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2일, 현 정부는 많은 이들의 우려와 반대를 무릅쓰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정 예고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 학계를 비롯하여 교육 현장의 교사들과 학생들마저 시대를 역행하는 국정화 정책에 반기를 들고 있다. 그러나 학계와 교육계의 잇따른 반대성명과 거세지는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은 ‘올바른’ 역사를 운운하며 본 건을 강행하고 있다. 이들은 반대여론을 묵살, 호도하는 것을 넘어서 국가 예비비를 교과서 발행예산으로 ‘빼돌림’으로써 이 나라 국민들이 수십 년간 쌓아낸 최소한의 민주주의 가치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이것은 싸움이다
-한국사학과 석사과정 김동주

  이것은 싸움이다. 세미나나 학술대회에서 벌어지는 논리적 토론이 아니라, 철저히 싸움이다. 본래 싸움은 이기려고 하는 것이고, 이기기 위해서는 전선을 꾸리고 우리 편을 늘려 세를 키우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이러한 수준의 원론적인 이야기는 현실에서 수많은 장애물과 부딪치게 되어있다. 특히 이번 사안은 학계나 교육계 구성원들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사람들이 반대하고 있을뿐더러, 이들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비판하는 맥락과 주목하는 지점, 그리고 해결해나가려는 방향 역시 제각기 다르다. 즉, 이렇게 반대진영의 스펙트럼이 넓은 경우에는 어떤 의제를 내걸고 전선을 형성하느냐하는 문제부터 골치 아픈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 사회의 대학원생 연구자들은 어떤 입장을 표명하고 어떻게 처신해야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다. 싸움에 나서자니 전선에 대한 합의와 정치적 연대가 필요하고, 다른 연구자들 내지 여타 대중조직과 연대하자니 본인 생각과 다른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학자의 길이란 것이 기존의 생각들과 ‘다른’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개개의 연구자들 스스로가 제각기 다른 문제의식 속에서 본 건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학과 내지 학원 내부에서 의견을 모아내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예를 들어, 좌/우나 진보/보수 프레임 이전에 국가에 의한 역사해석의 획일화를 경계하는 연구자에게 민족주의적 맥락에서 친일독재 교과서를 규탄하는 입장은 곤란하다. 게다가 현 검정체계나 수능체제부터 문제라고 보는 연구자에게는 “국정제 vs 검정제”로 굳어져가는 현 구도 역시 우려되는 바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정부와 여당의 국정화 정책 추진에 대항하는 가장 유력한 프레임은 친일독재 구도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원생 연구자들은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이 제한적인 관계로 당장에 이 구도를 바꿔낼 수 있는 힘도 없을뿐더러, 그 구도가 해답이 될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 연구자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자기 블로그나 페이스 북에다가 자신의 예민한 입장을 밝히고서 간혹 범범한 성명을 내는 정도밖에 할 수 없는 것일까.
  나는 이 싸움에 이기기 위해 대학원 연구자들이 대승적 차원에서의 합의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는 해당 사안을 둘러싼 인식문제와 대응 방식을 둘러싼 논쟁을 덮어버리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나 역시 다양한 논의들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이야 말로 전선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필수조건 중 하나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싸움이다. 각자 소중하게 여기는 무언가를 지켜내기 위한 싸움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선되고, 무엇을 접어둘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싸우면서 한 대도 맞지 않고 때리기만 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다보면 덜 중요한 것들은 내어줄 수밖에 없다. 원래 싸움은 그런 법이기에, 몸에 진흙을 묻히기 싫어서 나서지 않는 것이라 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싸울 생각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연구자로서 학문을 한다는 것이 다만 더 고매하고 우월해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이해한 현실 속에서 저마다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언제까지나 온갖 것들을 손에 쥐고 있을 수 없다.
  국정화에 찬성하는 사람도 존중한다. 하지만 싸움에서 한 발짝 떨어져 고매한 몸가짐과 독창적인 문제의식을 자랑하며 하나마나한 얘기들로 자신을 변호하는 이들에게는 누구말대로 지옥의 아랫목만이 기다리고 있는 법이다. 이것은 싸움이다. 싸움에 이기기 위해서는 다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4 06:5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