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 인성교육, 시간강사 그리고 고등교육법!

민영현(부산대 강사)

오늘 한국의 대학 그리고 그 곳에서 살아가는 강사의 현실은 너무나 딴 판이다.  
광복 70년, 변변한 자원이라고는 하나 없는 대한민국이 현재의 경제성장을 이루어 낸 밑바닥에는, 교육입국과 인적 자원의 확보라는 국가적 결단 그리고 이에 호응한 국민의 총화단결이 자리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교육을 담당해 왔던 한국의 대학 또한 동반 성장하였다. 하지만 여기에는 지난 38년 동안 말없이 헌신해 온 비정규직 시간강사들의 눈물 젖은 피와 땀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묵묵히 자신의 전 인생을 대학의 교육현장에서 지켜온 강사들 중 오래된 사람들은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 교육부와 대학은 오히려 이들을 애물단지처럼 그리고 법과 사회는 이들을 마치 유령처럼 취급하고 있다. 실로 대학의 시간강사는 대한민국의 국법체계 상 그 무엇도 주장할 수 있는 입을 갖지 못한 존재라 하겠는데, 이는 최근 개인적으로 처절히 경험한 사실이기도 하다. 2004년 정당한 직업군으로서의 시간강사에 대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공식적인 주문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10년이 넘도록 아무런 대응이 없었다. 시간강사는 대학의 과제일 뿐이라는 교육부, 그리고 교육부의 어떠한 지침도 없다고 하는 대학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강사들은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다.
자본과 돈에 미쳐버린 세상, 한국의 대학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의 강좌 개설 자체부터가 그러하다. 영어가 돈이 된다면 영어를, 컴퓨터라고 하면 컴퓨터를, 기술이 그렇다 하면 또 그것을 쫓아간다. 도무지 상아탑의 고고함과 엄숙함 그리고 사명감을 찾아볼 수가 없다. 게다가 세상에 배워야 할 것이 어찌 꼭 돈 버는 일과 관련되어야만 하는가? 이런 가운데 정부는 또 인성교육을 내세운다. 그러면 이제 대학에는 또 다시 인성이란 제목을 달고 숱한 교양 교과목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아니 대학이 어째서 나름의 교육목표를 갖지 않는지를 알 수가 없다. 인성교육만 해도 그렇다. 지난 30년 동안 대학을 취업기관으로 만들어 온 정부가 이제 와서 새삼 인성교육을 해야 한다는데, 도대체 인성이 무엇인지나 알고 말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스승은 사라지고 선생과 교수만 있는 대학에서 타인의 인성을 가르칠 스승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아니 우리의 대학이 과연 청년 학생들을 가르칠 만큼의 인성을 스스로 갖추었는지 오히려 반문하고 싶다.
여기에 시간강사 문제 역시 빠질 수가 없다. 지금 대학에는 시간강사와 관련된 현안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그러나 이를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갖춘 대학은 눈을 씻고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다. 이런 가운데 입법부는 시간강사 관련 법안을 주저하고 있고, 사법부는 관련 법안이 없다는 이유로 부당해고와 퇴직금 등등에서 강사에게 불리한 판정을 내린다. 더욱이 교육부는 도리어 강사들의 강의근로 시장을 축소 폐쇄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행정부는 독재요, 사법부는 사팔뜨기며, 입법부는 직무유기로, 다 한 통속인 셈이다. 이에 편승해 대학은 더욱 갑질을 자행한다. 하지만 사실상 을 중의 을에 불과한 강사들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스스로의 自存을 버리고 강의에 임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自矜을 갖지 못한 선생이 어찌 청년 학생들에게 정의와 자존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인가? 하루살이 파리 목숨의 현실에서, 과연 그 무엇으로 청년학생들을 참된 인간의 길로 이끌 수 있겠는가? 중요한 점은 교양과목과 인문사회 관련 과목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대학의 시간강사요, 이것이 한국 대학교육의 현실이라는 사실이다.
지금도 국회에서는 강사법과 관련된 논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이것이 대한민국 100년 대계, 교육입국과 관련하여 논의가 진행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저 울부짖고 있으니 혹 거지 동냥하듯, “이걸 줄까, 저걸 받을래?”하는 식의 거래와 흥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고등교육 전체와 관련하여 이 같은 접근 태도는 결단코 사라져야만 한다. 지식인에 대한 정당한 대우가 곧 사회적 이득과 연결되고, 대학의 시간강사들이 강의와 연구에 먼저 지급한 비용이 결국 사회적 손실로 남겨지는 일임을 명확히 인식해야만 한다.
지금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굳이 시간강사만을 위해 정부가 나서라고 요구하는 것은 염치가 아닐 것이다. 다만 이제 대학의 시간강사, 그들이 많은 영역에서 알게 모르게 연구해 온 그 모든 지적 자산들은 결국 최종적으로 국가의 것이며, 결국 이 사회를 위한 것임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와 태도의 변화에서부터 비로소 대학의 시간강사들에 대한 정당한 입법과 사법, 행정이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하고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4 22:5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