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에 대한 오해와 진실>

힙합은 저항과 가난 속에서 태어난 음악 (1)

강일권
대중음악평론가/<리드머> 편집장


음악 전문가, 관계자, 음악 팬 등등, 많은 이가 힙합을 저항 정신과 가난 속에서 탄생한 음악이라 말한다. 매번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엠넷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 대부분이 비판의 근거로 삼는 것 역시 이것이다. 그만큼 한국에서 '힙합의 기원 = 저항 정신과 가난'이란 공식이 마치 진리처럼 여겨지고 있는데, 엄밀히 따지자면, 이것은 오해다.

물론, 랩/힙합의 역사와 음악을 논할 때 가난과 저항 정신이 매우 중요한 요소인 건 맞다. 하지만 이를 탄생과 직결시키는 건 무리가 있다. 우선 가난부터 살펴보자. 힙합이 태동한 1970년대, 극심한 인종차별에 시달리며, 사회적 진출이 거의 가로막히다시피 했던 흑인들의 삶은 처참했다. 특히, 누구도 오고 싶어 하지 않고, 누구도 살고 싶어 하지 않을 만큼 빈곤과 범죄로 점철된 지역 사우스 브롱크스(South Bronx)의 상황은 당대 흑인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대변하는데, 바로 이곳의 한 허름한 아파트에서 힙합이 시작됐다. 그러므로 크게 보자면, 가난 속에서 힙합 음악이 나왔다는 말 자체는 틀린 게 아니다. 중요한 건 가난이란 키워드가 비단 힙합뿐만 아니라 흑인들의 대중예술 전반에 깔렸다는 점이다. 힙합 이전부터 블랙 뮤직을 대표하던 장르인 소울과 재즈, 그리고 ‘블랙스폴로테이션(Blaxploitation/*필자 주: 1970년대를 기점으로 주로 흑인 영웅이 등장하는 흑인 관객들을 위한 영화의 총칭)’ 영화 등이 대표적인 예다. 무엇보다 사실의 왜곡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배경으로 제시하는 것들, 이를테면, '흑인은 가난했기에 악기를 살 돈이 없었다'라든가 '제작 환경이 여의치 않았던 흑인들의 음악적 자구책' 같은 말들이다. 정말 자의적이고 무책임한 주장이다. 강조하건대 흑인들이 가난했기 때문에 지금 같은 힙합 음악의 작법과 형식이 나오게 된 게 아니다.

이는 힙합의 시작을 알린 두 힙합 선구자, 쿨 허크(Kool Herc)와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a)의 주변환경, 혹은 처했던 상황만 살펴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힙합의 아버지’라 불리는 쿨 허크의 예를 볼까?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사우스 브롱크스로 이주해온 쿨 허크의 집안은 비교적 넉넉한 편이었다. 그의 아버지 키스 캠벨(Keith Campbell)은 노동자 계급이긴 했지만, 직원들을 관리하고 업무를 총괄하는 지위였는데, 지역 알앤비(R&B) 밴드의 스폰서를 할 정도였으며, 집에는 고가의 음향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쿨 허크는 힙합이 태어난 날로 일컬어지는 1973년 여름의 역사적인 파티에서 이 거대한 사운드 시스템을 앞세워 전례 없는 충격을 안겼다. 이후, 많은 이가 알고 있듯이 그가 두 턴테이블과 믹서를 가지고 곡의 간주(Break) 부분을 무한 반복시키는 회심의 기술, 일명 '메리 고 라운드(Merry-Go-Round)'를 통해 힙합 음악 작법의 초석을 다지게 된 것이다. 또한, 힙합의 4대 요소를 전파하며, 힙합을 문화로 확장시킨 아프리카 밤바타는 일찍이 범상치 않은 식견을 바탕으로 여러 갱 집단 사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유일무이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역시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돈 걱정 않고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위치였다.

이 사실만으로도 힙합이 가난 속에서 탄생했다는 말이 얼마나 와전된 것인지 증명되지만, 좀 더 사례를 들어보겠다. 비트를 만드는 영역으로 가면, 오히려 가난은 더더욱 멀어진다. 이미 유명한 최초의 히트 랩 레코드 "Rapper's Delight"을 비롯하여 초창기 랩/힙합 음악들은 전부 어느 정도 제작 환경이 뒷받침된 상황에서 레이블을 통해 나온 것이니 말이다. 빈민가의 흑인들이 '큰 돈 없이도 드럼 머신 하나만 있으면 음악을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힙합 음악이 세상에 얼굴을 내밀고 난 후, 그러니까 힙합이 대중의 가시권에 진입하고 프로덕션의 특성이 알려지고 난 뒤부터다. 애초부터 돈이 없어서 드럼 머신 하나로 힙합 비트를 만든 게 아니란 얘기다. 이 명백한 과정과 순서는 매우 중요하다.

사실 한국에서 힙합의 시작을 논할 때 '가난'과 '빈곤'이란 키워드가 조건반사처럼 튀어나오는 현실도 무리는 아니다. 그동안 전문가, 마니아 할 것 없이 많은 이가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이를 무책임하게 연관 지어왔기 때문이다. '월드와이드웹(WWW)' 기반의 인터넷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 매우 제한적인 정보만 취할 수 있었던 때에나 먹히던 왜곡된 정보들이 여전히 상식으로 여겨지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다. 그러니 바라건대 이 글을 보는 이들만이라도 ‘힙합이 가난 속에서 탄생했다.’라는 강박에서 벗어나시라.

자 그럼 이제 힙합과 저항정신의 관계에 대해 파헤쳐보자.

다음 화에서 이어집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4 14:2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