아내가 어디에 가는지 물었지만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답했고, 내려가는 길에 신생아실 유리 바깥으로 아이의 잠든 얼굴을 한 번 바라보았다. 결혼하면서 나는 아내에게 한 달에 80만원을 꼭 가져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것은 시간강사로서 아내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생계비였다. 어떻게든 그 약속을 지켜왔지만, 이제는 그만한 돈으로 육아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가장이 되었다는 무게를 짊어지고서는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무엇이든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던 중 패스트푸드점 앞에서 발길이 멎었다. 거기에는 새벽 물류하차 일을 할 사람을 구한다는 구인광고가 붙여져 있었다. 그런데 4대보험을 보장한다는 문구에 눈길이 닿았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도 혼인신고를 하지 못 했다. 독립된 세대가 되는 순간 건강보험에 새롭게 가입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대학은 시간강사에게 건강보험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역가입자가 되어 10만 원 내외의 보험료를 부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건강보험을 보장하는 아르바이트라니, 나는 무엇엔가 홀린 듯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매니저를 만나 면접을 보았고, 다음 날엔 새벽 6시 30분에 출근해 실습을 했다. 그렇게 나는 패스트푸드점의 노동자가 되었다. 일이 끝나고 나니 매니저가 고생했다며 커피를 한 잔 챙겨 주었다. 산후조리원에 있는 아내에게 커피를 가져다주자 생전 먹지도 않는 걸 웬일로 샀느냐고 묻고는, 이내 달게 마셨다. 그때부터 일을 그만둘 때까지, 아내에게 커피를 한 잔 가져다주는 것이 삶의 작은 습관이 되었다.

  지금껏 나의 건강보험을 보장해 주고 있는 곳은 대학이 아닌 패스트푸드점이다. 정규 교양 과목의 담당 교수로 계속 이름을 올렸지만, 대학은 단 한 번도 나에게 정해진 시급 이외의 무언가를 보장해 주지 않았다. 내 청춘을 바친 공간, 나는 대학을 나의 직장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믿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패스트푸드점에는 노동자를 위한 매뉴얼이 있었다. 걸레질을 할 때도 10여 가지가 되는 여러 용액 중 특정한 것을 골라 몇 리터의 물에 희석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고, 똑같은 빵에도 아래나 위냐에 따라 힐과 크라운이라는 각각의 용어가 있었다. 한 번은 감자박스를 나르다 넘어져 다쳤는데 매니저는 나를 근처의 지정병원에 데려갔고 법인카드로 진료비를 모두 결제해 주었다.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니 치료가 길어질 것 같으면 언제든 말해달라고도 했다. 아들의 돌에는 패스트푸드점 명의의 축의금이 나왔고, 일을 그만두면서는 그 달의 급여일에 맞추어 퇴직금을 지급 받았다. 그런데 대학의 경우는 많이 달랐다. 나는 대학원에 다니는 4년 동안 학과사무실의 행정조교로 일했고, 수료하고서는 4년 동안 정규 강의를 맡았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나를 위한 어떤 제도나 매뉴얼이 갖추어져 있다고 생각해 본 바가 없다. 교수의 연구실 이사를 돕다가 다리를 다쳐 한 달 동안 깁스를 했을 때도, 진료비를 나 홀로 모두 부담했고 억울함조차 호소할 곳이 없었다.

  나를 노동자이자 사람으로 대우해준 곳은 오히려 대학이 아닌 패스트푸드점이었다. 이것은 어느 특정 대학의 슬픈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대학에서 오늘도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놀라울 만큼, 대학원생이나 시간강사를 위한 어떤 체계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주당 실질 근로시간이 15시간에 미치지 못 한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의 예외 대상이 된다. 이러한 제도적 허점을 대학은 마음껏 넘나드는 것이다.

  작년에 시행이 유예된 ‘시간강사법’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 시도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대학은 비용을 핑계로 시간강사를 해고하고 기존의 정규직 교원에게 더욱 많은 강의를 종용하고 있다. 그 많은 등록금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묻고 싶다. 패스트푸드점에서 나에게 지출한 건강보험 비용은 14500원이었다. 대학이 3학점 당 강사 1명에게 지출해야 할 건강보험 비용은 20000원이 채 안 된다.

  지식을 만드는 공간이 햄버거를 만드는 공간보다 사람을 위하지 못 하는 것은, 몹시 서글픈 일이다. 노동에 어떤 위계를 두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수고롭게 해 삶을 영위하는 모두는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다. 하지만, 적어도 대학은 사회를 올바른 길로 이끄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나는 그것이 대학이 가진 시대적 소명이라고 믿는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5 03:2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