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자본주의’ 시대, 유서 깊은 문예지의 위태로운 향방
― 󰡔실천문학󰡕 편집위원 총사퇴에 임하여


“민중의 최전선에서 새 시대의 문학운동을 실천하는 부정기간행물(MOOK) 창간호”, 1980년대 무크지 전성시대의 효시를 알렸던 󰡔실천문학󰡕의 표지에 적힌 문구다. 매거진 북(Magazine Book)의 약어인 ‘무크(MOOK)'지는 1980년대 신군부세력이 언론통폐합조치로 주요 계간지를 폐간하면서 문학장에 출현했다. 무크지가 대안적 매체로 부상하게 된 것은 폭압적인 군사정권의 검열과 탄압의 결과였다. 무크지는 담론 공간이 유폐되어 있던 시대의 은밀한 탈출구였다. 긴박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무크지는 몸체를 가볍게 하고 억압적 현실에 대해 게릴라식으로 항전했다.


지난 3월15일 편집위원의 총사퇴 문제로 이목을 이끈 󰡔실천문학󰡕은 명실상부한 한국 무크지의 효시였다. 󰡔실천문학󰡕의 김원, 김정한, 김종훈, 서영인, 장성규, 황인찬 등 6명의 편집위원은 실천문학사의 새로운 이사진들이 자본의 논리에 입각해 실천문학의 역사와 정신을 훼손했다며 일괄 사퇴했다. 이들은 ｢계간 실천문학 편집위원을 사퇴하며｣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지난 3월 11일 있었던 주식회사 실천문학사의 주주총회는 1980년부터 시작된 실천문학의 역사적 정체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결과를 낳았다”며 “저희들은 소수 대주주에 의해 독점된 회사 운영과 계간지 편집 구조를 승인할 수 없어 사퇴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실천문학’ 편집위원 전원 사퇴…새 이사진과 갈등｣, 󰡔연합뉴스󰡕, 2016년 3월 18일자)

󰡔실천문학󰡕 이번호는 기존의 편집위원들이 기획한 마지막 잡지인 셈이다.



세월호 2주기,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는 통렬한 성찰

󰡔실천문학󰡕 2016년 봄호(통권121호)에는 국내외의 다양한 쟁점들에 대한 글이 수록되었다. 먼저 ‘세월호 2주기’ 특집을 주제로 한 박래군(416연대 상임운영위원), 고영직의 대담 ｢작은 승리들을 기억해야 합니다｣를 비롯하여 여러 필자들의 세월호 추모글이 수록되었다. 이문영(󰡔한겨레21󰡕 기자), 고주영(독립기획자, <안산순례길> 제작자), 오은(시인), 박진(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최원(독립연구자)가 각기 다른 분야에서 세월호 2주기를 되짚었다. 이문영 기자는 ｢시스템의 ‘허공지대’에서 만나다: 세월호, 메르스, 고공농성｣에서 작년 4월 16일 당시 진도 앞바다를 취재하던 경험과 ‘메르스 유증상자’(메르스가 의심돼 역학조사 진행)로 분류되었던 경험을 술회했다. “차를 운전할 때마다 세월호 부모들은 문득 치미는 분노로 가속페달을 밟는다. 계기판은 시속 180킬로미터를 무심히 찍는다. 믿을 수 없는 소식이 전해진 그날. 한 아버지는 진도로 내려가는 고속도로에서 82차례의 속도위반을 했다. 그날의 절박함을 함께한 자동차는 범칙금 비납으로 압류되어 있다.” 고공농성 취재를 전문으로 했던 그는 한국사회가 고공농성이 일상화되고 보편화된 비정상적 사회라고 규탄했다. 자본이 국가 시스템을 마비시켜 버린 위험 상황 속에서 “국가는 어디에 있나”라고 물어야만 하는 것이 작금의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신경숙 표절 논란’ 이후, 문학권력에 대한 재고찰

한편 <문학기획>란에서는 허민(인문학협동조합 연구환경정책위원장)과 권성우(숙명여대 교수, 문학평론가)의 글이 수록되었다. 이 중 허민은 ｢당신들은 읽지 마세요: 적(敵)이 없는 시대의 문학과 비평｣에서 신경숙 표절 논란 이후에 불거진 문학권력에 대한 논의를 검토했다. 그는 이 논란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현실/권력의 논리가 통용되지 않는 자율적이면서도 자립적인 공간에 대한 대중의 갈망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실천문학󰡕의 편집위원이기도 한 서영인은 대형출판사가 공모전과 문예지를 통해 한국문학의 독점구조를 형성하고, 문단 내에서 상업적 이익을 공유하고, 작품의 가치평가를 분점하는 방식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허민은 문학동네, 창작과비평(이하 창비), 문학과지성사가 정당하게 쌓아올린 제도적인 권위와 그것이 파생시킨 한국문단의 규범과 질서를 사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학권력 논란이 불거진 이후 문학동네나 창비의 기존 편집위원들이 나타내는 ‘억울함의 정서’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정서들로 인해 이들이 실제 문학장의 구조를 반성적으로 고찰하기보다는 자사를 변명하기에 급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출판자본주의의 심화와 대형출판사의 독과점 구조, 그로부터 획득되는 상징권력과 재단되는 문학성의 기준들, 작가 의식과 비평 정신의 불가피한 희석, 어른들의 격양과 후속 세대의 침묵 등이 특정 주체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발생할 수 있는 권력 효과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치적 ‘투쟁’이 경제적 ‘경쟁’으로, 비평적 ‘논쟁’이 정신적 ‘교통’으로 대체되고 만 ‘문학자본주의’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문학 생산의 담당자들에게 예술적 대상과 재현에 대한 관심만이 아니라, 자신이 내딛는 생산관계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한국문학의 재생산 구조의 상관성을 ‘문학 생산 체계’라는 이름으로 정식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한국의 청년 주거빈곤 가구에 대한 고찰

한편 임경지(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는 ｢더 나은 내일을 품을 수 있는 집을 위하여｣에서 청년 주거 빈곤가구의 증가에 따른 문제를 한국작가 김애란의 소설과 더불어 고찰했다. 2013년 민달팽이유니온의 ‘방값역전현상’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청년들이 주로 거주하는 원룸, 그리고 보증금이 없어 가장 최후에 선택하는 단기 임시 거주지인 고시원은 타워팰리스보다 평당 임대료가 높다. 소형 주택의 임대료가 중·대형 주택보다 높고 전월세전환율마저 높은 상황에서 가장 약한 자에게 가해지는 차별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소득 대비 주거비 지출을 나타내는 RIR(Rent Index Ration)을 살펴보면 청년 10명 중 6명이 자신의 소득의 30퍼센트 이상을 주거비로 지출하고 있고 최저주거기준 미달, 반지하나 옥탑 그리고 주택 이외의 거처에 거주하는 비율을 서울 청년 1인 가구 10명 중 3명이다. 따라서 오직 청년들만 주거빈곤율이 오르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글에 인용된 김애란의 소설 ｢자오선을 지나갈 때‘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노량진에는 머무는 사람보다 지나가는 사람이 많았다. 혹 오래 머물더라도 사람들은 그곳을 ‘잠시 지나가고 있는 중’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나도, 재수생 언니도, 민식이도, 총무 오빠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지나가는’ 곳에서의 생활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나는 거리나 지하철에서 나와 같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었다.”

임경지는 청년들의 행복주택에 대한 요구가 인근 지역의 주민들의 반감을 사게 되는 양상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대학 기숙사 건립을 반대하는 주변 원룸 임대업을 하는 주민들, 공공임대주택이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질 것을 염려하는 주민들은 결국 불안한 노후에 대한 걱정이 가장 크다. 이들에게 집이란 생계 수단이자 마지막 남은 자산이기 때문이다. 일평생 땀 흘려 일해 번 돈으로 집을 마련했거나 비싼 대출 이자를 꼬박꼬박 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공공임대주택은 오히려 노후를 위협하거나 빼앗는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임경지는 불안한 노후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국민연금의 허약함과 불안정한 노동시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스, 스페인 좌파운동과 좌파정당의 집권

국외의 이슈에 대한 분석으로는 안효상(성공회대 외래교수)의 ｢그리스, 스페인 그리고 한국……｣이 수록되었다. 그는 그리스와 스페인의 좌파운동과 좌파정당의 성립을 검토하며 두 국가의 정치 지형의 변동을 분석했다. 2008년 경제 위기, 2010년 부채 위기와 재정 위기 속에서 그리스와 스페인은 긴축재정을 시행했고, 이에 대한 저항이 ‘점거 운동’의 형식으로 나타났다. 그리스에서는 2015년 1월 기성 정치의 주변부에 위치했던 좌파 정당 시리자(급진좌파연합)이 우파인 사민당과 좌파인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을 물리치고 권력을 잡았다. 11개월 후 스페인에서는 신생 정당인 포데모스가 20퍼센트의 지지를 얻어 제3당의 자리를 차지했다.

안효상은 그리스의 긴축 재정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운동의 특징은 조직된 노동자들이 동원된 것이 아니라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 기반해 자발적으로 동원한 것이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스의 ‘분노한 사람들’의 운동은 8월7일 데살로니키의 화이트타워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경찰이 몰아내기 전까지 지속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이들은 의회가 아니라 민중이 기초하는 새로운 헌법의 채택, 채무 지불 거부, 트로이카(유로그룹, 유럽중앙은행, IMF)와 맺은 양해 각서의 무효화, 부자에 대한 중과세 등을 주장했다.

그리스에서 반긴축 운동이 시작되기 직전 2011년 5월 15일 스페인에서도 유사한 운동이 일어났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스페인의 실업률은 21.3퍼센트, 실업자 수는 500만 명으로 유럽에서 가장 높았다. 특히 청년 실업률은 당시 43퍼센트로 유럽연합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2010년 9월 스페인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 개혁에 나섰다.
그리스와 스페인에서 부채 위기로 인한 긴축정책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된 운동은 이중의 의미에서 새로운 것이었다. 이는 이전의 사회운동이나 정치 운동과 달리 무차별한 대중의 집결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에 주목해볼 수 있다. 시리자는 그리스 급진 좌파가 재구성되어 나온 산물이었다. 탈스탈린주의화와 유럽공산주의의 탄생, 그리스의 사회민주주의적 전환, 역사적 사회주의의 몰락, 생태주의 운동의 등장, 페미니즘 등 새로운 정체성 운동의 등장이라는 흐름 속에서 새로운 좌파의 공동 행동을 위한 공간을 열려는 시도가 등장했다.
스페인의 새로운 정치 운동인 포데모스는 ‘분노한 사람들’의 새로운 운동에서 시작된 흐름이었다. 2014년 1월에 출발을 알린 포데모스는 1월 중슨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 정치학 교수인 후안 카를로스 모네데로 등 30여 명의 지식인, 문화·예술인, 사회운동가, 언론인이 발표한 ｢모베르 피차 선언(Manifeso Mover ficha)｣으로 시작되었다. 이 선언은 ‘분노한 사람들’의 운동을 계승하는 정당 운동을 시작할 것이며 다가올 유럽의회 선거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데모스는 긴축 반대뿐만 아니라 보편적 기본소득의 도입, 주요 경제 부문의 국유화, 스페인 정부 채무 무효화, 나토 탈퇴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들은 국민당과 사회주의노동자당 모두를 기성 정치라고 부르면서 스스로를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제시했다.

2015년의 그리스와 스페인에서 일어난 정치적 변화는 체제에 대한 대중의 저항이 폭발적인 형태로 터져 나왔을 뿐만 아니라 이 에너지가 제도 정치로 수렴되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1999년 ‘시애틀 전투’부터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이 시작되긴 했지만, 라틴아메리카의 ‘핑크 타이드’를 제외하면 적절한 대안과 정치적 세력을 형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두 나라에서는 이 힘이 정치적 통로를 찾고, 도적인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이는 한국의 현실에 큰 시사점을 준다는 것이 안효상의 지적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예지 발간 지원 사업 축소의 여파

이번 󰡔실천문학󰡕의 편집위원 사퇴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한국의 문예지들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예지 발간 지원 사업 축소하면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문예진흥기금’을 활용해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문예지를 지원해왔다. 2014년의 경우, 55개 문예지에 10억 원이 지원되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월간지는 3000만~4000만 원, 계간지는 1000만~2000만 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예술위가 지난 2015년 예산을 3억 원으로 삭감하고, 지원 대상을 14곳으로 축소한 데 이어 올해는 별다른 공고 없이 관련 사업을 없애서 논란이 되었다. 정부의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는 많은 문예지가 고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수문예지 지원사업 폐지’ ‘아르코창작기금 사업 축소’ 파장｣, 󰡔문화일보󰡕, 2016년 2월 17일자)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실천문학사의 사례와 같이 비민주적인 편집 구조 개편과 같은 문제들도 불거지고 있는 형편이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국내 유수의 역사를 지닌 문예지들이 정체성을 훼손되거나 폐간될 위험에 처해 있다.

선민서 기자 minseo@korea.ac.kr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10 00:2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