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호 고전읽기
Roemer, John. ed. 󰡔Analytical Marxism󰡕. 1986. Cambridge University Press.

분석적 맑스주의

김경필(본교 사회학과 박사과정 수료)

1960년대 말부터 각종 사회운동의 발흥과 함께 선진자본주의들에서 맑스주의는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맑스주의에 입각한 다양하면서도 많은 연구성과들이 나왔고, 잊혀진 혁명가였던 그람시(A. Gramsci)가 부활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기존 맑스주의의 이른바 헤겔적 편향을 주장하며 구조주의적 맑스주의가 등장하며 맑스주의 내부에서도 이론간 쟁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1970년대 후반이 되면서 맑스주의는 쇠퇴하게 되고, 많은 이들이 또다시 ‘맑스주의의 위기’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당시 유럽사회의 변동을 반영하는 것이었는데, 서유럽에서 사회주의 운동과 노동운동은 쇠퇴하고 있었고,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 역시 위기를 겪고 있었다. 후자의 경우 경제의 비생산성과 체제에 내재한 권위주의로 노동자들이 사회주의를 서서히 외면했기 때문이다.  

분석적 맑스주의의 등장과 내용
맑스주의가 위기를 겪으며 쇠퇴해갈 무렵, 일련의 학자들이 기존 맑스주의에 대한 혁신을 주장하며 새로운 맑스주의를 들고 나왔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분석적 맑스주의’라고 지칭했다. 분석적 맑스주의는 1978년 런던에서 영국의 철학자 코헨(G. Cohen), 노르웨이 정치학자 엘스터(J. Elster), 미국의 정치학자 쉐보르스키(A. Przeworski), 벨기에 경제학자 파리지스(P. Parijs), 미국의 사회학자 라이트(E. Wright), 미국의 역사학자 브레너(R. Brenner) 등이 당대 맑스주의의 이론적 문제들을 토의하기 위해 모임을 조직하면서 하나의 학파로 등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문제의식이 집대성 된 책이 수년 후에 출간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지금 여기에서 소개하는 󰡔Analytical Marxism󰡕이다.
책의 서문에는 이들의 맑스주의가 기존 맑스주의와 어떤 점에서 다른지에 대한 설명이 제시되어 있다. 책을 편집한 로머는 분석적 맑스주의의 ‘분석’이라는 것은 크게 세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를 또 다른 분석적 맑스주의자인 라이트가 다른 논문에서 밝힌 내용과 종합해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분석적 맑스주의는 추상화에 주력하면서 기존 맑스주의 방법론에 회의를 갖고, 체계적인 이론과 경험적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들이 방법론적 개인주의를 상당부분 수용해서 게임이론이나 합리적 선택이론의 모델을 수용하고, 구체적인 현상을 수리적 모형을 사용해서 설명하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지향 때문이다.
둘째, 분석적 맑스주의는 이론의 기초와 기본 개념을 정립하는 것에 많은 관심을 쏟는다. 이들은 이론의 발전을 위한 필요조건은 논리적 일관성을 지닌 개념의 정립이라 생각해서 생산력과 생산관계(코헨), 착취와 계급(로머), 중간계급(라이트), 계급투쟁과 체제이행(쉐보르스키), 평등(우드)에 대한 개념화를 이 책에서도 시도한다. 그리고 이들은 기존의 거시구조이론에 대한 미시적 토대를 정립해서 개인의 선호나 이익을 준거로 분석을 시작해서 모델화를 시도하는데, 이를 통해 이들은 자신들의 이론이 분석적이고 다른 접근들과 구분되는 설명력을 지닐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맥락에서 셋째, 이들은 분석적 맑스주의가 맑스주의에 대한 비도그마적 접근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분석적 맑스주의는 맑스주의인가
분석적 맑스주의가 하나의 학파로 모습을 갖추어가고 이 책이 나오면서 많은 맑스주의 이론가들이 이에 대한 비판을 개진했다. 이는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맑스 이론의 근간을 이루는 현상형태와 본질을 구분하는 존재론과 인식론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맑스의 방법론인 역사유물론이나 변증법을 상당부분 기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자들은 자신들이 맑스주의자라고 강하게 이야기하는데, 그 이유는 이 책의 논의는 전적으로 맑스주의의 핵심 주제들을 다루고 있고, 이론과 경험적 문제들 역시 맑스의 문제의식에서 연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분석적 맑스주의자들은 각기 상이한 방법과 이론적 지향을 견지하고 있지만, 모두 맑스주의의 지향인 민주적 사회주의를 선호하고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맑스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독자의 입장에서, 특히나 맑스주의 지향을 공유하지 않는 독자들에게 이들이 맑스주의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있다. 다수의 독자들이 관심 있어 할 내용은 과연 이들의 분석이 설득력이 있는 것인지 여부에 한정될 것인데, 이들의 분석이 우리에게 적지 않은 지적 자극을 준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4 08:4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