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에서 󰡔자본론󰡕 읽기

  󰡔마르크스주의 연구󰡕(2016년 봄호 제13권 제1호)에는 <21세기 한국에서 󰡔자본론󰡕 읽기: 김수행 선생을 추모하며> 특집이 진행되었다. 이번 호 특집에는 류동민, 장시복, 최형익의 글이 수록되었다. 먼저 류동민은 ｢󰡔자본론󰡕 번역의 내면 풍경｣에서 김수행에 의한 󰡔자본론󰡕 한국어 번역의 의미를 지식사회학적 맥락에서 검토했다. 그에 따르면, 먼저 그것은 1980년대에 넓은 의미의 86세대가 주도했던 마르크스 원전의 출간 및 연구 붐의 연장선상에서 그 문제점을 정정하려는 시도였다. 둘째로 그것은 김수행 자신이 최초의 한글세대로서 젊은 세대에게 말을 걸고 응답하는 소통의 방식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김수행의 번역본이 영어본의 중역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했다.
  또한 장시복은 ｢한국에서 󰡔자본론󰡕의 수용과 번역: 일제 강점기~1980년대｣에서 한국에서 󰡔자본론󰡕이 수용되고 번역된 양상을 살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사회에서 󰡔자본론󰡕의 수용과 번역은 마르크스주의의 발전과정에서 중요한 과제였다.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초반 마르크스주의가 본격적으로 수용된 이후 󰡔자본론󰡕은 부침을 거듭하며 수용되었다. 또한 󰡔자본론󰡕은 해방 정국에서 최초로 번역되었고 1980년대 중후반에는 두 차례의 번역이 이루어졌으며 2000년대 들어서 한 차례 더 번역이 이루어졌다. 󰡔자본론󰡕의 수용과 번역은 ‘권력’과 ‘운동’의 역학관계에 양태가 결정되었다. 󰡔자본론󰡕의 수용은 분출과 잠복 속에서 발전해왔으며 이는 수용의 단절이 아니라 연속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한 󰡔자본론󰡕은 당면한 현실의 모순을 타파하기 위한 실천 운동에 밀착해 수용되었다. 마지막으로 󰡔자본론󰡕의 수용은 정권의 강력한 탄압 속에서도 줄기차게 이루어졌으며 마르크스주의의 발전의 시금석이자 나침판으로 기능했다.
최형익은 ｢󰡔자본론󰡕의 방법: 변증법과 과학으로서의 정치경제학｣에서 󰡔자본론󰡕이 방법을 구명했다. 󰡔자본론󰡕의 방법은 변증법이라는 한 가지 측면으로 한정될 수 없다. 󰡔자본론󰡕의 방법적 탁월성은 ‘과학으로서의 정치경제학’을 산출하려 했던 마르크스의 저술의도와 연관된다. 한마디로 과학적 정치경제학 이론을 산출하려는 󰡔자본론󰡕의 목표가 그것의 방법론을 규정하는 것이지 방법론이 󰡔자본론󰡕의 내용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의도에 걸맞게 마르크스는 변증법뿐만 아니라, 사유와 분석을 통해 대상의 핵심 요소를 개념화하는 데 이용한 결정추상, 정치경제학 연구편제의 핵심으로 자본과 노동과 같은 범주를 결정하는 데 사용한 과학적 실재론, 정치경제학 연구를 ‘사적 소유제’ 같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핵심적 상부구조에 대한 비판과 연결 짓는 비판적 실재론을 각각의 대상에 따라 방법론적으로 적절히 배치했다. 요컨대, 정치경제학이 하나의 과학적 연구인 한에서 󰡔자본론󰡕은 당대 최신의 그리고 최고의 연구방법론을 선보였다는 것이 최형익의 주장이다.

마르크스의 현대적 해석

  한편 일반논문으로는 이진경, 서영표, 이신용, 조복현의 글이 수록되었다. 먼저 이진경은 ｢들뢰즈의 유물론, 혹은 ‘외부에 의한 사유’｣에서 들뢰즈의 사유를 유물론적 관점에서 조명했다. 그에 따르면 역사유물론에서 확인되는 마르크스의 유물론이란 어떤 것도 불변의 본성을 갖지 않으며, 그것은 그것을 둘러싼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본성을 가질 뿐이라는 입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를 이진경은 ‘외부에 의한 사유’라고 재정의했다. 들뢰즈는 이런 의미에서의 유물론을 세 가지 차원에서 발전시켰다. 첫째는 그가 ‘계열적 사유’라고 명명한 방법인데, 어떤 항도 그것과 계열화된 이웃항과의 관계에 의해 그것의 의미나 본성이 규정된다고 보는 것이다. 둘째는 모든 것을 그것의 효과를 통해 사유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것을 어떤 효과를 산출하는 것이란 의미에서 ‘기계’라고 보는 ‘일반적 기계주의’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이는 언어의 본질은 그것의 ‘잉여성’으로 부가되는 명령어에 있다는 명제를 통해 화용론을 더욱 밀고 나가는 지점에서도 발견된다. 셋째는 모든 현행적인 것의 외부를 이루는 잠재성 개념과 결부된 것으로, 모든 규정성이 사라져버리는 순수잠재성으로까지 밀고 올라가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일관성의 평면’이란 개념은 절대적 탈영토화의 선을 타고 올라가 도달한 순수잠재성 개념이다. 이는 내재성의 개념과도 연결된다. 내재성이란 내부성의 사유와 짝하는 초월성과 반대되는 것으로, 외부에 의한 사유를 요체로 한다. 이런 의미에서 유물론적 사유는 마르크스나 스피노자와 들뢰즈의 사유가 하나로 묶일 수 있는 합류지점을 형성한다는 것이 이진경의 견해다.
  한편 서영표는 ｢라클라우가 ‘말한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포스트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적 재해석｣에서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의 사유를 검토했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그의 지적 동료인 샹탈 무프가 제창한 포스트마르크스주의는 지난 30년 동안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들의 입장을 마르크스주의의 핵심개념인 계급과 생산을 폐기한 지적 배신으로 공격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마르크스주의의 약점인 경제결정론과 계급 환원론을 극복하고 다양한 사회운동을 반자본주의 운동과 결합시킬 수 있는 이론적 돌파구로 환영받았다 이 논문의 목적은 경직된 마르크스주의가 설명할 수 없는 구체적 정세에서의 이데올로기적 투쟁과 다양한 저항적 주체 형성과정에 주목하기 위해 라클라우와 무프의 포스트마르크스주의를 수용하되 그들의 입장이 안고 있는 담론 환원론적 경향으로부터도 거리를 두는 것이다. 담론 환원론적인 경향이 낳은 라클라우의 상대주의적 편향은 그의 지적 스승인 루이 알튀세르의 과잉결정 개념을 재도입하여 그의 주장을 재평가하고 그것을 로이 바스카의 비판적 실재론으로 재해석함으로써 교정가능하다는 것이 이 논문의 핵심 주장이다. 기존 상징적 질서의 교란을 나타내는 라클라우의 탈구개념을 ‘충족되지 않은 필요’라는 실재의 체험과 결합시킨다면 포스트마르크스주의의 기여를 국지적 헤게모니적 실천을 넘어 대항헤게모니기획에까지 확대해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서영표의 의견이다.

한국사회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분석

  이신용은 ｢위임민주주의에서 사회복지의 발전과 한계: 노무현과 이명박 정부를 중심으로｣에서 우리나라 사회보장제도를 위임민주주의와 위임입법의 관점에서 검토했다. 우리나라 사회보장제도의 뿌리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군사정부가 제정한 사회보장법과 제도에 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제도의 운영 방식은 행정부가 통제하는 방식이었다. 노무현과 이명박 정부에서도 행정부가 주어진 예산 안에서 사회보장제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행태는 변하지 않았다. 두 정부가 정치적 기반이 달랐고, ‘참여복지’나 ‘능동적 복지’ 같은 두 정부의 사회복지정책의 구호가 달랐어도 사회보장제도가 운영되었던 행태는 두 정부에서도 유사했다. 두 정부에서 사회복지의 발전과 한계가 동시에 나타났던 원인은 행정부에 맡겨진 위임입법 제정 권한 때문이었다. 행정부는 이 위임입법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으로 사회보장제도를 주어진 예산 안에서 운영할 수 있었다. 이 위임입법 권한 때문에 정권이 바뀌어도 행정부는 계속해서 제한된 사회복지정책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한편 조복현은 ｢자본축적과 유효수요, 소득분배: 마르크스주의와 칼레츠키주의 모형의 비교｣에서 마르크스주의자와 칼레츠키주의자들의 주장을 검토했다. 자본축적과 경제성장에 대한 유효수요와 소득분배의 효과에 대해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칼레츠키주의자들은 서로 다른 주장을 전개해왔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생산설비의 완전가동을 가정하거나 장기적으로는 완전가동 상태로 자동 조정된다고 주장하면서, 유효수요 증가나 임금으로의 소득분배는 축적과 성장에 긍정적 효과를 갖지 못하거나 부정적 효과를 미친다고 주장한다. 반면, 칼레츠키주의자들은 경제가 장기에도 설비의 불완전 가동상태에서 작동하며, 따라서 단기는 물론, 장기에도 유효수요 증가와 소득분배 개선은 축적과 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이 논문은 이러한 양자의 차이를 정리하고 그 차이의 이유를 추적했다. 그리고 이 양자의 차이의 현실적 의미를 검토했다. 사실상 많은 경험적 연구들은 그들이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국내경제의 경우 칼레츠키언의 결론을 지지한다. 그렇지만 자본가동률은 사실 경기순환의 국면이나 경제상태에 크게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양주장의 타당성도 개별 국가의 특성보다는 장기든 단기든 특정 시기의 경기국면이나 경제상태에 의존한다는 것이 조복현의 주장이다.
  한편 박도영은 ｢과학의 귀환과 과학혁명의 구조: 류동민·주상영의 󰡔우울한 경제학의 귀환󰡕에 대한 소고｣에서 류동민·주상영의 󰡔우울한 경제학의 귀환󰡕(2015)에 대한 서평을 기재했다. 그들은 이 책에서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우울한 과학의 귀환’으로 간주하면서 이것이 과거에 되풀이된 ‘과학의 귀환’들과는 달리 경제학에서의 과학혁명으로 귀결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저자들은 분배이론과 성장이론의 역사에서 그 답을 찾으려 하지만, 진정한 답은 오히려 ‘주류경제학과 비주류경제학의 만남’이라는 필자들의 협력 속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릭 쿤은 ｢시스몽디, 마르크스, 그로스만: 방법, 상품의 모순, 공황｣에서 시스몽디가 마르크스의 경제사상에 미친 영향을 검토한 그로스만의 문헌들을 검토했다. 그로스만이 그 문헌들에서 강조했던 마르크스에서 사용가치와 가치의 모순의 문제는 지금까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지만, 오늘날 자본주의를 마르크스주의적으로 분석하는 데 중요한 시사를 제공한다는 것이 릭 쿤의 주장이다.

■ 선민서 기자 minseo@korea.ac.kr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9 06:2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