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우발언대] 도둑들/ 어느 대학원생



대학원에 다닌 오랜 시간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중 제일 짜증났던 일을 꼽아보자면 단연 이것이다. 내가 석사과정 2학기에 재학 중이었으니 벌써 여러 해 전의 일이지만,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아 아직도 가끔 이를 간다. 강의 시간에 제안서를 발표했고, 유명 교수님으로부터 아이디어가 참신하다는 큰 칭찬을 들었다. 공부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멋모르고 하고 싶은 대로 해본 것이었고,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겁 없이 덤비는 젊은 연구자의 용기에 대한 노교수의 따스한 격려였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같은 수업을 들었던 박사 과정의 한 선배가 내 발표 내용을 발판 삼아 논문을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어딘가 유사해 보이는 부분이 있어서 오해가 생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논문을 구해서 읽어보니 정말 명백한 표절이었다. 논문의 상당 부분이 내 발표 내용과 아예 똑같았다. 한 글자도 바꾸지 않은 문장도 더러 있었다.



쓰다 보니 또 화가 나는데, 더 화가 나는 이유는 그 사람이 평소 나에게 어지간히 선배 노릇을 하며 거드름을 피웠기 때문이다. 지가 뭐라도 되는 양,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을 이리저리 씹어가면서, 너는 모르는 여기의 사정을 나는 다 알고 있다는 태도로 틈만 나면 훈장질이더니 결국 그 꼴이었다. 나는 정말 우울했다. 어쩐지 뉴스에서 논문 표절로 탈탈 털리는 사람들이 자주 나오더라니 역시 학계라는 곳도 다 그렇고 그런 곳이구나, 하고 체념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후에 알게 된 것은 그 사람의 표절 논문이 학술지 심사에서 여러 번 떨어져서 결국 폐기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뒤로도 여러 번,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논문을 표절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아예 한 문단을 통째로 ctrl C+ ctrl V하고서는 뻔뻔한 얼굴과 목소리로 그것을 읽어 내려가는 추잡한 모습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대학원에서 보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여기는 그렇고 그런 곳이 아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정말 좋아서, 열심히 잘하고 싶어서 머리를 쥐어뜯어 가면서, 이것저것을 포기하면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래서 나도 열심히 공부하면서 머리를 쥐어뜯어야 도태되지 않을 수 있다. 여기는 그 어느 곳보다 치열한 곳이다. 그렇게 치열하게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간 남의 글을 그렇게 쉽게 베껴가지고는 마치 자기가 쓴 글인 것처럼 고개를 빳빳이 들고 세상에 내놓는 인간들은 도둑이나 다름없다. 물건을 훔치는 것보다 더 비열하다. 그것이 얼마나 힘들게 쓴 글인데. 하얀 종이 위를 까만 글자들로 빽빽하게 채워나가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걸 훔쳐가다니.



다시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 도둑들은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하게 망신을 주어야 한다.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못하게 혼쭐을 내주어야 한다. 걸리기만 해봐라.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4 15:2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