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에 대한 오해와 진실: PA 마크는 19금이 아니다.

강일권(힙합/알앤비 미디어 리드머 편집장, 음악평론가)

  힙합 음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Parental Advisory (이하 ‘PA’)’라는 마크는 힙합을 대표하는 표식과도 같다. ‘미성년자가 듣는다면, 부모의 동의가 필요함’ 정도의 의미가 있는 이 마크가 찍혀 있어야만 진짜 힙합 음반을 산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랩의 흐름을 끊어놓아 짜증을 유발하는 클린 버전(Clean Ver.)을 구분하여 비싼 돈을 날리지 않게 해주는 고마운 상징이며, 그 디자인 자체가 때깔 나는 ‘힙합 앨범 커버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런데 국내에선 이 마크에 대해 다소 잘못된 지식이 돌고 있다. 혹자들이 얘기하는 ‘미국판 19금’이라는 표현 얘기다.

  왜 이것이 잘못된 부분인지를 말하기 전에 추억 하나를 풀어볼까 한다. 대학교 1학년 시절(‘97년)지금은 불명예 속에 사라진 압구정의 모 레코드 샵에서 투팍(2Pac)의 새 앨범 [R U Still Down?]을 구입했을 때 일이다. 흥분된 가슴을 안고 플레이를 했는데, 이게 웬일, 욕과 비속어가 다 잘려서 나오는 클린 버전이었다. 투팍의 옹골지고 강력한 발음의 ‘fuck’이 거세된 랩이라니…. 분명히 음반 뒤에 ‘Printed In USA’를 확인했던 나로선 몹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싱글이 아닌 앨범까지 클린 버전을 찍어내는지 몰랐던 거다. 이후부터 난 음반을 살 때 ‘PA’ 마크에 더욱 강한 집착을 갖게 되었는데, 약 1년 반 정도 뒤에 반전이 일어난다. 너티 바이 네이쳐(Naughty By Nature)의 네 번째 앨범이었던 [19 Naughty Nine: Nature's Fury]는 ‘PA’가 찍혀있지 않았음에도 욕설이 거침없이 나왔던 것. 너티 바이 네이쳐는 워낙 욕을 잘 사용하지 않는 팀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PA’ 마크에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투팍의 앨범과 오버랩되어 제작사 측에서 실수로 마크를 안 찍었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애초부터 ‘Parental Advisory’는 반드시 부착해야만 하는 마크가 아니었던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 달리 ‘PA’는 등급 표시도, 레이블이 의무적으로 표기해야 하는 마크도 아니다. 한마디로 ‘미성년자 청취불가’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말씀. ‘들어선 안 된다!’라는 ‘불가’와 규제의 의미가 아닌 ‘동의’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미국에서는 한국과 달리 실질적으로 나라가 대중음악의 수위를 규제하는 법이 없다. 단지 TV와 라디오 방송국이 각각 기준을 세워놓고 방송에 적합한가 아닌가를 판가름할 뿐이다. 그러므로 음반에 욕, 비속어, 과격한 내용의 콘텐츠가 있다 해도 이 마크를 부착하느냐 마느냐는 레이블의 자유인 셈이다. 그리고 ‘PA’ 마크를 만든 곳은 다름아닌 ‘미국 레코드 산업 협회(RIAA)’다. 우리에겐 음반 판매량을 집계하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고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곳이다(포털 사이트에서 ‘RIAA’를 검색해보면, 자세한 내용이 나오니 여기선 지면 관계상 생략하겠다).

  중요한 건 RIAA가 한국의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처럼 창작을 규제하는 단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음악산업과 관련한 정부의 정책이나 규제를 감시하는 게 이들의 일 중 하나다. RIAA는 단지 과격한 콘텐츠가 담긴 음악이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각 레이블에게 이 마크가 찍힌 스티커를 부착해 줄 것을 권유할 뿐이다. 흥미로운 건 레이블 대부분이 자체적으로 클린 버전과 더티 버전을 나누고, ‘PA’ 마크를 커버에 넣는다는 것이다. 음반 프레싱 비용을 고려해야 하는 인디 레이블은 클린 버전을 내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역시 ‘PA’는 표기하고 있고 말이다.

  ‘Parental Advisory’ 마크에 대한 논의가 대두된 건 1985년이었다. 미국의 학부모로 구성된 민간음악검열단체인 ‘Parents Music Resource Center (PMRC)’의 꾸준한 압박이 주된 요인이었는데, 최초엔 ‘Explicit Lyrics(노골적인 가사가 들어있음)’로만 표기되었으며, 지금처럼 커버 자체가 아닌 포장비닐에 스티커로 부착되었다. 그리고 이 ‘Explicit Lyrics’ 마크를 달고 나온 첫 번째 힙합 앨범은 갱스터 랩의 전설 아이스-티(Ice-T)의 87년 작 [Rhyme Pays]였다. 이후, 1990년대에 들어서 오늘날 디자인의 ‘Parental Advisory: Explicit Lyrics’ 마크가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다시 ‘Explicit Lyrics’는 좀 더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Explicit Content’로 교체되었다. 특히, 옛날 에로영화 비디오 테잎의 ‘연소자 이용불가’를 연상하게 하는 빨간색 마크와는 디자인부터 차원이 다른 ‘PA’ 마크는 티셔츠 디자인으로도 사용되어 인기를 끈 바 있는데, 최근에는 스냅백과 아이폰 케이스에도 사용될 정도로 광범위하게 머천다이즈 상품화되었다.

  이처럼 나라와 단체는 대중음악의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주고, 창작자 측은 나름의 방식을 통해 스스로 조율하는 모습은 참 아름답고 부러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무조건적인 규제로 청소년을 보호하겠다는 시대착오적 발상을 기반으로 음악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을 앞세워 정부가 직접 무식하게 등급 매기기를 일삼는 한국의 실상을 떠올리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그동안 한국에서 ‘PA’를 ‘미국판 19금’이라 표현해온 건 아주 잘못된 비유다. 그야말로 ‘PA’ 마크에 대한 모독이다 무서울 정도로 꽉 막힌 사고방식 아래 강제로 매겨지는 ‘19금’과는 그 격이 다르다는 사실, 이번 기회를 통해 많은 분이 알게 되길 바란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9 00: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