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최은혜 기자

‘테러’라는 미명(美名), ‘권력’에의 미혹(迷惑)


  지난 3월, 이런저런 부침 끝에 테러방지법이 통과됐다. 이어 그것을 주도했던 세력은 사이버테러방지법의 통과까지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테러 방지’를 명목으로 법안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해왔고, 테러의 발생을 차단하기 위한 방안으로 ‘국정원의 기능 강화’를 내세워왔다. 미국의 9·11 테러 당시 만들어진 이 낡은 법안들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고개를 들고 나왔지만 반대 여론에 부딪쳐 결국 통과되지 못하거나 폐기됐다. 이 점을 상기해볼 때, 2016년 현재 박근혜 정부에서 테러방지법이 통과되고, 나아가 사이버테러방지법이 통과될지도 모른다는 점은 자못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테러방지법의 폐기를 주장하는 이들은 이 법을 통해 방지하려는 ‘테러’가 대체 무엇인지 불분명하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법안이 테러의 개념 규정을 명확히 하지 않을 경우, 테러 행위의 외연이 무한정 확장될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자칫 테러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을 수 있는 사건들이 테러로서 규정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점이 특히 문제적인 이유는, 특정 사건을 테러로 규정짓는 ‘어떤 주체’가 전제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그 주체는 누구일까. 시민사회? 혹은 테러를 판별하는 전문가 집단? 국정원의 기능 강화를 요지로 하고 있는 법안의 내용을 떠올려 본다면, 누가 그 주체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는지는 불 보듯 뻔하다. 게다가 이 법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어날지도 모를 테러’를 방지하는 목표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테러범이 아니지만 테러범일지도 모를 이’들을 모두 잠재적 테러범으로 취급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리하여 특정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는 그 주체는 국민 전부를 테러범으로 몰아세울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쥐게 된다.  


  지난해 11월 박근혜 대통령은 민중총궐기의 시위대를 IS테러단에 비유했다. 민중총궐기 대회에는 정부의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노동자들, 한중 FTA에 반대하는 농민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시민들, 입시경쟁과 취업난에 신음하는 청년들이 참여했다. 공권력은 살수차를 동원해 캡사이신을 섞은 물을 그들에게 마구잡이로 쏘아댔다. 물대포를 직사로 맞은 한 농민은 여전히 의식불명 상태다. 이 사태가, 국가가 시위대를 ‘테러단’으로 여기지 않았다면 가능하지도 않았을 과잉진압처럼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대통령의 한 마디 때문만은 아니다. 국정원에게 정보통신망에 대한 관제 권한을 부여한다는 사이버테러방지법에서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을 떠올리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고민해야 한다. 테러라는 미명아래, 권력에 미혹된 자들의 그림자가 더 짙어지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9 15: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