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표
본교 교육학과 박사수료

대학 구조조정에 대한 단상

  제212호 대학원 단신에서 다룬 서원대학교 구조조정 논란은 비단 한 대학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국내 모든 대학이 피할 수 없는 숙고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정부를 중심으로 지금 이뤄지고 있는 대학 구조조정의 방식과 그 잣대의 타당성은 재검토해야 한다. 취업률이란 칼자루를 쥐고 학과 통폐합을 휘두르는 현행의 대학 구조조정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 구조조정이라는 말 자체가 어색하다. 대학이란 엄연히 구조를 지니고 있고, 또한 그 구조를 조정할 수 있기에, 대학 구조조정이란 말 자체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말이 어색을 넘어 불편하다. 아마도 IMF 시기의 이미지가 이 단어에 투영됐기 때문일지 모른다. 내가 경험했으며, 여전히 경험하고 있는 구조조정이란 단어는 위기를 이유로 구조의 말단에 있는 사람들을 무리 없이 솎아내는 작업이다.
  대학에 구조조정이란 단어를 끌어들인 명분은 ‘학령인구 감소’라는 위기 때문이다. 국내 출산율은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단 한 차례도 2명을 넘어서지 못했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1명에 계속 가까워지고 있다. 정부는 산아제한 정책을 1996년도에 공식적으로 폐지하고, 그로부터 또다시 7년이 지난 후 출산장려정책을 시행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사이 고등학생 수가 약 30만 명이 줄었다. 학령인구 추계에 따르면 불과 15년 이내에 전체 학령인구가 200만 명이 줄어들 예정이다.
  학령인구 감소를 명분으로 이뤄지는 구조조정이란 취업률을 골자로 학과를 통폐합하는 것이다. 최근 정부는 프라임 사업을 필두로 대학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3년간 6,000억의 지원금을 걸고 인문·예체능계에서 줄인 정원을 이공계 정원으로 늘리는 구조조정이다. 이는 대학에서 인문·예체능계를 줄일 좋은 구실이 되었다. 대학평가에서 취업률 지표의 비중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인문·예체능계는 대학에 눈엣가시로 여겨졌다. 대학의 기원을 생각해보면 이는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대학의 기원이란 무엇인가? 대학이란 무엇인가?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혹은 중세의 자유교양교육? 그러나 이런 질문은 그런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이들의 달팽이관을 결코 두드리지 못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현실’이라는 방패를 결코 뚫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질문의 날카로움의 문제가 아니다. 창과 방패의 방향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는 현실이란 방향에 서서 그 방패를 향해 이공계 정원을 늘리면 이공계 취업자리가 늘어나는가 묻고 싶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6년 2월 전체 실업률은 4.9%이고, 청년실업률은 12.5%이다. 청년실업률을 놓고 봤을 때 이미 IMF 시기의 11.9%를 넘어섰다. 북해 유전과 같은 잭팟이 터지지 않는 이상 향후 몇 년 내에 이공계 취업자리가 극적으로 늘어날 일은 없다. 이공계 정원을 늘리는 것은 막연한 희망을 담은 도박이다. 마치 1996년도에 산아제한 정책을 폐지하고, 그 이듬해 대학 설립준칙주의를 도입한 그 도박보다도 수준이 낮다. 그리고 결코 이러한 도박으로는 대박 날 수 없음을 역사가 보여줬다.
  지금 이뤄지고 있는 대학 구조조정은 한마디로 취업실패를 책임지고 학과를 해체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구조조정을 하기 위해 그 구조를 이해하고 어떻게 조정할지 전혀 고민하지 않은 해결방법이며, 그냥 포기에 가깝다. 그리고 이런 방식에는 취업률이 낮은 과를 제거해야 할 환부로 보는 시각이 전제되어 있다. 취업률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취업이 안되는 과를 지원하고 육성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는가? 취업률이 높은 과를 밀어주는 것은 크게 입 벌려 울고 있는 새에게 먹이를 주는 ‘어미 새’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인구절벽은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불행이지만, 예측된 일이란 점에서 다행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대한 문제를 취업률의 프레임만이 아니라 대학의 본질, 대학의 구성원, 강의 중심과 연구 중심 등 다각도로 고려해 현명하게 해결해 나가길 바란다. 무엇보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의학계를 제외한 대학의 교수 대비 학생 수가 OECD 평균의 2배를 웃돈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구조조정이 대학을 덮쳤을 때, 우리가 침묵한다면, 결국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글을 마치겠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9 19: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