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사회학과 조인석

나는 지금 컴퓨터를 이용해 이 글을 쓰고 있다. 다 쓴 후에는 프린터로 출력해 퇴고할 것이다. 비단 컴퓨터, 프린터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조명기기, 세탁기, 전기밥솥에 이르기까지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거의 모든 제품들은 전기에너지를 이용하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하루에 중산층이 부리는 ‘에너지 노예’가 ‘인간 노예’ 150명의 노동과 맞먹는다고 한다. 현대의 중산층은 전기를 통해 과거의 여느 군주 못지않은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전기에너지는 어떻게 ‘생산’되고 ‘분배’되는 것일까? 현재 한국의 전력은 약 85%가 화석연료와 원자력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화석연료에 의한 발전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여 지구 온난화를 유발하고, 원자력 발전은 방사능과 핵폐기물 문제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매우 ‘反환경적’인 발전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화석연료와 원자력은 대규모 발전설비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소수의 중앙집중식 발전설비를 통해 전력을 생산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러한 설비는 대부분 전력수요가 낮은 지역에 위치하기 때문에 전력 생산지와 소비지가 이원화된다. 필연적으로 대량 생산한 전력을 대량 소비지인 도시로 분배하기 위해 송전탑 역시 건설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이 말은 ‘밀양 송전탑’으로 알려진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건설사업’에 반대하는 밀양주민들의 구호이다. 우리가 소비할 전기에너지를 생산지로부터 가져오기 위해 송전탑을 건설한 밀양지역에는 지금까지 2명의 주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130여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대를 이어 마을을 지키고, 스스로의 힘으로 땅을 일군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35층 높이의 송전탑 69개가 관통하게 된 결과이다. 인심 좋았던 마을은 찬반양론으로 갈라졌고, 몇몇 주민은 평생을 살았던 마을을 떠나기에 이르렀다. 초고압 송전탑에 의해 전자파에 노출된 주민들의 암 발병률은 급격히 높아질 것이고, 이들의 전 재산인 토지의 가치는 폭락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처럼 문제가 많은 발전방식이 유지되는 것일까? 다양한 원인 중, 나는 ‘공기업 독점체제’라는 구조적 원인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간 한국의 전력체제는 생산과 분배, 판매를 모두 한국전력이 독점하는 공기업 독점체제를 유지해 왔다. 한국전력은 이윤을 추구하는 ‘독점기업’이기 때문에 환경오염이나 주민에 대한 위해는 상대적으로 경시할 수밖에 없다. 대신 대규모 발전설비를 건설함으로써 지속적으로 발전량을 증대시키고 이를 통해 독점이익을 유지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상당한 수준의 전력수요가 뒷받침 되어야 하는데, 한국전력은 전기요금을 매우 낮게 책정하는 방식으로 전력수요를 유지해 왔다. 실제로 한국은 전기요금이 중유가격보다 낮은 거의 유일한 국가이며,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합리적 선택을 한 결과, 2002년 이후 전기소비는 68% 급증했다. 결국 독점체제 하에서 한국전력은 전기를 저렴하게 공급함으로써 수요를 증가시키고, 이를 구실 삼아 화석연료와 원자력을 이용하는 대규모 발전설비를 건설하여 다시 공급을 늘리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간 정부는 한국전력의 민영화를 여러번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여기에는 생활에 필수적인 전기의 생산을 냉혹한 시장의 논리에 맡길 수 없다는 소비자의 우려 역시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렇다면 공기업 독점체제에 의한 전력의 대량생산·대량소비는 정당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무엇이 옳은지 말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화석연료와 원자력에 기반한 현재의 발전방식은 엄청난 환경오염을 야기하고 있다는 ‘사실’과, 나를 포함한 다수의 무관심한 소비자들이 수십명의 에너지 노예를 부리는 것은 결코 ‘값싼 전기’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는 수많은 사람의 눈물을 타고 흐르고 있다는 ‘값비싼 사실’을 기억할 때만,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4 16:4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