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원
본교 영상문화학 협동과정 박사과정

한국사회의 DNA가 변화하는 것을 기대하며

  지난 제211호 대학원신문의 ‘원우칼럼’은 남성과 여성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통념과 여성도 남성과 같은 사회적 권리와 기회를 가져야 하며, 성 평등이 이루어져야 하고 이것은 인간의 행복추구권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칼럼을 보면서 리처드 세넷이 주장한 ‘새로운 자본주의의 문화’의 관점에서 성차에서 발생하는 불이익, 타인에 대한 폭력과 에밀 뒤르켕의 사회적 관점에서 본 〈자살론〉을 살피려 한다.
  세넷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소비주의 사회가 등장하면서 사회를 지탱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신뢰를 저버리게 하고 사람을 분리하며, 감시와 통제를 강화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믿음의 상실과 통제가 권력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속에 고착된다는 것이다. 학교와 직장은 우리를 경쟁적인 관계로 만들어 버렸다. 한 나라의 시민으로 국가에 참여하고 정당한 권리를 요청하면 좋겠지만, 고객의 입장에서 서비스를 요구한다. 온라인상에서는 타인과 접속되어 있지만, 나머지 시간은 혼자 있는 경우가 많다. 대학에서도 정년보장 교수를 채용하는 사례는 거의 없고 비정년 교수로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학교에서 근무 기간을 연장해준다는 보장도 없다. 이런 현상은 비교적 장시간 동안 이루어진 한국사회의 익숙한 모습이다. 세넷의 주장처럼 우리는 직장을 단기 표류하면서 동료들과 장기적 유대 관계의 기회를 상실했다. 그런 과정을 감내하면서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사회에 대한 불만이 쌓여간다.
  문제는 이러한 좌절과 분노에 대한 표출을 스스로 부가한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결과는 OECD 최고 수준의 높은 자살률로 드러난다. 인간의 자살에 관한 문제를 최초로 분석한 에밀 뒤르켕은 〈자살론〉에서 ‘아노미(anomie)’적인 자살론을 주장한다. ‘아노미 현상’은 사회적인 변동기 때 기존 질서의 파괴에 따른 가치관이 붕괴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현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불안과 무력감 때문에 자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살이 경제의 불황기에 증가한다는 사례 외에도 실증적인 여러 연구에서 자살의 모든 책임이 사회에 있다는 직접적인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파괴와 공격의 에너지는 자신보다 약한 타인에 향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 결과 여성혐오가 만연하게 되고, 서로서로를 별다른 이유 없이 미워하게 된다. 2005년 지하철에서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내린 어떤 여성의 이야기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 여성은 어느 날 갑자기 개인의 신상과 자신의 얼굴 사진이 사이버상에 급속도로 퍼지면서 많은 네티즌에게 집중적으로 테러를 받았다. 이런 행위는 집단이 개인에 가하는 일종의 사이버 인민재판이다. 문제는 그 여성의 잘못된 행동과 관계없이 본인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고 타인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얼굴이 노출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개인에 있어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 일반시민들이 타인의 잘못된 행동을 목격하고 그 장소에서 충고할 수는 있지만, 사이버상에서 집단으로 한 사람의 인격을 매장 할 수는 없다.
  한국사회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구조적인 문제에서 희생자는 여성뿐만이 아니라 남성도 해당한다. 남성과 여성들은 그들을 패배자로 낙인찍고 경제적 도구로만 간주하는 절대적인 권력구조에 저항하기 힘들다. 그들이 하는 행위는 스스로가 속한 사회적 약자들을 경멸의 대상으로 소비한다. 더 큰 문제는 새로운 자본주의 문화에서 경멸과 차별이 ‘희화화’로 포장되어 소비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것은 개그 프로그램에서 유머의 형식으로 혹은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사실을 폭로하지만, 일시적인 카타르시스만 안겨주고 그것 역시 소비되고 대안은 없다는 것이 문제다. 현재까지 한국사회에서 성차에서 발생하는 불이익, 폭력성, 불평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변화의 조짐을 찾기 어렵지만, 앞으로 한국사회의 DNA가 변하는 것을 기대하면서 글을 마친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9 06:3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