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진 / 고려대 대학원 비교문학 박사과정

  누군가의 기억 속에 어떤 방식으로 남아 있을지 모르는 것들

  누구나 살아가며 무언가를 기억하는 방식과 자리매김 된 기억을 소환하는 습관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가령 예전에 좋아하던 노래를 듣거나, 그 시절 뿌리던 향수를 맡거나, 기억 속에 각인된 장소나 먼지 가득히 쌓여 있는 특정 소품을 마주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때 당시의 감성과 기억, 그리고 현재의 나에 대한 여러 과정과 기원으로부터의 영향을 되짚어 보곤 한다. 의도적으로 기억의 끈을 지우려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누군가에게 어떠한 방식으로든 기억되고, 또 그들을 기억과 추억 속 어딘가에 공간을 만들어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살아감에 있어 가장 불행한 사람은 누군가에게 어떠한 형태로도 기억되지 않는 사람의 삶, 혹은 쉽게 잊혀 진 삶이라 하는 지도 모른다.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은 다들 심적으로 병약하다. 삼포에 이어 사포 오포로 이어지는 숨 막히는 삶과 생존을 위한 연구 속에서 점점 더 약해져 갈 수밖에 없는 건 분명하다. 한 끼의 빵과 장미 한 송이 중 하나를 택하라 했을 때 빵을 택하는 이들에게 어느 누구도 쉽사리 손가락질을 할 수 밖에 없는 생존의 시기가 되어가고 있다. 한편으로 꾸준히 다니던 헬스를 끊는다는 것, 열심히 활동하던 학회를 빠진다는 것, 종교 활동을 멈춘다는 것, 정기적으로 참석하던 지인들과의 모임에 한 번씩 빠지기 시작한다는 것 따위의 일상적 배속(配屬)이나 자발적 이탈은 문제적 측면의 인식이라기보다 새로운 대안적 선택 가운데 하나로 인식될 수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하기 싫지만 할 수 밖에 없는, 능력은 없지만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등의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너무 지쳐가고, 또 우리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내가 무엇을 위해 현재를 행하고 있는지, 훗날 나에게 무엇이 기다리고 있길래 지금 당장 눈 앞 과업을 억척스레 붙잡고 있는지, 끝끝내 버텨낸 나에게 나는 과연 잘 버텨내었다라고 다독여줄 예전의 나다운 인정(人情)이 남아있을지, 인정보다 다른 더 기댈만한 환경, 혹은 한 몸 뉘일 공간이라도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예전의 지금보다 때 묻지 않았던 모습을 갈망하고, 당시 접했던 영화나 책, 음악 등을 통해 추억의 놀음에 기대어 그 당시의 나를 찾으려 하는지도 모른다. 아니 나를 자가적으로 치료하는 자발적 회복의 행위일지도 모른다. 유년시절의 장난감을 다시금 사 모으고, 좋아했던 가수의 재결합 소식을 반기며, 교복을 입고 당시의 친구들과 보러갔던 영화가 재개봉 한다는 소식에 친구들에게 몇 년 만에 다시금 소식을 묻기도 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극장가에는 '재개봉 영화 관람 열풍'이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러브레터(1995/2016), 인생은 아름다워(1997/2016), 이터널 선샤인(2005/2015), 비포선라이즈(1995/2016)등의 영화들은 재개봉된 영화 일뿐만 아니라, 온라인 영화파일을 통해서도 충분히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좀 더 주변을 살펴보면, 윤동주 시인의 탄생 100주기를 기념해 1955년 발행된 시집 증보판을 동일한 형태로 올 초에 발매하였는가 하면, 연극계에서도 김우진의 ’이영녀‘와 김영수의 ’혈맥‘, 이근삼의 ’국물있사옵니다‘ 등의 원작 공연을 현재적으로 재해석하여 관객들과 마주한다.
  분명 이러한 영향은 ‘응답하라’시리즈의 드라마와 ‘토토가’등의 예능과 같이 추억과 기억을 통해 현재적 삶을 되돌아보게 만들고 다소 삭막한 지금의 일상이 나아가야 할 진솔한 방향, 그리고 처음 이 영화과 공연, 음악을 접했을 당시의 나로 느낌과 추억 속으로 돌아가고 싶은 본능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의 자신이 내적으로만 추억하고 기억하는 것에 대한 것들로는 회복하기 힘들기에 외부적 추억거리를 찾아야 하고 갈구해야 하는 자력회복과 각성능력의 부재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스마트 폰 덕(?)분에 우리는 친구의 전화번호가 적힌 수첩을 잃었고, 가족의 폰 번호도 외우지 못하게 되었으며, 흥얼흥얼 따라 부르던 노래 가사도 외워서 부르기 힘들게 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우리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신기 할 정도로 기억이 되고, 각인되거나 규정되며, 때에 따라 이미지화되기도 한다. 어쩌면 지금처럼 참 아프다 아프다 하는 시기도 언젠가 그 어떤 이들에게는 아름다운 날들 가운데 하나로 소환될 수 있는 각인된 과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9 10:2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