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한국지식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며

민영현(전 경성대 강사/현 부산대 비정규교수)

  지난 2015.12.15. 대교협 주최 제52회 대학교육 정책포럼에서는, <대학교원 및 시간강사의 근로시간에 대한 종합적 이해>라는 주제의 발표회에서, 「시간강사 퇴직금에 관한 일부 하급심 판결에 관한 검토」라는 기획형 학술연찬회가 진행된 바 있다. 처음 이 제목을 얼핏 보면서는, 이제야 대학들이 좀 제대로 된 생각을 해 보려는 것인가 하는 기대를 갖고 읽게 되었다. 그런데 대학교육협의회란 카르텔에서 기획·의도한 것이 결코 고등교육의 정상화와 학생들의 학습권 및 소외된 시간강사들의 교육권을 위한 협의체가 아님을 확인하는 선에서, 발표문을 내던지고 말았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부당해고에 따른 강사 지위에 관한 확인소송>의 3심을 통해 일괄 기각 패소를 당하고, 이에 따른 소송비용까지 강제 추징당한 상태로 하릴없이 1인 시위에 나서 있다. 그러면서 더 이상 정부나 입법부·사법부의 전향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음을 몸소 겪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교협이 주장하는 바를 요약하면, 지금까지 일관되게 판단해 온 사법부의 ‘시간강사 1시간 당 3배수의 근로시간 인정’과 이에 따른 퇴직금 관련 판결은 대학경영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한다. 때문에 이에 대한 새로운 합리적 판단을 필요로 하는데, 결국 강사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퇴직금을 주지 않아도 되는 판결로 바뀌어야 하며, 이 경우에만 법률 상 합리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대교협이 말하고 싶어 하는 내용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이는 사실상 시간강사와 관련하여 대학들이 어떤 시각을 가지는지를 알게 만든다. 다시 말해 대학은 시간강사에 대하여 일용잡급직으로서의 단순 노무자, 아니 기계의 부속품 정도로 밖에 이해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오직 경영을 위해, “박사급 이상의 시간강사들을 마음대로 해고하고, 언제든 그런 인력들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합리적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는 박사급 시간강사의 지적 능력과 연구자로서의 학문적 위치, 교육자로서의 기본권 아니 심지어 인간의 인권에 대한 어떠한 배려도 없다. 오직 기업처럼 소위 경영논리를 내세워, 단지 소모품으로서의 강의근로자가 지속적으로 제공될 수 있는 그런 사회․법률적 환경만을 바라고 있다. 이로부터 저항 없이 순종하며 대학에 감사할 줄 아는, 그런 잘 길들여진 시간강사들을 대학은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한국의 대학들은 미래를 위하여 또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인간사회를 위하여 올바른 교육․정치․법률적 이념에 무엇이어야 하는 지에 대해, 스스로 무지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잘못을 지적하고 불의에 저항함으로써 사회는 성장해 나간다. 그런데 주어진 특권에 기대어 안주한다면, 우리의 대학은 언제 성장하기를 꿈꾼다는 말인가. 어쩌면 대학들의 관심은 오직 하나, -비록 육영사업․학교재단으로 포장은 했지만-, 정부의 교육재정지원과 학생들의 등록금, 여기에 직원들의 비정규직화를 통하여, 남겨진 잉여의 자본을 재투자하여 <주식회사 대학교>와 관련 재단법인이 영원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러면서도 대한민국 지식과 지혜를 재단할 수 있는 교육 권력과 자본주의적인 안정된 수익을 바라는 것이다. 여기에 사회적 책임과 교육적 책무·인간에 대한 기대는 오간데 없다. 있다면 오직 하나, 자본과 돈의 관점으로 대학의 울타리, 상아탑을 채우고자 하는 탐욕일 뿐이다.
  그러나 이는 결국,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성찰과 이해의 부족에 다름 아니다. 자본의 논리만으로 인간의 삶과 사회가 나아지는 것은 아니며, 물질적 풍요를 넘어 진정한 어울림의 교감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사람 사는 세상이 지녀야 할 최선의 화두가 될 것이다. 정상적인 시민교육을 통해 인간에 대한 배려와 함께, 같이하겠다는 약속 그리고 그에 따른 믿음이 있어야만 한다. 배제되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줄이고 학교와 학생 그리고 노사정이 화합할 때, 사회의 약자들은 또한 강자들을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대학의 시간강사들이 한국의 대학들을 믿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강사문제는 해결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우리에게 그런 날이 올 것인지 아니 올 수나 있을 것인지, 오늘도 나는 의심하고 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9 02: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