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표절 논란’과 ‘문학 권력’ 논쟁

지난 여름, ‘신경숙 표절 논란’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문단을 비롯한 학계에 ‘문학 권력’ 논쟁이 점화되었다. 사건의 시작은 소설가 이응준이 허핑턴포스트지에 기고한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이었다. 이응준은 신경숙 소설 <전설>의 한 대목이 일본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의 특정 대목과 거의 동일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신 씨의 표절 사실을 고발했다. 이응준은 지금까지 문단 내부에서 신경숙의 표절 사실에 대한 논란이 있었음에도 문단이 이를 암묵적으로 용인해 왔다고 비판했다. 이응준은 한국문단이 표절 문제에 단호한 처방을 내리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해 이같은 악행을 고질화시켰다며 문단의 자성을 촉구했다. 이응준의 해당 기고문은 SNS상에서 회자되었으며 누리꾼들 사이에서 신 씨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졌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소설가 신경숙은 다음날 “해당 작품을 알지 못한다”며 표절 의혹을 전적으로 부인했다. 논란이 된 신경숙의 작품을 출간한 창비 또한 표절 의혹을 부인하며 신 씨의 입장에 동조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심지어 창비는 “문장 자체나 앞뒤 맥락을 고려해 굳이 따진다면 오히려 신경숙 작가의 음악과 결부된 묘사가 더 비교 우위에 있다고 평가한다”며 신 씨를 두둔했다. 이같은 신경숙을 비롯한 창비의 권위적인 태도는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다. 창비 직원 모씨는 “창비가 부끄럽다”며 ‘창비직원A(@unknownmembera)’라는 계정을 만들어 내부 비판을 감행했다.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다음날 창비 대표이사 강일우는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사과문을 게재했다.

표절 논란에서 문학권력을 둘러싼 논쟁까지
‘신경숙 표절 논란’은 단지 한 작가의 표절 여부를 둘러싼 시비에 그치지 않고 ‘문학권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로 이어졌다. 문단 내부에서 곪아 있던 고름이 터져 나오듯, ‘신경숙 신화화’에 앞장서온 대형출판사들에 대한 비판이 언론을 통해 속속들이 제기되었다. 주례사 비평과 작가 입도선매 방식으로 출판 시장을 독점해 온 대형출판사들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졌고, 특히 빅3 메이저 출판사인 창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가 이른바 ‘문학권력’으로 지목되었다. ‘문학권력’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자 문학동네는 자신들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던 비평가들에게 권위적인 방식으로 좌담회 제안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이례적으로 문단에 관심이 집중되었던 만큼 이번 가을호에 출간될 문학 계간지들의 특집 구성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실천문학󰡕(통권119호)는 신경숙 표절 논란과 문학권력을 둘러싼 쟁점들을 거의 전 권을 할애하여 비중 있게 다루었다. 󰡔실천문학󰡕 편집위원 황인찬은 “지금 필요한 것은 성찰도 진단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처방이며 수술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한국문학에 요구되는 것은 반성을 빙자한 자기혐오가 아니라 전면적인 변혁이다.”라며 권두언을 시작했다. 전반부에는 ‘젊은 작가 좌담회’, ‘문학 기자 좌담회’가 수록되었다.

문학인들 문학장 자정하고, 언론인들 문학권력 감시해야
<좌담: 한국문학의 폐쇄성을 넘어서>에서 젊은 작가들은 근래의 문학이 대중과 소통 능력을 잃어버렸으며, 문학장이 폐쇄적이라는 인식을 공유했다. 소설가 손아람은 대형출판사의 문예지가 문학을 순수하게 조명하기보다는 작가들을 지배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고 비판했다. 출판사들이 공모전을 통해 입상한 작가를 사실상 속박하고 있으며, 비평가들에게 특정 작가나 작품을 지목해서 청탁하는 방식으로 자사 출판물에 대한 주례사 비평을 종용한다고 손 씨는 비판했다. 또한 시인 서효인은 창비에서 낸 표절 해명 자료를 예로 들며 문예지의 편집위원이나 관계자들이 독자를 무시하고 기만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당부했다. 문학평론가 이만영은 “문학장 내부에서 ‘우리 안의 파시즘’이라는 심리적 메커니즘이 작동했던 것은 아닌지 성찰할 때”가 왔다며 “문학장의 문제가 사회 전체의 문제로 부상한 만큼, 실체로 드러낼 수 있을 만한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또한 편집위원 운용 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등 가시적인 방식의 자정 노력이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견해도 제출되었다.
한편 <좌담: 문단 외부에서 본 신경숙 표절 논란과 문화 권력 논쟁>에는 편집위원 김원의 사회로 권영미(뉴스1 기자), 김슬기(매일경제신문 기자), 김여란(경향신문 기자), 전진식(한겨레21 기자)가 참석했다. 이들 문학기자들은 문학 시장 자체가 축소되는 경향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권영미 기자는 문학 시장이 협소해진다는 이유로 “언론인들이 출판사나 문단에 대한 권력 감시자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며 언론의 자성을 촉구했다. 전진식 기자는 창비가 1966년부터 지금까지 근 50년째 백낙청 선생에 의해 주도된 것은 다소 비상식적인 일이라며 한국문학에 정체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문학의 위기 진단, 대안적 주체 생산 필요해
<한국문학, 위기와 활로> 특집에는 문학평론가 서영인, 이동연, 장성규, 임태훈의 글이 수록되었다. 서영인은 ｢한국문학의 독점 구조와 대중적 소통 감각의 상실｣에서 󰡔문학동네󰡕, 󰡔창비󰡕, 󰡔문학과 사회󰡕가 일종의 협업과 분점의 방식으로 한국문학의 다양성을 제한하고 독점적 지위를 확보해 왔다고 분석했다. 예컨대, 문학동네가 어린이문학상부터 대학소설상, 젊은작가상 등 총7개 문학상을 통해 새로운 신인을 발굴하면, 창비는 만해문학상, 신동엽문학상 등을 부여하여 기성 문인들에 대한 ‘문학적 인증’을 수행하는 식이다. 서영인은 “‘문학동네’가 저인망식으로 문단의 신인들을 독점하고 여기에 ‘창비’가 전통과 권위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작가들의 문학적 가치를 분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영인은 이러한 문학의 독점 현상이 오히려 문학의 다양성을 축소하고 한국문학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동연 역시 ｢문학장의 위기와 대안 문학 생산 주체｣에서 기존의 문학 권력에 대한 논의가 “변질된 문학 주체들의 변절에 대한 윤리 의식의 사변적 비판”에 국한되었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이동연은 특수한 개인이 아닌 문학장의 작동 방식을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번 신경숙 표절 사태를 통해 “지배적 문학장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잠재 의식이 폭발”되어 나왔다고 분석했다. 이동연은 ‘창비’와 ‘문학동네’가 지배적 문학장에서 일종의 ‘공모된’ 분파로 기능하고 있다면서, 이들이 신경숙 표절을 둘러싼 공론장에서 침묵하는 양상이 이러한 공모 의식을 반영한다고 비판했다.
한편 장성규는 ｢신화의 종언, 또는 한 시대의 시작: 신경숙을 둘러싼 비평 담론에 대한 비판적 에세이｣에서 신경숙 사태를 한국문학사의 맥락에서 조망했다. 장성규는 이번 신경숙 사태가 한 작가를 둘러싼 스캔들에 그쳐서는 안 되며 “한국문학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생산적 논점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장성규는 1980년대에 리얼리즘을 주창하던 비평가들이 냉철한 성찰 없이 신경숙 소설의 현실 도피적 성향과 “자폐로의 퇴행”을 “내면의 발견”이라 상찬하며 신경숙을 신화화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한국문학에서 “‘궁핍한 시대’를 견디기 위한 심미적 사유도, 이를 극복하기 위한 현실주의적 상상력도 추방”된 채 󰡔엄마를 부탁해󰡕 류의 ‘위안으로서의 문학’만이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임태훈은 ｢환멸을 멈추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시효가 다한 대학+문단+출판 시스템을 유지하려 애쓸 것이 아니라, 다양한 채널들을 마련하여 문학의 몸체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종이책이나 E-book은 물론이고 디지털 기반의 다양한 장치와 네트워크”를 통해 문학을 변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젊은 문학도들에게 “우리들의 시대에 필요한 문학을 발명하자”고 제안했다.

반성 없는 지성, 창비의 무성의한 특집 기획 논란
문단 내외에서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이번 가을에 출간될 메이저 문예지 󰡔창작과 비평󰡕, 󰡔문학동네󰡕, 󰡔문학과 사회󰡕의 특집 기획에 이목이 집중되었다. 먼저 󰡔문학과 사회󰡕는 “진정한 반성은 사과라는 형식적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변화를 증명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면서, 문학평론가 황호덕, 김영찬, 소영현, 김형중, 강동호가 참석한 좌담회 내용을 수록했다.
문제는 창비였다. 󰡔창작과비평󰡕(통권169호) 권두언에서 편집주간 백영서는 “신경숙의 해당 작품에서 표절 논란을 자초하기에 충분한 문자적 유사성이 발견된다는 사실에 합의”했다면서도, “하지만 동시에 그런 유사성을 의도적 베껴쓰기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으며 “무의식적인 차용이나 도용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표절이라는 점이라고 신속하게 시인하고 문학에서의 ‘표절’이 과연 무엇인가를 두고 토론을 제의하는 수순을 밟았어야 했는지” 모른다며 공개사과문을 발표하던 당시와는 사뭇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지난 6월15일 강일우 대표가 공개사과문을 통해 “이번 사태에 대해 신중하게 판단하지 못한 점은 어떤 사과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현재 제기된 사안에 대해서는 작가와 논의를 거쳐 독자들의 걱정과 의문을 풀어드리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내부의 시스템을 재점검하고 필요한 후속조치를 마련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라고 공언한 것을 떠올린다면 사실상 퇴행에 가깝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보아도 명백한 표절 사실조차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반성을 요구한 독자들을 오히려 가르치려 든 셈이다.
이번 󰡔창작과 비평󰡕의 특집으로 기획된 <긴급기획: 표절 문제와 문학권력>에 수록된 글들도 ‘긴급기획’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신경숙과 창비를 옹호하는 글이 수록되었다. 먼저 문학평론가 정은경은 ｢신경숙 표절 논란에 대하여｣에서 신경숙에 대한 마녀사냥식 재판을 그만두고, 냉정과 이성을 갖추고 자성적인 태도를 지닐 것을 요청했다. 정은경은 “센티멘털리즘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이 신경숙을 찾아 읽는 것은, 신경숙 글쓰기가 갖고 있는, 냉소와 유머를 모르는 진정성에 있다”고 신경숙 작가의 작품을 옹호했다. 또한 “문제가 되었던 부분이나 ｢딸기밭｣의 경우 표절로 볼 수 있”지만 “그밖의 것은 모방이나 영향 관계”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윤지관은 특집의 마지막에 수록된 글 ｢문학의 법정과 비판의 윤리｣에서 “신경숙이 표절작가도 아니거니와 상습표절 혐의에서도 완전한 무죄임을 주장코자 한다”며, 신경숙의 표절 혐의를 부인했다. 창비가 문학권력으로 지목된 것에 대해서도 강력한 반발심을 드러냈다. 윤지관은 “문학권력이라는 것이 문학에 있어서는 존중받아야 할 하나의 ‘권위’”라면서 이른바 문학권력론자들이 “10여년 전 제기했던 문학권력 비판을 그대로 복사하고 있”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번 󰡔창작과 비평󰡕 가을호가 발행되자 문단에서는 곧이어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서 개최된 토론회 <한국문학, 침묵의 카르텔을 넘어서>에서 문학평론가 소영현은 이번 창비 긴급 특집에 실린 세 편의 글이 “개별 글의 내용과 무관하게 창비의 무성의한 태도를 그대로 반영하는 듯해서 창비의 성의 있는 답변을 기대했던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씁쓸함을 금할 길 없다”고 밝혔다. 소영현은 “문학권력과 문학장 논란은 이제 사과나 특정 작가의 표절 여부를 판정하는 것만으로 수습되고 정리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번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대한 실망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오는 9월 초에 발행될 󰡔문학동네󰡕 특집란에 수록될 글들에 귀추가 주목된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4 22:4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