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최은혜 기자

벌레(蟲)들이 사는 세상

  요즘 유행하는 말들을 가만 들어보면, 이 세상은 온통 벌레들로 가득 차 있다. 일베충의 등장을 시작으로 해서 삼엽충, 롤충을 거친 뒤 최근에는 초딩충, 지방충, 맘충 등의 말이 넘실댄다. 그 쓰임새를 종합해보건대 ‘-충(蟲)’은 특정 집단을 비하하여 이르는 접미사다. 그렇다면 대체 이 ‘특정 집단’이 어떤 성격의 집단을 지칭하는 것인지 유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왜 벌레가 되었는가.
  처음 이 접미사가 유명해진 것은 일간베스트 저장소라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즐겨 이용하는 사람들을 싸잡아 말하면서부터다. 일베 유저의 정체성은 특정 지역이나 여성 비하로 압축될 수 있는데, ‘일베충’은 다소간 비상식적이고 반사회적인 이들의 행동을 비꼬기 위해서 사용됐다. 이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된 뒤로 각종 ○○충들이 등장했다. 삼성 기기만을 고집하는 이들을 말하는 삼엽충, 게임 롤(L.O.L)에 깊이 빠져있는 이들을 말하는 롤충은 삼성 유저, 롤 유저들을 조롱하며 이르는 표현이다. 나아가 급식충, 지방충, 맘충 등은 근래 들어 더욱이 심심찮게 들려오는 말들이다. 이들은 초등학생이라는, 지방에서 사는 사람이라는, 아이를 가진 엄마라는 더 보편적인 대상들을 염두에 둔다. 주변에 피해를 주는 몇몇 사람들이라는 범위를 넘어서 점차 초등학생, 지방민, 엄마들 전체는 잠재적인 충(蟲)으로 간주된다. 그렇게 덧씌워진 초등학생, 지방민, 엄마들에 대한 이미지는 누군가를 혐오하는 데 너무도 손쉬운 준거가 되고, 누군가를 단단히 옭아매는 검열기제가 되기도 한다.
  ‘-충’이 지시하는 ‘특정 집단’의 성격은 점점 보편적이며 전방위적인 것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거기에는 한층 짙은 혐오의 정서가 배어 있다. 이런저런 충들이 남발되는 현실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들어설 자리가 있을 리 만무하다. 온갖 벌레들의 이름이 득실거리는 현상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언제든 누구든 배제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의 표피일 뿐이다. 용어에 대한 객관화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용어에 의탁해 너무 간편하게 누군가를 규정하고, 규정하는 것을 넘어서 배타적으로 대해왔던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할 때다. 혐오문제라는 거대한 실타래를 풀기 위한 실마리는 오히려 작은 부분을 되짚어 보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4 03:2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