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인터뷰]역사는 책임지는 사람들의 것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바로 잡지 못하는 역사는 반복된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 역사학자인 한홍구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대한민국의 지나간 구비들은 현재의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결국 과거로부터 이어진 연속성의 결과물임을 증명한다. 그의 목소리는 학문과 금기의 영역을 넘어선 자리에서, 우리 사회와 정치에 내재되어 있는 모순과 부조리를 신랄하게 들춰낸다. 본지에서는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믿을 만한 학자이자 든든한 논객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를 만나 한국 사회의 현재와 과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실제로 만난 한 교수는 그가 쓴 글들의 논조처럼 직설적이면서도 명확한 말들로 질문에 답했다.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이해할 수 있어

한 교수의 최근 저작인 『역사와 책임』은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속옷 바람으로 탈출하는 이준석 선장의 모습으로 서두를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이 ‘악마’의 모습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지금의 모든 일들에는 그 역사적 뿌리가 존재합니다. 어떻게든 과거와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법이지요. 1950년 6월, 이승만은 세월호 선장 이준석이 그랬던 것처럼 북한의 공격으로 함락 위기에 빠진 서울에서 제일 먼저 달아났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에게는 서울을 떠나지 말고 안심하라는 방송을 계속해서 내보냈습니다. 이승만이 한강 인도교 폭파를 명령했을 때 다리 위에 적어도 500명에서 많게는 800명에 달하는 피난민들이 있었습니다. 그랬던 이승만이 서울로 돌아와서는　죗값을 지르거나 사과 한　마디를 했습니까?　오히려 정부의 말을 믿고 서울에 남아있었던 사람들을 부역자 처벌이라는 명목 하에 가두거나 처형했습니다. 당시 부역자 조사를 당한 사람은 550만 여명으로 추산됩니다. 그 수많은 부역자들의 처벌에 앞장선 사람들이 바로 친일파에서 애국적 반공투사로 변신한 김창룡, 원용덕, 노덕술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때 시작된 공안 권력은 민주화 운동을 지나면서도 여전히 남아 이른바 ‘관피아’의 뿌리가 된 것입니다.”


그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현대사는 책임져야 할 사람들의 무책임, 관피아, 인명경시 등의 문제점, 모순과 온갖 비리가 서로 얽혀온 과정을 보여줍니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의 뿌리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야 싸울 수 있습니다. 이승만은 죗값을 치르지 않았지만 이준석은 평생 감옥에 있겠지요. 이승만은 사과하지 않았지만 박근혜는 사과‘만’ 했습니다. 우리가 딱 그만큼 온 것입니다.”




공안 권력의 해체가 가장 중요한 과제

한 교수는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적 과제로 공안 권력의 해체를 꼽았다. “이런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호가 침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들은 도망갔지만 그 아래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세월호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도청에 남아있기로 했던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지도자들의 무능력과 위선이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이 평범한 사람들의 민낯도 드러난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나라도 남아서 해야지, 다들 안하면 안 되니까, 그런 마음인 것입니다. 역사는 책임지는 사람이 맡아야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문제는 무게 중심이 너무 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 여기까지 왔는데, 정작 그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이라는 것이죠. 무게 중심을 내려서 평범한 사람들이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사회가 재편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공안권력이 해체되어야 합니다. 그 뒤에 검찰과 언론의 교정도 기대할 수 있겠죠.”



야당은 스스로 정치지형 만들 생각해야

한 교수는 최근 ‘대한민국 야당사(史)’를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최근 거듭된 야당의 실패와 무능력에 대한 실망과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와 같은 상황의 반복적 경험은 정치적 냉소주의와 허무주의를 부추기며 진보 진영 전체의 사기 저하와 침체라는 악순환을 동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이에 대해 물었다. “지금까지 야당에게 큰 기회가 세 번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87년 6월 항쟁이 있었고, IMF 외환위기가 있었고,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과 총선 승리가 있었습니다. 사실 이 세 번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재벌 개혁, 국가보안법 폐지 등의 중요 과제들을 해결했어야 하는 것이었죠. 하지만 기회를 다 놓쳤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민들의 야당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야당성이란 문제가 생겼을 때 싸워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석이 이렇게 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존재감이 없었던 야당이 있었습니까? 상대가 만들어놓은 판에 들어가 그 룰을 따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스스로 정치 지형을 만들 생각을 해야 합니다. 사실상 대의정치가 잘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꾸 길 위로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대의 정치라면 비정규직 문제로 싸우는 의원들이 30퍼센트는 되어야 하는 것이겠지요. 과감한 진보 정책을 내놓을 생각을 해야 합니다.　”




긴 인터뷰 시간동안 한 교수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고수하며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인터뷰 말미에 이르러, 그는 ‘낙관주의자’라는 말로 자신을 표현했다. 대학원생들을 비롯한 지금의 청년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앞으로 분명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을 들려주었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역사에서의 기회는 자주 옵니다. 역사가 점프하여 진보하는 짜릿한 순간들이 생각보다 자주 있었다는 것이죠. 최근 몇 년 동안 퇴보하는 시간들을 보냈기 때문에 힘들 수 있지요. 산을 올라가면서 더 위로 가기가 힘든 순간이 오면 뒤를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까지 왔는지, 얼마만큼 진보했는지 봐야합니다. 지금 청년 세대는 이승만에서부터 시작한 이 긴 챕터를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그저 공부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시민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것이 역사입니다. 만들어가는 사람으로서 더 잘 만들기 위해 역사를 배우는 것입니다. 역사라는 릴레이에서 내 순번이 돌아오는 순간에 제 몫을 다하기 위한 준비를 하길 바랍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4 19:2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