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인 대학 구조조정 저지한 이화여대 학생들


막바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월 24일, 이화여대의 풍경은 평소와는 사뭇 달라보였다. 이화여대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학교와 총장을 규탄하는 현수막, 대자보였다. 정문 근처 한쪽 편에는 이화여대 졸업생들이 학교에 항의하며 ‘반납’한 졸업장 사진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정문 근처뿐만 아니라 학교 곳곳에서도 총장 사퇴를 요구하는 현수막과 대자보는 쉽게 눈에 띄었다. 이화여대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본관 점거, 그리고 경찰력 투입

지난 7월 이화여대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장인 또는 30세 이상의 무직자를 대상으로 4년제 대학 학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미래라이프대학’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미래라이프대학은 교육부의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평단사업)의 일환으로, 이화여대는 이 사업의 참여자로 선정되며 연간 30억 가량의 정부 예산을 지원 받을 예정이었다. “사회에 진출한 여성에게 고등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시대 흐름과 건학 이념에 부합한다”는 것이 학교 측의 주장이었으나, 학생들은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이 “학위장사”라고 비판하면서, 논의 과정에서 “학생들과의 소통은 전무”했던 “학교 측의 독단적인 결정”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학교 측에 미래라이프대학의 설립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며, 이화여대 학생 수백여 명은 7월 28일부터 대학 본관을 점거하고 농성에 나섰다. 학교와 학생 사이의 갈등은 농성 사흘째인 30일 1600여 명의 경찰이 교내에 투입되면서 크게 증폭되었다. 교내에 대규모 경찰력이 투입된 이 사건에 대하여, 이화여대 총학생회는 “학교의 일방적인 사업 추진과 행정에 반대하기 위해 모인 학생들을 경찰이라는 공권력을 투입해 진압한 것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졸업생·학부모·교직원 등을 대상으로 최경희 총장 탄핵 서명운동도 벌어졌다.
같은 달 30~31일에는 카이스트와 고려대, 부산대, 경희대, 동국대, 덕성여대 등의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학교 측과 공권력을 성토하는 성명도 잇따랐다. 전국 13개 교육대학교가 포함된 전국교육대학생연합과 전국 18개 총학생회가 모인 전국대학총학생회도 8월 1일 공동 성명을 통해 “2000년대 들어 학생들을 진압하기 위해 공권력이 투입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이번 일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경찰력 투입을 두고 학교 측의 책임 논란이 불거지자, 이화여대 관계자는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찰 병력은 우리가 부른 게 아니며 학교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서대문경찰서가 이화여대 총장이 직접 서대문서 정보과장 통화해 경력 투입을 요청하는 등 세 차례에 걸쳐 학교가 경찰에 도움을 요청해왔다고 반박하면서 ‘이화여대의 거짓해명 논란’이 더해졌다.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철회 결정, 학생들은 총장 사퇴 요구

이화여대 사태가 학내 갈등을 넘어 사회문제로 비화되자, 결국 8월 3일 최경희 총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학내 문제가 사회적 문제가 된 게 너무 당황스럽고 죄송하다”며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학생들은 총장의 말을 신뢰할 수 없으며, 총장은 캠퍼스에 경찰력을 투입한 데 책임을 져야한다며 최 총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뒤이어 이화여대 교수협의회도 “총장은 학내로 1600명의 경찰력을 초치한 것에 대해 해명하고 이와 관련한 모든 사태에 대해 책임지고 사과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최 총장은 8월 22일부터 본관 옆에 천막을 치고 학생들을 만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오전에는 최 총장이, 오후에는 부총장이 천막에서 학생들과 대화하겠다며 학생들을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기자가 이화여대를 찾은 24일 오전에도 본관 옆 천막에서는 최 총장과 학교 관계자들이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학생들은 서면 합의를 거치지 않고 학교 측이 일방적으로 면대면 대화를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라고 주장하며 24일 오전까지도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었다. 최 총장이 기다리고 있는 천막에서 불과 5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학생들은 얼굴을 가린 채 이런 내용의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진행하고 있었다.
학교 측의 브리핑에 따르면, 8월 24일 오후 진행된 ‘총장과의 열린 대화 첫 마당’에 재학생 40여 명이 참석함으로써 학생들도 학교 측의 대화 요구에 응했다고 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이날 대화에서도 여전히 총장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26일 오전 열린 학위수여식에서도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은 총장 사퇴를 요구했다. 그러나 최 총장은 28일 교내외에 공표된 ‘사랑하는 이화인 여러분들께 드리는 총장의 두 번째 편지’에서 “총장으로서의 임무를 흔들림 없이 수행”하겠다며 사퇴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비민주적 대학 구조조정을 막아낸 이화여대 학생들의 승리

이화여대 학생들의 본관 점거 농성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느리게 진행되지만 민주적인 ‘달팽이 민주주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에서부터, 학벌주의에 근거한 ‘소비자 운동’에 불과하다는 부정적 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평가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화여대 본관 점거 농성의 의의는 그동안의 교육부 대학 구조조정을 재고해 볼 수 있게 했다는 점에 있다.
미래라이프대학 사업은 지난해 5월에 개요가 발표되었고, 12월 29일 사업 공고가 난 후 올해 5월에 선정대학을 발표했다. 선정대학이 부족하자, 6월에 낸 추가사업공고에 이화여대가 지원했다. 이화여대는 지난해 12월에는 사업에 지원하지 않았다. 학위과정의 큰 변화를 가져오는 이 미래라이프대학 사업을 위한 충분한 준비기간 없이 초치기로 진행된 것이다.
평생교육단과대학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 학사 학위의 수업연한과 방식, 학점체계를 대폭 수정해야 한다. 때문에 신중한 검토와 내부 구성원들의 의견수렴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7월에 이대가 선정대학에 포함되어, 당장 9월에 신입생 선발공고를 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화여대 사태로 표면화되기는 했지만 정부가 주도한 대학 구조조정 작업은 그간 학내 의견 수렴 없이 일방통행 식으로 진행되어 왔고, 끊임없이 갈등을 빚어 왔다. 정부의 지원을 통한 재정충당이 시급한 대학 입장에서는 사업에 선정되는 것이 우선순위이기 때문에 학내 행정 및 의견 조정 과정과 합리적인 소통은 무시되기 십상이었다. 평생교육단과대학 사업만이 아니라, 대학의 미래를 좌우하는 사업에 ‘일단 신청’하는 태도만 벌써 십여 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속수무책 지켜보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논리에 순응해 왔다. 이번 이화여대 사태는 그 흐름을 처음으로 저지한 역사적 사건이다.


■ 곽태진 기자 karajan86@naver.com
■ 신지현 기자 jhlily0408@naver.com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9 18: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