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강사의 삶! 또 하나의 죽음을 떠나보내며...

민영현(現 부산대학교 비정규교수·前 경성대학교 시간강사/해고지식노동자)  

  전봉주 교수! 한 여인의 남편이자 자녀들의 아버지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일생의 멘토이자 스승으로 기억되는 이름이다. 그런 그가 1달 전 우리 곁을 떠났다. 영원히... 지금도 잘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내 귓가엔 아직도 작년 연말, 망년회에서 그가 던진 이야기가 화두처럼 남아 있다. “민선생! 1인 시위 말고,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겠소?”
  아직도 이 말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한 나로서는 갑작스레 날라든 비보에 할 말을 잃었고, 더 이상의 말문마저 막히고 말았다. 부산 가톨릭대에서 강의를 해오면서 나름대로 인생과 죽음에 대한 이해를 가진 분으로 알고 지냈던 그 사람이, 내게는 선배이자 동료이며 또 다른 인문학 강사의 한사람으로, 세상과 사회로부터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도로 내어줄 줄 알았던 그 양반이 하루아침에 불귀의 객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지금도 인터넷에는 지난날 그가 남겼던 삶의 자취가 뚜렷이 전해져 오고 있다. 한 청년의 삶과 미래를 이끌었던 스승이자 인문학자로서... 사람 사는 세상의 아름다움은 단순히 돈과 자본보다 인문학의 힘으로 구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삶과 인생의 가치 그리고 가난한 자들의 정신적 에너지로서의 인문학의 실천을 몸소 구현했던 그였다.
  그가 떠난 지금, 진행해오던 인문학 강좌는 이를 대신할 사람을 찾고 구하느라 바쁘다. 하지만 대신할 수 있는 것과 대신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일이다. 그 사람이 떠난 후의 앎과 인문학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그가 한국 지식사회의 처참함과 잔인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최악의 선택을 한 것으로, 부산일보는 전하고 있다. 결국 또 한 명의 대학 시간강사가 죽음으로 내몰린 것이다. 단지 하나의 죽음이 더해진 것만이 아니라 한국 대학과 고등교육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결코 편치 못하다.
  지금 한국의 지식사회는 붕괴되고 있다. 앎과 지식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그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죽이고 있는 이 현실은 어쩌면 대부분이 시간강사라고 하는 세상에 유례를 찾기 힘든 대한민국만의 직업군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미 수많은 죽음을 이 제도는 양산해내었고,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죽음을 만들어 낼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지방대의 시간강사다>라는 책을 적었던 또 한 명의 선생님을 떠 올리게 된다. 그 책을 출간하고 난 후, 이 분은 소위 학문적 왕따를 당한 것으로 후일담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사건과 사연이 겹치면서, 과연 이런 직업에 앞으로 누가 이를 하겠다고 나설까 하는 생각이 불현 듯 밀려왔다. 그리고 맡을 사람이 없게 되면, 그때는...
  단순히 교수가 되기 위한 징검다리 가교로서의 시간강사란 의미는 이미 퇴색해 버린 지 오래다. 지금 인문 사회학을 전공한 석·박사의 교수요원들이 우선 맞이하는 직업으로서의 시간강사는 어쩌면 이를 통해 정년을 맞이해야 하는, 대학에 고착화된 특수 직종이기도 하다. 그러나 비록 비정규직이지만 강사들이 가르치는 교육 내용은 정규직 교수님들의 그것과 결코 다를 바 없다. 아니 열정과 눈물의 강의 그리고 불완전한 초빙이라는 점에서, 때로 강사들의 강의는 더욱 치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사들은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고, 심지어 이 같은 불평등과 부조리함이 대학사회 속에서는 마치 정당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현실 속에 있다. 더욱이 강사님들 스스로 정규 교수요원이 되지 못함을 개인적 능력의 부족으로 치부하며 감내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을 단순히 개인적 운명의 영역으로 치부해버릴 수 있는 것일까? 인문 사회학을 가르칠 교수로서 시간강사를 지망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 다음엔 어떻게 되나? 안 가르치면 그만인가? 그러면 우리들의 후배와 후손들은 다른 걸 배우면 되는 것인가? 이러고도 한국사회는 미래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미래지식정보사회에서 지식노동자의 의미는 남다른 것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를 보호 유지 혁신하는 일은 국가와 사회의 연구개발 역량과 관계하고 있음을 인식해야만 한다. 굳이 학문적 융합과 통섭을 말하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연구하고 가르쳐야 하고, 누군가는 또 다시 이를 배워야만 한다. 그리고 지금 당장의 돈벌이보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인생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더욱 값질 수 있다. 우리는 결국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부산 지역 곳곳을 누비며 시민들에게 전하던 그의 인문학 내용이 들려오는 것 같은 밤. 또 다시 내일의 해는 떠오르겠지만, 그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오늘이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8 19:4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