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묻는 일, 대학원생으로서 전선을 치는 일


  최근 ‘왜 문학을 공부하는가’라는 주제로 글을 쓸 일이 있었다. 국문학이 전공인 나는 일명 프로문학이라고 지칭되는 식민지 조선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관심을 두고 있었으므로 ‘왜 프로문학을 공부하는가’를 해명하는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쓰려 돌이켜보니 대학원 문턱에 들어선 이래로 이런 식의 질문들로부터 단 한순간도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막상 그 질문을 듣고 답을 마련하는 과정을 (무)의식적으로 피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요즘 같은 시절에 왜 문학을 공부하니?’라든지, 더 나아가서는 ‘사회주의가 실패한 기획이라는 것이 확실해졌는데 사회주의 문학에 관심을 두는 이유가 뭐니?’라든지, 사실상은 연구자의 태도나 자의식에 대한 질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러한 물음표들 앞에서 답을 찾지 못해 답답했을지언정 굳이 그것에만 몰두하는 시간을 갖지 않았던 것이다.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고 학계 내 인정투쟁의 장에서 내쳐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성과’를 위한 논문 생산에 열을 올리는 등의 과정 속에서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묻는 일이 고되게 느껴지기도 했다. 공부를 하고 글을 쓸 때 느끼는 막막함 이외에 신경써야할 사회적 관계들이 너무도 많았다. ‘답 없는 고민’을 털어놓으니 한 친구가 내놓은 답변은 이랬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안 하는 사람이 더 좋은 연구 성과들을 내놓는 것 같더라.” 아니 그래서 이런 고민 따위는 쓸 때 없다는 건가, 성과도 없는 너는 이제 그만 조용히 하고 공부나 하라는 건가, 베베 꼬인 마음들이 삐죽삐죽 솟아오르는 것도 잠시, 나는 곧 연구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자문하는 행위 자체가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되는 대학원생의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 나부터도 그로부터 자유롭지 않게 지내온 터였다.


  연구자의 생애주기를 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대학원생’은 어느 위치에 어떤 의미로 자리하고 있을까. 그 생애주기의 최종 지향점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걸까. 당장 답을 내놓기 어려운 문제들이지만, 어쨌든 그 위치에 개입하고 존재의 의미를 결정하는 일을 대학원생 스스로가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연구자 생애주기 중 대학원생은 한번쯤 거쳐 가는 단계라는 인식이 있고, 그래서 몇 년 만 참고 넘어가면 된다는 생각들도 하는 것 같다. ‘사각지대의 대학원생’라는 수사는 더 이상 낯설지 않지만, 그렇기에 수사는 수행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아왔다. 때로 대학원생 등록금 의제화나 처우 개선을 위한 자리에 나가보면 그곳을 메우고 있는 수가 절대적으로 적어서 그 무감함의 정도가 바로 온몸으로 와 닿곤 한다.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묻는 일 만큼 대학원생으로 전선을 치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지면을 빌어 나부터 다짐해본다. 연구자로서의 책임을 고민하는 것과 대학원생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 이 모든 것에 낯설어진 의식과 감각을 일깨우는 것에서부터 첫 걸음을 떼야겠다.


■ 최은혜 기자 sinedoque@naver.com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4 17:5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