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공부하기

몇 달 전에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라는 소설을 읽었다. 참 직설적인 제목이라고 생각하며 책의 첫 장을 펼쳤을 때쯤에는, ‘한국이 싫어서’ 다른 나라로 간 주인공이 다른 나라에서 온갖 고생을 한 뒤 다시 한국에 정착한다는 내용이 전개되리라고 추측했다. 내 추측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소설의 주인공은 호주로 가서 온갖 고생을 한다. 그러나 한국에 정착하는 것은 거부한다. 왜? 호주에서의 삶이 결코 순탄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그것이 한국에서의 삶보다는 낫기 때문이었다. 소설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헬조선이 싫다면 헬조선을 떠나자!’
그러나 세계 어디서나 통할 법한 기술 하나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해외 연구자들에게는 생소한 분야일 한국학을 연구하는 내 입장에서 한국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결혼을 앞두고, 한국을 떠나 사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예비 배우자 또한 고려대학교의 대학원생이다. 둘 다 박사과정생이기 때문에 학교 근처에 신혼집을 얻어야 하는 상황이다. 오래전부터 결혼을 생각해왔던 우리는 학교에 원우 기숙사 혹은 기혼자를 위한 주거지가 생기길 기다려왔다. 서울대는 대학원생 부부가 학교 근처에서 거주하며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기혼 대학원생에게 아주 적은 월세비만 받고 아파트를 제공한다. 고려대에도 비슷한 시설이 들어설 것이라 믿었다. 총학생회에서도 꾸준히 이 문제를 위해 애를 쓰고 있었고, 김병철 전 총장도 기혼자를 위한 시설의 확충을 공약으로 내세우지 않았던가. 그러나 끝내 원우 기숙사 혹은 기혼자 기숙사는 만들어지지 않았고, 경제력이 없는 학생인 우리는 집 장만을 위해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예비 배우자는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어 한다. 유학을 위해 1년 내내 GRE, 토플 같은 영어시험들을 달고 살다가 최근에는 외국 대학원에 원서를 보내놓고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느라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가는 예비 배우자를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꼭 외국에서 공부해야만 이유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예비 배우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 석사과정을 되돌아보면, 우선 등록금을 내기 위해서 조교 일을 해야 했지. 그런데 그 걸로는 생활비 충당은 안 되니까 과외나 학원 같은 교외 아르바이트를 추가로 해야 하고. 내가 유일하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는 것이었어. 여기서는 그게 불가능해. 그런데 외국 대학에서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주면서 공부에만 전념하라고 하니까. 그래서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은 거야.”
학부 때는 성적우수 장학금을 받았기 때문에 등록금 부담이 없었던 학생이, 학부생 보다 훨씬 더 공부에 전념해야 하는 대학원생이 되자 오히려 등록금과 생활비를 모두 벌어야하기 때문에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원생이 받을 수 있는 장학금은 너무나 적은데, 등록금을 충당할 수 있는 조교직조차도 대폭 축소되었다.
공부에 전념하고 싶은 학생들에게는 정말 ‘한국을 떠나는 것’만이 답이 되는 현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학교 측에 묻고 싶다. 금수저가 아닌 이상 전업 학생이 가정을 꾸린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로 치부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학교의 제도적인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4 17:2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