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칼럼] 시간강사의 방학 / 윤정안



  방학이 다가온다. 학부 시절 언젠가, 개강을 하자마자 강의실에서 만난 선생님은 학생보다 선생이 개강을 더 무서워 한다는 말로 수업을 시작하셨다. 방학을 더 기다리는 쪽은 학생이 아니라 선생이라는 그 말을, 이제는 거짓이 아님을 안다. 나 역시 간절히 방학을 기다리고 있다. 지각에 대한 스트레스, 매 시간 수업 준비, 과제에 대한 피드백, 시험 출제와 채점에 대한 지난함과 괴로움. 이 모든 것은 방학과 함께 끝난다. 물론 성적 처리와 성적 정정 기간이라는 고비가 아직 남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시간강사에게 있어서 방학은 곧 실직을 의미한다. 매달 정해진 날 들어오던 시간강사 급여는 방학과 함께 사라진다. 혼자라면 지출을 줄이고 벌어둔 돈으로 방학을 버텨 본다지만,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처지이고 보면 방학은 곧 근심과 고통의 시간으로 전환된다. 어쨌든 가장의 의무는 처자식을 부양하는 것 아니던가.


  방학은 말 그대로 배움을 잠시 놓은 것을 의미한다. 학생들은 공부에 지장을 주는 무더위와 추위를 피해서 새로운 배움을 준비한다. 학기 중에는 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체험하고 준비하는 시간으로 활용될 수도 있겠다. 선생에게 방학은 새로운 가르침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가르침
으로 소모된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새 수업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다. 미뤄둔 연구에 매진할 수도 있고, 소홀한 가정을 돌보는 데 활용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방학은 학생이든 선생이든 그 어느 쪽에서나 기다리는 시간일 것이다. 그러나 이 즐거움을 오롯이 누리는 선생의 범주에 시간강사는 없다. 오직 ‘교수’만이 해당할 뿐이다. 시간강사에게 방학은 곧 실직을 의미하는 것이니, 방학의 즐거움은 늘 실직이라는 실존적인 고통과 함께 오기 마련이다.


  시간강사만큼 무노동 무임금이 철저하게 지켜지는 직업도 없을 것이다. 매달 월급을 받는 (비)전임교원들과는 달리 시간강사는 방학에는 수업이 없기에 ‘당연히’ 급여도 없다. 대학들은 16주이던 수업을 언젠가부터 15주로 줄이면서 시간강사의 임금도 15주만큼만 준다. 그러나 전임교원의 임금이나 학생들의 등록금이 줄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대학 사회에서 말단에 존재하는 자들만이 수업시수가 줄어든 것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다. 방학이 가져다주는 여유로움과 함께 그 빈곤함을 체험하는 것 역시 대학사회의 말단에 있는 시간강사들만의 몫이다.


  시간강사에게 방학은 또한 기다림의 시간이다. 학교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개 학기말 즈음이나 방학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간강사 위촉은 시작된다. 이 시기에 학과나 교양학부의 조교들이 전화를 걸어 주지 않으면, 시간강사라는 직함도 더 이상은 달 수가 없다. 그러하니 시간강사들은 오로지 조교들이 전화를 걸어주기를 바라며 방학을 기다리고 맞이한다. 아주 가끔은 방학이 끝날 무렵 운 좋게 ‘빵구’난 강의를 의뢰하는 전화가 걸려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건 어쩌다가 한 번 일어날까 말까하는 요행일 뿐이다. 혹자는 이것은 어떤 과정의 일부이며, 자신이 좋아해서 선택한 것이니 감내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좋아해서 선택했다는 이유로 생존을 위협받는 것은 정당한 일인가.


  그래도 시간강사 신분으로 방학에도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수업을 하지 않으니 급여는 주지 않지만, 책은 빌리게 해주니 얼마나 고맙냔 말이다. 시간강사 역시 연구자임을 알고 있는 학교 당국의 최소한의 배려는 아닐까? 덕분에 책을 빌릴 수 있는 곳이 한 군데 더 생겼으니, 이것만으로도 감지덕지. 이런 부질없는 생각들이 두서없이 교차하는 와중에 행복하도고 고통스러운 방학은 찾아오고 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4 15:1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