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물근성


의자에 앉아 오후 늦게까지 책을 읽었다. 돈이 없어 외출을 삼간 지 2주째다. 오전에 유통기한 지난 우유를 한 잔 마신 이후 마른 목을 넘긴 건 믹스 커피 몇 봉뿐이다. 배가 고파져서 냉장고를 열었다가 닫았다. 전화가 걸려왔다. 같이 일하는 선생님이었다. 월급이 들어오면 다 같이 창고형 할인 매장에 가자는 약속을 했던 것을 떠올렸다. 여보세요, 하니 들려오는 건 살짝 격양된 목소리다. 8월 5일, 아직도 월급이 들어오지 않았다. 지난달엔 7일에 입금 됐었고, 그 전 달엔 3일에 들어 왔었다. 이번 달은 언제쯤 들어오려나. 학자금 대출 이자가 두 회 분이 밀려 있었고, 전기 요금도 아직 내지 않은 상태였다. 오늘은 들어오겠지 하며 모바일 뱅킹 어플에 로그인했다 로그아웃하기도 수십 번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와 함께 결국엔 적금을 깼다는 선생님의 말에 안타까워하며 내 적금 통장 안에 잠들어 있을 숫자들을 떠올렸다. 이십여 분간의 통화 끝에 한숨을 내뱉으며 종료 버튼을 눌렀다. 배가 배로 고파졌다. 다행히 집에서 가져온 신김치가 남아 있어 들기름에 살짝 볶아 김치 덮밥을 만들기로 했다. 얼려 놓은 밥이 다 떨어진 상태라 밥도 새로 해야 했다. 쌀을 씻으면서 우러나온 뽀얀 쌀뜨물을 보니 얼큰한 된장국이 생각났지만, 된장이 없어 입맛만 다셨다. 칙칙 김을 내뿜는 압력밥솥 옆에서 김치를 볶았다. 고소한 냄새가 올라왔다. 청양고추를 좀 다져 넣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추의 목을 꺾어 김을 빼고 그릇에 밥을 퍼 담았다. 그 위에 김치를 반달 모양으로 얹는다. 책상에 앉아 반대편의 벽을 바라보며 밥을 먹는다. 정리하니 4시 반, 아직도 월급은 들어오지 않았다.
아침에는 기운이 없다. 오늘은 더 유난히 기운이 없다. 7일은 월세를 입금해야 하는 날이다. 12시가 지나고, 엄마한테 문자를 보냈다. 바쁘신지 답이 없다. 믹스 커피를 찬물에 녹여 얼음 몇 개를 띄운다. 벌컥벌컥 들이켜니 미간이 시리다. 의식도 못했는데 내 손은 모바일 뱅킹에 접속해 공인인증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다. 두근두근 심장 소리가 머리를 울리고 원망도, 짜증도 사라지고 기쁨만이 남아 윽윽, 하는 소리가 목구멍을 넘나든다. 오늘 저녁엔 마트에 가서 사치를 부려볼 생각으로 부풀어 있던 차에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월급이 들어왔다고 신이 나서 엄마한테 자랑했더니, 엄마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진작에 말하지, 한다. 목이 메고, 괜찮아요, 괜찮아요, 를 되뇐다.
이런 바람을 가진 내가 속물 같고 쓰레기 같지만,
다음엔 하루만 더 빨리, 월급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4 15:1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