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 없어도 꿈을 포기하진 않았다.”

▶마술가게, 뉴 보잉보잉 등 많은 작품을 연출, 극단 두레의 운영 그리고 얼마 전에는 D.R Actor Studio의 원장까지.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데 처음 ‘연극’ 이란 존재에 풀 빠지게 된 계기는?

 “중학교 때 처음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배우들의 연기에서 나오는 아우라를 보고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 다음 날부터 극단을 찾아 다녔다. 당연히 어린 학생을 받아주는 극단은 아무데도 없었는데, 우연히 청소년 극단이라는 게 생겨 연기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엔 배우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연출가로 더 유명하다. 어떻게 연출을 하게 됐는지.

 “배우를 하면서 연기만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꾸 병처럼 연출에 관여를 하고 싶더라. 성격적으로도 리더가 되려고 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고. 그래서 한번 해보자 하는 생각에 몇 몇 작품을 손대다 보니 연출을 할 때 느낄 수 있는 기쁨이 따로 있었다. 연출은 배우에 비해 무대 뒤에 가려져 있지만 배우들과 함께 땀 흘리고 연극의 방향을 잡아가고 연극이 무대에 올려질 때, 그리고 관객이 호응해 줄때 느끼는 뿌듯함이 배우일 때 보다 훨씬 컸다. 마치 요리사가 맛있는 음식이 나왔을 때 그리고 새로운 음식을 개발했을 때 느끼는 뿌듯함이라고 할까. 지금 많은 것을 동시에 하고 있는데 이 연극 연출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못하는 분야다.”

▶연극인이라고 하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담배에 찌들어 있는, 생활이 윤택하지 못할 거라는 선입견이 있다. 실제로 원로 배우들의 인터뷰를 봐도 그렇고……. 실제 본인이 연극을 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왜 없었겠는가. 요즘은 그나마 환경이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연극인의 경제 사정이 안 좋은 편이었다. 연극 연출을 하다 22살 젊은 나이에 1억 이상의 돈을 빚진 적도 있다. 정말 막막했다. 한 푼도 없이, 더구나 빚까지 져서 눈 딱 감고 집에 손을 벌리려 갔다. 그런데 집 안에 들어가자 마자 부모님이 하시는 말이 ‘요즘 하는 일은 잘 되지?’였다. 이 말을 듣는 데 돈 빌려달라는 말이 입 밖에서 나오질 않더라. 차마 용기가 없어 돈 빌려달란 말은 못하고 그냥 잘된다고 웃으면서 인사하고 나오는데, 집 밖에 나오니 눈물밖에 안나왔다. 당장 사무실로 들어가서 단원들 밥도 주고 해야 하는데……. 그래서 사무실 앞에 있는 슈퍼에 가서 ‘제발 한 달만 우리 단원들 외상으로 먹을 것 좀 먹게 해주라’고 사정 사정을 했다.

그리고 경제적인 것보다 앞서 어려웠던 건 연극에 대한 ‘확신’이었다. 내가 이 연극을 평생 할 수 있을까 하는 내 스스로의 자질감에 대한 회의. 아주 어렸을 때는 확고한 확신이 있었는데 나이를 먹다보니 불안해지고……. 주위에서 만류하는 사람도 많고 내가 정말 이 길을 가는 것이 맞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특히 두세번정도 관객에게 좋지 못한 소리를 들었을 때는 연극을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좌절을 느꼈다.”

▶그렇다면 지금 ‘연극인 손남목’으로 다시 일어나게 한 계기가 있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때 외국에서 한 관객에게 엽서를 받았다. 독일에 있는 팬이었는데 ‘당신의 연극이 기억에 남는다. 독일에서도 마음에 남아있다’는 내용의 엽서였다. 정말 너무 힘들 때 이런 엽서를 받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 많은 사람이 아니여도, 소수여도 내 연극을 보고 따뜻하게 느낄 수 있다면 앞으로 끝까지 할 가치가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 관객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연극, 연극은 즐거운 것.

▶중학교 시절부터 ‘연극’ 이외에는 다른 것을 보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렇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못하게 만드는 연극만의 매력이 있다면?

“연극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관객이 움직인다. 그리고 모니터나 스크린 같은 가림막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관객을 볼 수 있다. 즉시 관객의 반응을 살필 수 있고 관객과 함께 소통하고 울고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 이러한 라이브 환경, 항상 살아있는 느낌, 언제나 뜨거운 삶. 이게 바로 연극이고 우리를 연극에서 못 빠져나가게 하는 마약과도 같은 연극의 성질이다.”

▶여러 연극 중에서도 본인이 선호하는 연극 스타일이 있다면?
“앞서 말했듯 관객의 반응을 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배우와 관객이 무대를 넘나들며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을 많이 연출했다. 지금은 코미디를 많이 하고 있지만 굳이 코미디가 아니더라도 유쾌하고 웃음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좋아한다. 그리고 단지 웃음만 아니라 사람 냄새 나는 따뜻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관객들이 많이 웃을 수 있고 그리고 마지막에 눈물 한 방울 흘릴 수 있는 작품? 이런 작품을 선호한다. 내년 쯤에 좀 더 무거운 느낌의 작품을 하려고 구상중이지만 무겁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는 스토리를 전해주고 싶다. 손남목의 연극은 사랑과 웃음을 빼곤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사실 ‘영화’는 정말 대중적인 여가 선용 수단인데 비해, 연극은 조금 거리감이 느껴진다. 영화는 보고 싶을 때 잠깐 영화관 나가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연극은 왠지 좀 준비해서 가야할 것 같고…….

“사실 연극이 영화보다 거리감이 있는 건 사실이다. 가격도 영화에 비해 비싼 편이고. 그런데 무엇보다 연극에 대한 선입견이 많은 것 같다. 연극은 어려울 것 같다거나 보러 가기 힘들 것 같다거나……. 물론 예전에는 부조리극같이 이해하기 어려운 연극이 많았고 ‘연극용 연기’라고 일상과는 다르게 연극식으로 과장하는 연기도 많았다. 상영관도 불편하고 깔끔하지 못한 곳도 많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100개가 넘는 소극장이 대학로에 있다. 대학로에는 재미있는 작품이 많으니깐 인식을 바꿨으면 좋겠다. 처음 시작이 어렵지 인터넷에서 많이 찾아보고 본인에게 맞을 것 같은 작품을 잘 선택해서 오면 그 이후에는 공연장을 자주 찾게 될 것이다. 처음에는 쉽고 재미있는 작품을 보다가 점점 보는 작품의 스펙트럼도 넓어질 거고.”

● 순수한 아마추어리즘 좋지만 이젠 ‘손남목’이란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싶다.

사실 요즘에 공연장을 찾는 사람이 예전보다 많아지긴 했지만 일부 상업적이고 가벼운 작품만 찾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다. ‘예술은 함축적이고 깊은 뜻이 담겨야 할 것’같다는 생각도 들고, 모든 예술에 적용되는 말이겠지만 ‘상업성’과 ‘예술성’은 공존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모든 문화는 다양성을 존중받아야 한다. 책을 예로 들면 서점에 재밌는 소설, 수필이 없고 무거운 헤밍웨이, 단테 이런 책들만 있다고 생각하면, 서점에 쉽게 발걸음 하기 힘들 것이다. 상업적이네, 가볍네 하면서 배척하기 보다는 보통 사람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가벼운 작품들도 있어야 관객층을 넓힐 수 있다. 가벼운 작품으로 처음 연극을 접한 사람이 여러 작품을 섭렵하다 나중에는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볼 수도 있는 거다.”

▶손남목은 흥행 보증 수표라고 불릴 만큼 수많은 흥행장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그 공연들은 앵콜공연, 그리고 오픈런(공연 종료 기간이 설정되지 않고 관객의 반응에 따라 공연 날이 무기한 길어지는 형태)으로 공연이 된다. ‘뉴 보잉보잉’ 같은 경우는 5년 째 공연중이다. 한 작품을 오래 무대에 올린 연출자로서 힘든 일은 없는지.

“장기 공연을 할 경우 이미 처음에 잡아놓은 틀이 있으니깐 부담이 덜 하긴 하다. 배우나 연출가나 새로운 틀을 구성해야 한다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장점은 있다. 하지만 매번 똑같은 작품을 올리는 게 아니라 조금씩 수정을 가해야 한다. 그리고 배우들이 바뀌기 때문에 배우 마다 다른 스타일로 다시금 조정해야 한다. 가장 힘든 건 오년, 육년동안 같은 작품을 하다 보니 지친다는 점? 계속 같은 음식을 먹으면 물리는 것처럼 같은 작품을 무대에 올리면 연출자도 지친다. 그리고롱런하는 공연을 하면서도 다른 작품을 구상해야 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피곤하기도 하다.”

▶사실 이미 틀이 잡힌 연극을 하면 ‘창작의 고통’을 피할 순 있겠지만 ‘새로운 작품’을 원하는 연출자에게는 갈증 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연극계를 크게 놓고 봤을 때도 이런 롱런 작품 때문에 새로운 창작극이 설 자리를 잃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된다.

“사실 이런 고민은 얼마 전 술 먹으면서도 동료들과 했던 것이다. 이건 어떻게 보면 경제적인 논리에 의해 나타나는 현실이다. 몇 작품이 롱런하는 것은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연극이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무대에 올리는 데 돈도 많이 들고 그에 반해 지원이 적다. 흥행하는 작품에만 관객들이 몰리는 쏠림현상이 있고, 그런 작품들이 대학로를 점유하다 보면 독립된 신세대 연극이 상업적 논리에 의해 점점 그 설자리를 잃어 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롱런 작품이 꼭 역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유명한 작품을 처음 접한 관객이 매니아가 되어 차차 다른 작품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연출가도 흥행작이 하나 있으면 그 작품을 무대위에 올려놓고 수익금으로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고 무대에 올리는 데 쓸 수도 있다. 최근 서울시나 문화부에서도 새로운 창작극을 일정 비율 이상 무대에 올리도록 지원을 해 준다고 들었다.”

▶본인이 극단 두레를 이끌어 가면서, 개선해야 겠다고 생각한 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목표는 무엇인지.

“사실 두레는 어느정도 많이 커서 ‘프로화’된 편이다. 예전에는 순수 아마추어였다. 아마추어는 순수하긴 하지만 부족하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사람이 없으니 각자 맡은 역할이 전문화 되지 않고 일은 과중될 수 밖에 없다. 두레도 많이 전문화, 분업화 되었지만 아직도 마케팅 부분에서 많이 부족하다. 작품에 대한 평가를 받기 위해선 관객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홍보력이 부재하다. 지금 김명곤 선생님이 ‘밀키웨이’를 연출하고 있는데 이 작품에 투자와 홍보를 증대시키면서 실험을 하고 있다. 그 결과는 11월이나 12월쯤 되면 나올 것이다.
 

이제 내 목표는 손남목을 그리고 극단 두레를 브랜드화 하고 싶다. 연극계의 ‘삼성’이랄까. 극단 두레의 연극, 또는 손남목의 연극 하면 ‘아, 믿고 볼 수 있겠구나!’하는 말을 듣고 싶다.” 

● 좋은 작품 골라서 연극을 즐겨보세요, 그리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분야를 개발하세요.

▶마지막으로 관객이 될 수 있는 20대 대학생, 고대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선 연출자의 입장으로 드리고 싶은 충고는 ‘정말 좋은 연극, 잘 맞는 연극’을 ‘잘’ 알아보고 선택하시라는 거다. 대학로에 오면 호객행위를 하는 일명 ‘삐끼’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연극인이 아니라 개그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이런 공연들도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보면 꼭 있어야 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이 연극을 본다고 와서 처음 이런 공연을 본 다음에 실망하는 것이 아쉽다. 인터넷에서 잘 찾아보고 알아보고 공연을 선택했음 좋겠다.

그리고 젊은 나이때부터 자신의 꿈을 구체적으로 정했으면 좋겠다. 자기를 탐색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배우를 할 때 작은 키가 정말 콤플렉스였다. 하지만 키가 작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배역은 분명 존재한다. 연출을 하는 지금도 배우들에게 주문한다. ‘뚱뚱하다면 포기하지 말고 뚱뚱하기 때문에 더 잘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라’고. 과거를 후회하고 포기하기 보단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서 자신만의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 ”

연극과 함께 숨가쁘게 그리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땀을 쏟고 있는 연극연출가 손남목. 인터뷰를 하면서 그가 말했다. “사실 젊을 때 이야기를 하자면 너무 통속적인 드라마 같아 부끄럽다”고. 그 뿐이랴. 누구든지 삶에는 코미디와 드라마가 녹아있다. 이제 우리 같이 내 이야기, 내 친구 이야기 보러 간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학로에 연극 산책 한번 나가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