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찰과상

선민서 기자

  독일의 문예 비평가 발터 벤야민은 현대인의 대도시 체험의 본질로 충격체험을 꼽았다. 그에 따르면 보들레르와 같은 시인의 시에 나타나는 ‘충격’의 요소들은 19세기에 성장 일로를 걷던 대도시 파리에서의 체험과 무관치 않다. 한편 게오르그 짐멜은 대도시의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생활을 관찰하여 신체의 사회학을 구성하기도 했다. 무심코 지나칠 법한 도시 군중의 생태학들이 그에게는 새로운 통찰의 근거였다. 어느덧 인구 1000만이 넘은 거대 도시 메트로폴리스 서울에서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나날의 충격 체험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저도 모르게 피부에 갑각류를 두르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단단한 휘갑을 두른다 해도 그 휘갑 속을 파고드는 충격의 체험을 피하기는 어렵다. 그러다 보니 충격 체험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오히려 현대인의 감수성에 맞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겠다.
  대중교통을 벗어난다고 해서 끝은 아니다. 우리는 직장이나 생활공간에서 꼬인 인간관계들이 주는 충격을 맛보기도 한다. 그와 같은 관계란 없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한 번 꼬여버린 관계는 더군다나 풀어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그 꼬임을 견디는 것, 마음의 굳은살을 만드는 것이 최선이라 여기게 된다.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은 순간이지만 그 관계를 복원하는 데에는 무수히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이미 무너져 내린 건물을 복구하기 위해서는 다리 기둥의 첫 번째 벽돌부터 다시 쌓아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계들은 그렇게 무너져 내린 채로 방치되기 마련이다. 특히 익명의 타인들 사이에서라면 더군다나 그렇다. 불현 듯 터져 나오는 기침이나 웃음처럼 신체의 지형을 새롭게 뒤바꾸는 출발점은 어디일까. 외면하려는 정신의 작용과 타인의 얼굴과 몸을 알아보는 신체 사이에서 기침은 터져 나온다. 기침이 정신보다 몸이 먼저 타자에게로 향하는 것이라면 웃음은 몸보다 정신이 먼저 타자에게로 향하는 것이다. 웃음 속에는 당신이 이곳에 당도하기를 기다렸다는 준비와 기다림의 시간이 담긴다. 마음의 찰과상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몸의 무기는 웃음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의 굳은살을 부드럽고 연하게 녹여줄 웃음을 준비하고 싶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9 09: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