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 경제학 박사학위 논문(노동경제학 전공)


한국 최저임금제 연구: 임금결정의 ‘수행성’을 중심으로

이정아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최저임금의 고용효과’, 즉 최저임금제의 도입이나 최저임금 수준의 인상이 고용에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관한 연구는 경제학에서 가장 많이 연구된 주제의 하나이다. 이 주제의 연구 결과들을 종합하는 서베이 연구 결과들을 다시 종합하는 서베이 연구들이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오랫동안 연구해왔으나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여전히 진행 중인 ‘최저임금의 고용효과’ 연구는 최저임금제 및 최저임금에 대한 연구가 아니다. 이 연구들에서 최저임금은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노동시장 이론이 현실과 경험에 일치하는지 여부를 가늠하기 위한 ‘이론 리트머스지’일 뿐이다.
  최저임금의 고용효과 연구는 최저임금제가 고용정책이 아닌 임금정책 수단이라는 매우 단순하고 근본적인 이유로 최저임금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최저임금제의 도입과 운영으로 기대하는 명시적, 실질적 목적이 국가, 연구자, 당사자에 따라 상이하게 해석된다고 하더라도 고용 성과에 있지 않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제 운영의 목적이 무엇인지, 목적과 관련하여 얼마나 기대를 충족하였는지를 평가하지 않고 목적과는 무관한 고용효과를 분석하는 연구가 주류를 이루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임금정책 수단으로서 최저임금제의 실질적 기능을 고찰하는 것이 본 논문의 목표였다.
  최저임금제는 임금에 작용하도록 설계된 제도이다. 따라서 최저임금제의 실질적 기능에 관한 고찰은 다름 아닌 임금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최저임금제의 대상인 임금을 현실에서 복잡한 내적・외적 구조를 갖는 개념으로 파악하지 않는다면 최저임금 역시 임금의 하한인 하나의 ‘숫자’일 뿐이다. 그러나 현실의 임금은 단순하지 않으며 또한 변화한다. 따라서 단순한 최저임금 수준의 국제 비교는 현실에 관하여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 임금의 다양성의 결과는 최저임금제의 다양성이다.
  본 논문에서는 임금을 임금수준, 임금구조, 임금체계의 세 차원을 갖는 입체적 개념으로 제시하였다. 개인들이 받는 임금수준은 임금수준들의 사회적 격차들로 구성되는 임금구조로부터 독립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임금수준은 임금구조의 영향을 받아 결정되지만 동시에 임금구조를 형성하므로 임금구조 역시 임금수준에 대해 독립적이지 않다. 임금의 이와 같은 특성이 사회학에서 ‘구조의 이중성’ 개념과 유사한 점에 착안하여 ‘임금결정의 수행성’을 제시하였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은 임금결정 주체들을 수동적이고 반응적인 가격수용자로 상정하지만, 임금결정을 수행적 과정으로 볼 때 비로소 현실 임금의 복잡성과 다양성은 통제하고 생략해야 하는 내용이 아닌 분석 대상이 될 수 있다. 임금결정 주체들의 수행적 과정인 임금결정에서 효과를 갖는 관습과 규범, 제도와 전략, 재량은 본질을 왜곡하는 힘이 아니라 구성요소이다.
  현재 근로기준법은 근로계약 상의 소정노동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시간에 대해서는 50%의 할증수당을 지불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따라서 초과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은 초과노동수당을 반영하여 높아져야 하지만, 초과노동 비중이 높은 일자리의 소정노동 급여가 낮다. 노동자들은 실제로 자신의 노동시간을 선택하지 못한다. 노동자들이 선택하는 것은 노동시간이 아닌 일자리이며 선택한 일자리의 규범을 수용하게 되므로,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들의 선택을 반영한 것이 아닌 수용된 규범일 뿐이다. 그리고 장시간 노동이 규범화된 일자리에서 초과노동의 할증수당은 ‘사전적으로’ 고려되어 낮은 소정노동 급여가 책정된다. 제도와 규범, 전략과 재량의 결과로 한국의 임금체계는 매우 복잡하게 발달해왔다. 원래 임금체계는 임금의 결정 기준과 구성 체계를 모두 지칭한다. 그 중 임금 구성 체계에서 초과수당을 비롯한 각종 수당 문제는 오랫동안 통상임금 문제로 인식되어 왔는데, 제도와 규범 및 전략의 작용과 임금결정 주체들의 능동성을 배제하면 단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지역별 임금격차의 ‘설명되지 않는’ 상당 부분은 그저 ‘설명할 수 없는’ 차이로 남게 된다. 그러나 임금결정의 수행성의 관점에서 임금구성체계도 임금의 한 차원을 구성한다.
  임금의 세 차원, 그 중에서도 임금구조를 중심으로 한국 최저임금제의 기능을 고찰함으로써 최저임금이 임금구조 일반의 기저로서 역할을 해왔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인상된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 수준의 노동자들이 해고되는 것이 아니라 임금구조가 그만큼 밀려 올라간다. 최저임금은 임금구조 전반에 걸쳐 폭넓게 영향을 끼쳤지만 특히 최저임금의 약 2.5배 미만 구간과 강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가능한 반론은 최저임금이 오히려 임금의 자연 상승분을 예측하여 결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최저임금은 노사 대표의 교섭에 의해 결정되며 명시적 기준의 반영조차 불분명하다.
  무엇보다 한국 최저임금제 도입 후 25년 이상의 기간 동안 임금구조의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를 예측해왔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1988년 최저임금제 도입 시기부터 외환위기까지 임금구조는 높은 수준에서 압축되었으므로 최저임금 인상률은 평균적인 임금 인상률에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지나며 저임금화를 주요 특징으로 하는 임금 불평등 양상이 심화되어 왔다. 임금구조 내 높은 수준의 임금 분포는 더욱 더 줄어들고 있지만 그 수준은 매우 높아진 반면, 최저임금과 매우 밀접하게 변동하는 저임금 부문은 갈수록 두터워지고 있다. ‘평균 임금’ 또는 ‘중위 임금’ 등의 지표는 이와 같은 임금구조의 변화를 포착하지 못하므로, 본 논문에서는 과거 던롭(John T. Dunlop)이 제시한 등위임금선(wage contours) 개념을 응용하여 장기 임금구조 변화 추세를 분석하였다. 비정규직의 확대와 시간적 궤를 같이 하는 저임금화는 최저임금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노동인구 비중의 증대를 가리킨다.
  이처럼 최저임금제가 어떤 기능을 수행해왔으며 임금정책으로서 어떻게 평가할지를 논의하기 보다는 고용효과에 연구가 집중된 배경은 학설사적이다. 뉴질랜드에서 세계 최초로 도입된 후 120년이 지났지만 처음 도입시기부터 지금까지 최저임금제는 여전히 그리고 꾸준히 논쟁 속에 있다. 그러나 논쟁의 맥락이 달라졌다. 논문에서는 20세기 초까지의 논쟁을 ‘기생산업 논쟁’, 20세기 중반의 논쟁을 ‘한계주의 논쟁’,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의 논쟁을 ‘새로운 경제학 논쟁’으로 이름 붙였다. 앞의 두 논쟁은 임금결정과 노동시장에 대한 경쟁하는 두 접근들, 한계주의 접근과 잉여접근 간의 긴장을 반영하였다. 그러나 마지막 논쟁은 한계주의 접근 안에서 경험에 부합하도록 이론을 변경하고 정교한 모델을 고안하기 위한 논의, 즉 고용효과 분석으로 축소되었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1990년대 이후 연구들 속에서 최저임금이 단지 ‘이론 리트머스지’로 다루어져 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임금결정과 노동시장의 한계주의 접근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최저임금제의 고용의 관계를 묻는 질문 자체를 문제시해야 한다. 임금결정의 수행성 관점은 한계주의 접근이 가정한 임금결정과 노동시장이 현실의 그것과 같지 않다고 본다.
  그렇다면 최저임금제의 운영으로 달성해야 할 목적은 무엇인가? 최저임금법에 명시된 목적을 받아들이고 법리적 해석을 해야 할까? 한국의 최저임금제는 세계에 최저임금제가 도입되고 90년도 더 지난 시점에 도입되었으며 미국의 공정노동기준법을 원형으로 했다.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역사적 상황과 배경, 사회구성원들의 기대는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과 합의가 필요하다. 최저임금제로 달성해야 할 목적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 인터뷰>

1. 경제학을 선택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배운 것 중 가장 재미있었다고 생각했고, 학부를 졸업할 때는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중 노동경제학을 선택한다면 진정성 있는 연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평소에도 고민하고 걱정하는 사회적 상황이나 문제들과 연구자로서 직접 마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경제학은 다른 사회과학들과 구분되는 주제로 한정되기 보다는 구분되는 언어로 인해 높은 진입장벽을 가지는 학문이기에, 경제학이 유일한 통로가 아니지만 저로서는 경로의존적이었다고 해야겠네요.

2. 논문 주제를 선정하시게 된 이유와 논문을 통해 독자들에게 꼭 전달하고자 했던 내용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 민주주의와 시민권에 관해서 임금정책이 갖는 중요성을 다룬 정치철학 분야의 책을 읽다가 문득 한국의 최저임금에 대해서도 이런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이미 경제학에서 최저임금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에 필요한 논의라고 여긴 것입니다. 저는 논문에서 한국에서 최저임금이 임금구조의 기저 역할을 해왔으며 그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낮은 노조 조직률과 취약한 교섭문화, 비정규직의 비정상적인 증대가 그 배경이며, 이는 최저임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배경이기도 합니다. 최저임금제는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그러나 최저임금 운영의 한국적 맥락이 현재 최저임금을 중요한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제도 운영의 환경이 변화한 것입니다. 따라서 최저임금을 다루는 연구들의 접근 방향이 근본적으로 재고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3.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다면 어떤 것들인가요?
☞ 저는 논문을 쓰며 무척 즐거웠습니다. 뭔가 다른 얘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렘도 컸습니다. 또한 논문 집필에 모든 시간을 할애했기 때문에 비교적 여유 있게 꾸준히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논문을 쓰며 동료들과 선생님들께 집필 중이거나 계획하는 내용과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조언을 구한 덕분에 생각을 정리하고 교정하는 데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저에게 고비는 오히려 논문을 완성하고 심사를 받으며 수정하는 시기에 찾아온 피로감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쓴 글을 고치고 보충하기 위해 짧은 기간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했고 긴장을 유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럴 때 주변에서 박사학위 논문은 완성이 아니라 출발이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논문을 쓴 후에 여러 번의 발표 기회가 있었는데, 토론이나 질문을 통해 제 논문의 개선을 위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제 학위 논문은 여전히 부족한 채로 남겠지만, 앞으로 더 좋은 연구를 할 수 있겠지요.

4. 논문쓰기를 앞둔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를 부탁드립니다.
☞ 한국의 오이 종자를 서양에 가져가서 심으면 선인장 모양으로 자란다는데, 저의 최근 경험을 가지고 어떤 조언을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널에 싣기 위한 논문의 집필과 학위 논문 집필이 단지 기간이나 페이지 수뿐만 아니라 고민의 결, 깊이의 측면에서 달랐다고 기억합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즐거웠다고 하지만, 지치고 회의가 들 때가 한 번쯤 오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더 즐겁게 할 수 있는 주제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5 01:2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