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대화] 사회학자는 ‘직업적 이방인’ /정수복


정수복,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서울을 생각한다󰡕, 문학동네, 2015.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정수복을 만났다. 초여름 기운이 완연한 국립중앙도서관에서였다. 사유하는 산책자이자 대중과 소통하는 사회학자로 널리 알려진 저자는 ‘날마다 읽고 쓰고 걷는 것’이 자신의 삶이라 말했다.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33가지 서울 풍경

“1982년부터 1988년까지 프랑스에서 유학생활을 했습니다. 7년 만에 서울에 돌아오니 빌딩도 많아지고 자동차도 많아진 서울 풍경이 어색하고 신기해 보였죠. 선배들이 유학을 마친 직후에 책을 쓰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어요. 달라진 풍경을 이방인의 시선으로 기록해두라는 거였죠. 하지만 어느새 서울 생활에 동화되고 익숙해졌어요. 그러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 다시 10년 동안 파리에서 살게 됐어요. 다시 귀국했을 때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서울에 대해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스냅 사진을 찍듯이 101곳의 서울 풍경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그들 중 33곳을 간추려 묶은 것이 이번 책이죠.”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서울을 생각한다󰡕에는 저자가 북촌, 서촌, 신촌, 삼청동, 인사동, 정동, 명동, 구기동과 신사동, 압구정동, 역삼동, 강남역 일대를 거닐며 기록한 단상들이 수록되어 있다. 삼청동의 한적한 골목길에 대한 소감이 술회되는가 하면 압구정역 일대에 즐비한 성형외과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당연한 것을 낯설게 보기, 파리와 서울을 오가는 경계인의 삶

“우리가 사는 세상은 혼자 고정되어서 붙박이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이동하고 이주하며 유목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고 있죠. 자신이 살았던 도시를 떠나 낯선 곳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방인의 시선을 가지게 됩니다. 낯선 타지의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 그곳의 생활 방식을 익히고 적응하게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과거에 자신이 살았던 곳에서의 습관들을 다 버릴 수는 없어요. 자신이 태어난 곳과 새롭게 적응하려는 곳 모두에서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죠. 저는 서울-파리-서울-파리를 두 번에 걸쳐 오가며 이방인의 시각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저는 파리와 서울을 연결시켜주는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뱃사공과 같은 존재지요. 서울의 시선으로 파리를 읽고 파리의 시선으로 서울을 읽고, 보다 넓게는 프랑스와 한국을 교차시키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사회학자는 ‘직업적 이방인’, 자신이 속한 사회와 비판적 거리 확보해야

저자는 날마다 한 시간 반에 걸쳐 동네 일대를 산책한다고 했다. 오전에는 글을 쓰고 오후에는 글을 읽고 저녁에는 산책을 겸하여 귀가하는 것이 저자의 일상이다. “산책은 기본적으로는 우리의 기분을 전환시켜 줍니다. 울적한 마음일 때 길을 걸으면 마음이 환기되죠. 가장 근본적으로 ‘걷기’는 인류 역사의 시작점을 가리킵니다.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직립원인이 인류의 조상이거든요. 우리가 어머니 배에서 태어나 누워 있다가 세살 무렵부터 일어나 걷기 시작하는데 그때부터 자아가 형성되고 개인의 사유가 시작되죠. 그런 점에서 걷기는 인류 문명의 발상이자 한 개인의 출발점입니다. 걷는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의 증거이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아이들은 부단하게 여기저기를 걸어다니며 새로운 것을 발견하잖아요. 현대인들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비만이나 우울증이 많아졌죠. 그래서 치유나 힐링의 방법으로서의 걷기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올레길, 둘레길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예죠. 그런데 저는 이러한 걷기의 방식들 외에 사회학적인 방법론으로서의 걷기를 주장합니다.

사회학자는 일종의 ‘직업적인 이방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사는 세상에 매몰된다면 사회의 본모습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죠.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방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회학적 방법론으로서의 ‘걷기’를 주장합니다. 기존의 사회학은 지나치게 관념과 개념에 천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물질성과 공간에 대한 탐구 또한 사회학의 중요한 주제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제대로 살피기 위해 ‘걷는 일’은 필수적입니다. 대부분의 사회학자들이 설문지를 돌려서 분석하고 외국 학자들의 책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합니다. 그리고 둘을 합쳐서 논문을 쓰다 보니 걷는 일이 거의 없죠. 그런데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살피기 위해서는 걸어야 합니다.“



대중과 민주적으로 소통하는 시민사회학

저자는 대중과 소통하는 사회학, 대중이 겪는 심층적인 문제에 천착하는 사회학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에서는 카페에 둘러앉아 아이들 성적 관리에 열을 올리는 강남의 학부모들의 모습이 묘사하는가 하면 난개발된 서울의 풍경이 조망되기도 한다. 서울을 ‘아우라 있는 걷고 싶은 도시’로 만들기 위한 섬세한 제안이 담겨 있다.

“사회는 미시적으로는 이인 관계에서부터 가장 거시적으로는 세계체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준의 사회를 다룹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의 다양한 면모를 이해하기 위해 사회학적인 시각은 필수적입니다. 자신을 제대로 성찰하기 위해서는 심리만 알아서는 안 되고 사회의 다층적인 면모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심리학은 유행인데 사회학은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사회학자들이 사회학을 지나치게 어렵게 이야기하고 사회학자 스스로도 사회학을 잘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대부분의 사회학 저서에는 복잡한 개념이나 통계 혹은 숫자가 많이 등장합니다. 저는 기존의 학문적 관행에서 벗어나 우리가 살아가며 쓰는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해 대중들이 알기 쉬운 사회학을 지향합니다. 단순히 입맛에 맞게 쉬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실제로 앓고 있는 심층적인 문제를 다루기 위해 노력합니다. 사회학의 존재 이유는 사회를 지금보다 나은 진보한 사회로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학자들끼리만 소통할 것이 아니라 사회학자와 대중들 사이에 민주적인 소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회학자들이 학술논문 쓰기에 바빠서 대중과 대화를 거의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사회학은 사회학자를 위한 사회학이지 더 좋은 사회,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회학이 못 되고 있는 것입니다.”



경청하고 쇄신하는 ‘학인(學人)’의 삶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저자에게 대학원생에서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저자는 다른 이의 의견을 경청하고 자신의 고유한 시야를 확보하라는 당부를 덧붙였다. “대학원생은 학문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입니다. 대학원생이 모두 학자가 되는 것은 아니니 학문의 맛을 본 사람들이라 해야겠지요. 우선 해당 학문 분야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기본적으로 습득해야 할 고전이나 현대 저서를 자기 식으로 소화해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학자나 기존의 논의를 요약하고 정리하는 일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과거의 논의를 답습하면 학문을 시작한 본래의 목적을 잊게 됩니다. 나의 지적인 관심과 물음에 다른 이가 어떻게 답했는가를 알기 위해 우선은 다른 이들의 의견을 경청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자신의 문제의식과 시선을 지켜야 합니다. 다른 이의 견해를 폭넓게 살피면서도 자기 고유의 시선과 답을 찾도록 노력하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인터뷰 ․ 정리: 선민서 기자 minseo@korea.ac.kr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4 23:1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