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에 대한 오해와 진실: 갱스터 랩의 조건

강일권(힙합/알앤비 미디어 리드머 편집장, 음악평론가)


한국에서 경계를 나누는 기준과 음악적 특징이 잘못 알려진 상태로 통용되는 또 하나의 대표적인 장르가 갱스터 랩(Gangsta Rap)이다. 일단 노골적이고 폭력적인 가사를 위주로 하는 갱스터 랩이 하드코어 힙합으로부터 파생되어 범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힙합의 주요 서브 장르 중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은 지난 편(‘하드코어 힙합에 대하여’)에서 언급한 바 있다. 엄밀히 따지자면, 하드코어 랩 안에 포함된다 할 수 있는 이 장르가 '갱스터 랩'이라는 이름을 따로 얻게 된 건, 해당 랩퍼들이 실제 갱 출신이거나 갱 집단과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갱스터 랩에 담기는 주요 내용들은 일명 '갱스터리즘(Gangsterism)'으로 포괄할 수 있는 갱과 관련한 일련의 행위들이다. 이는 ‘갱스터 쉿(Gangsta Shit: 갱들 사이에서 그들의 생활과 연관된 특정한 것들, 주로 차, 총, 마약, 돈 등등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은어)’이란 단어로 뭉뚱그려지기도 한다. 그만큼 앨범 속에는 마약, 총격, 매춘, 섹스, 살인에 대한 직접적이고 질펀한 묘사와 은유가 가득하고, 이 때문에 갱스터 랩은 매번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어왔다. 물론, 초기적 갱스터 랩퍼들, 대표적으로 N.W.A나 투팍(2Pac) 같은 이들은 그 안에 인종차별 문제를 비롯한 사회적 이슈를 진중하고 공격적으로 다루며, 갱스터 랩이 단순히 자극적인 엔터테인먼트만이 아님을 보여준 바 있다. 그러나 이 장르가 점점 인기를 끌면서 이후 등장한 많은 갱스터 랩 음악은 마치 작금의 트랩 뮤직처럼 자극적인 소재로 소비되어온 게 사실이다. 다만, 그중에서도 음악적 미학을 발견할 수 있는 갱스터 랩은 간간이 등장했는데, 그 주체가 달라진 덕이었다. 이제는 꼭 갱 출신이거나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갱스터 랩을 하는 랩퍼가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블랙 커뮤니티에서 일명 ‘갱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6~70년대부터 갱을 정의하는 범위는 매우 넓었다. 많은 이가 일반적으로 떠올릴 거대 조직에 몸담고 있는 이들부터 동네에서 무리를 지어 다니며, 소규모로 마리화나와 마약 거래 등을 하거나 사람들의 돈을 빼앗는 이들까지 전부 포함했는데, 오늘날 랩퍼 대부분은 가난한 형편 속에 이러한 부정 행위들을 저지른 과거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직간접 경험을 바탕으로 가사를 쓰게 되면, 갱스터 랩으로 분류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알려진 랩퍼가 되어서까지 갱스터 생활을 병행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현역 갱 시절, 이름을 날렸던 걸로 유명한 전설적인 갱스터 랩퍼 엠씨 에잇(MC Ehit)이 한 인터뷰에서 했던 발언(“돈을 벌면, 누구나 빈민가를 뜨고 싶어할 겁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역시 이를 고스란히 대변한다. 그래서 갱스터 랩퍼들의 가사에서도 자수성가는 종종 주요 컨텐츠가 된다.

여기에 더해서 시간이 흐르며, 갱스터 랩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하나의 영화 장르(누아르나 범죄 영화)처럼 굳어지면서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100% 진실이냐 아니냐는 꼭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랩퍼는 배우가 되고, 가사는 시나리오가 되어 그것이 극적으로 쾌감을 준다면, 이 자체만으로도 장르적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피프티 센트(50 Cent)의 [Get Rich Or Die Tryin']은 실제 경험과 극적 미화가 결합되어 탄생한 대표적인 갱스터 랩 걸작이다. 특히, 이 앨범은 리얼리티 랩이 가장 큰 미덕이던 ‘90년대, 닥터 드레(Dr. Dre), 스눕 독(Snoop Dogg), 워렌쥐(Warren G) 진영을 비롯한 웨스트코스트 힙합 씬에서 나온 수많은 걸작들 이후, 메인스트림에서 맥이 끊기다시피 했던 갱스터 랩을 부활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2012년에 발표되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정규 데뷔작 [Good Kid, M.A.A.D City]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탄생한 갱스터 랩 걸작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처럼 흑인들의 비극적인 역사와 불공정했던 사회적 대우, 그로 말미암은 비참했던 현실에 대한 걸 바탕으로 이해되고 하나의 엔터테인먼트가 된, 그럼에도 그 소재의 자극성과 표현의 위험수위 탓에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갱스터 랩은 비록, 약간의 주체와 주제의 변화가 있긴 했지만, 애초에 한국에서는 탄생하는 게 거의 불가능한 장르다. 모 방송에 출연했을 당시에도 얘기한 것처럼 혹시라도 김태촌, 조양은 같은 이들이 깡패 짓을 소재로 랩을 한다면 모를까. 어쨌든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갱스터 랩을 가사적 측면이 아닌, 음악 스타일(비트)로 잘못 이해해온 탓에 웃지 못할 해프닝을 종종 만들어냈다. 한국대중음악사에서 절대적인 뮤지션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서태지가 정규 4집 타이틀곡인 "컴백홈"을 갱스터 랩으로 소개했던 것도 잊지못할 일화다. 가출한 청소년들에게 집으로 돌아오라 권고하는 따뜻하고 계도적인 가사의 이 곡은 어느 면으로 보나 갱스터 랩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역시 비트 스타일로 갱스터 랩을 이해했던 게 분명하다. 당시 이 곡이 많은 가출 청소년들을 집으로 돌아오게 했던 아주 의미 있는 음악이었다는 사실과 별개로 창작자는 물론, 음악 관계자들 역시 기사에서 갱스터 힙합을 남발하며, 장르에 대한 몰이해를 보인 건 두고두고 곱씹어볼 일이다. 무엇보다 십 대 팬층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아이돌들까지 간혹 ‘갱스터 힙합'이라는 키워드로 홍보하는 걸 볼 수 있는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가 굉장히 제한적이었던 당시(1995년)와 달리 조금만 검색해보면, 갱스터 랩이 어떤 장르인지 대략 알 수 있다는 걸 고려하면, 더 씁쓸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독자들만이라도 갱스터 랩에 대한 오해와 궁금증이 깔끔하게 풀렸길 바라며.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10 00:3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