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현, 『라깡의 루브르』, 위고, 2016.

허무를 넘어, 당신만이 부를 수 있는 애도의 노래를 위하여

  흔히 박물관은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형성된 각종 아름다움들이 축적된 공간쯤으로 생각된다. 그런 생각 속에서 정작 그것이 왜 아름다운 것인지, 더 근본적으로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와 관련된 질문을 던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누군가로부터 주어진 것인지도 모를 아름다움의 문법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일 터다. 최근 정신분석가 라깡의 눈으로 박물관의 문법에 문제를 제기하는 책이 발간됐다. 『라깡의 루브르』의 부제는 ‘정신병동으로서의 박물관’이다. 이 책은 루브르 박물관이 신경증과 정신병, 성도착증으로 가득 찬 인간과 사회의 은유가 될 수 있다고 보고 그 의미를 되짚어 본다. 박물관으로부터 시작한 논의는 삶의 윤리에 도달하면서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게끔 한다. 저자 백상현 선생을 만나 책의 안팎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Q. 책의 제목이 인상 깊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라깡의 루브르’인지가 궁금합니다.
A. 실제로 라깡은 정신분석이라는 복잡한 학문의 이론을 문화나 예술을 통해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저 또한 라깡의 설명 방식에 많이 감화됐었지요. 예술을 통해 철학적 이론을 은유하는 방식은 독자를 매혹하는 것에서 나아가 우리의 존재 자체를 매혹하는 정말 멋진 방법입니다. 그 대상이 왜 다른 곳이 아닌 ‘루브르’냐는 질문을 이전부터 많이 받아왔습니다만, 그것은 정말 우연일 뿐입니다. 어쩌다 유학을 가게 된 곳이 파리였고, 미술이 전공인 제가 루브르 박물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이니까요. 그런데 아마 책을 읽다보면 왜 루브르일 수밖에 없는지가 해명될 것입니다. 저도 글을 쓰면서 루브르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바로 루브르가 문명의 축소판인 곳이었기 때문이죠.

Q. 루브르가 ‘문명의 축소판’인 이유와 그 의미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
A. 언어에 의해서 어떻게 문명의 제국이 형성되는지, 그 과정을 루브르가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상적으로 이해되는 제국이 아닌, 아무리 작은 나라라고 할지라도 그들은 모두 ‘언어의 제국’이라고 볼 수 있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은 나라뿐 아니라, 그 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하나의 문명이고 어떤 의미에서 우리 개개인 또한 일종의 작은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언어적인 질서는 박물관을 지배합니다. 이와 같은 은유들이 가장 매혹적이고 웅장하게 존재하는 곳이 루브르입니다.
  인간이 언어에 의해서 지배되는 존재라는 점은 라깡 뿐 아니라 20세기 프랑스 철학 일반이 동의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정신분석은 여기에서 나아가 우리의 무의식이 이미 언어로 장악되어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때의 언어는 완전히 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타자에 의해 주어지고 그것을 학습해 얻은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신체는 타자의 언어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타자의 언어, 그 가장 끝 지점에는 정치와 권력과 같은 제국적인 것이 존재합니다. 박물관은 거시적인 차원에서 언어에 의한 지배의 한 은유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Q. 그렇다면 언어의 제국인 루브르 박물관을 통해서 어떤 것을 살필 수 있을까요?
A. 인문학은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을 그대로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는지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하는 입장에 놓여있습니다. 현실은 은폐를 통해서 우리를 지배합니다. 그렇다면 박물관은 무엇을 숨기고 있는가, 그것이 고민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박물관이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살피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또한 알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우리는 박물관에서 아름다움과 천재성, 인류의 아름다움 같은 것을 봅니다. 그것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강조되는지를 살펴보니, 그것이 철저하게 환상에 의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박물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고귀한 장소가 아니라, 오히려 고귀함이 없다는 것을 은폐하기 위해서 천재성의 신화를 만들어내고 인간의 세계가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참을 수 없어서 아름다움이라는 환상들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도망치려고 하는 환상의 이면에는 ‘허무’가 놓여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장소, 그것을 끝끝내 억압하고 은폐하려는 게 문명이었다면, 일단 환상을 횡단해서 그 장소에 도달하고 난 뒤 우리는 허무를 만나게 되겠지요. 허무의 장소에 도달한 자는 우울함과 애도가 불가능한 슬픔을 느끼게 됩니다.

Q. 우리 사회에는 애도가 잘 되지 않는 우울한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A. 단적으로 세월호 2주기가 넘었는데, 왜 아직도 세월호의 유가족들은 슬퍼할까요.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그들은 상실한 대상에 대한 적절한 애도의 노래를 찾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슬픔이 멈추기 위해서는 잘 슬퍼해야 하고, 그래야지만 상실의 우울에만 갇혀있지 않을 수 있죠. 이를테면 장례식장에서 상실한 자들은 그 대상을 생각하며 계속 이야기를 하고 주변에서는 그것을 잘 들어줍니다. 이것이 바로 애도의 노래입니다. 그런데 세월호 유가족들은 자신들이 상실한 것에 대한 제대로 된 애도의 노래를 못 부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불러주고 있는 노래가 적절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시체 장사를 한다는 둥 너무 심한 말들이 오가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정의로운 애도의 노래입니다. 그 때에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혀서 직무를 유기한 사람은 처벌을 받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오명을 벗는 과정이 필요한데, 자꾸만 다른 언어로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죠. 애도를 구성하고 있는 언어가 낡은 언어라면 애도를 받는 사람도 결코 애도를 끝낼 수 없습니다. 그 슬픔에 합당한 애도의 노래를 부를 수 있어야 상실의 우울도 끝날 수 있을 것입니다.

Q. 환상을 횡단하고 난 이후의 허무, 책에서는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횡단의 횡단’이라는 개념을 말씀하셨는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A. 허무의 장소가 우리가 도달해야 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패배주의적인 관점입니다. 이런 관점을 넘어서 만약 인간이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다면, 환상이라는 가짜 가치들을 다 횡단한 뒤 우리가 텅 빈 허무의 장소에서 무엇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이 지점은 정신분석의 화두이자 제 책의 중요한 화두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환상을 횡단하고 허무의 장소에 도달한 뒤 또 다시 그곳을 횡단해서 허무를 건너자는 것을 말하고자 ‘횡단의 횡단’이라는 개념을 썼습니다. 우리 주변의 많은 이들이 우울증을 겪고 있고 누군가는 자살을 하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이미 환상을 횡단하여 허무의 장소에 도달한 것이죠. 그렇게 우울에만 머물지 않게 위해서는 허무의 장소를 다시 횡단해야 할 것입니다. 횡단의 횡단은 우리가 스스로의 노래를 주체적으로 부르면서 가능할 수 있습니다. 박물관의 아름다움이 누군가로부터 주입된 것이라는 깨닫고 초월적인 아름다움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제 본인이 아름다움의 기준을 만들 수 있는 것이겠죠.

Q. ‘횡단의 횡단’을 행한 예로 까라바조의 회화 창작을 들고 계십니다. 예술가가 아닌 일반인의 일상에서도 그것이 가능할까요?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가능한 것일지 여쭙고 싶습니다.
A. 물론 아주 일상적인 차원에서도 횡단의 횡단은 가능합니다. 가까운 예로 연애와 사랑을 들고 싶습니다. 우리가 연애를 하는 것은 사실상 환상에 의해서 가능합니다. 연애가 시작될 때, 누군가를 마음에 담는 행위의 이면을 잘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타자의 언어가 새겨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요즘 많은 분들이 송중기나 송혜교와 같은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도 이 시대가 만들어놓은 아름다움의 틀과 부합하는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연애를 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행위도 그리 고귀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만난 누군가와 오래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했을 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랑이 식는다고들 말하죠. 그런데 저는 사랑이 식었다고 느껴지는 그 순간이 굉장히 좋은 때라는 생각이 들어요. 타자가 나에게 새겨놓은 문신이 녹아내리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이후부터 우리는 내 곁의 이 사람이 아름답지 않다는 생각과 계속해서 싸워야만 합니다. 그 싸움에서 이겨야지만 이 사람이 진정 아름답다는 생각을 얻을 수 있지요. 제게는 내 곁의 사람이 밉게만 보이는 것이 타자의 언어와 지식에 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아름다움의 환상으로부터 우리 각자가 느끼는 개별적인 아름다움을 되찾아오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이 모든 것은 결국 윤리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타자의 언어에 의한 주입과 강제에서 벗어나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찾아와야 하고, 또 자신만의 애도의 노래를 부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 인터뷰·정리: 최은혜 기자 sinedoque@naver.com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9 04:2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