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 조교는 노동자이고, 학생이다.

김민섭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저자)


  대학원생 조교들은 대학의 상상 가능한 여러 공간에서 ‘노동’한다. 학과사무실에서, 연구소에서, 기숙사에서, 대학의 각 부처에서, 각종 행정을 담당한다. 행정이라고 쓰지만 거기에 온갖 형태의 ‘잡일’이 추가된다. 각 대학과 학과에 따른 편차는 있으나 정말 보조적인 업무를 수행하기도 하고, 여느 기업의 개인 비서도 하지 않을 일에 동원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그 어떤 메뉴얼이 없는 노동의 현장이다. 해야 하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의 범위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근로계약서, 채용방식, 근로시간, 급여지급과 같은 시스템이 저마다 다르다. 대학은 대학원생과 학부생 근로 조교를 행정의 최전선에 내몰고 있지만, 정작 그들의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다.

  이번 여름 동안 인문학협동조합은 정의당 미래정치연구센터의 의뢰로 ‘대학원생 노동/연구 환경에 대한 정책 제안’ 용역을 수행했다. 나는 그 연구책임자로 일했다. 대학원생 조교들을 찾아다니면서 그들이 노동자이자 연구자로, 학생으로 지내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면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그들의 ‘노동권’이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는지, 채용 방식은 어떠했는지, 근로 시간이 명시되었고 제대로 지켜졌는지, 최저시급이나 4대보험과 같은 최소한의 안전망이 보장되었는지, 하는 것을 살폈다. 이것은 그대로 그들이/우리가 대학에서 ‘노동자’로 대우 받지 못 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우선 근로계약서를 쓴 조교들이 거의 드물었다. 교문 바깥에서는 편의점에서도 패스트푸드점에서도, 몇 개월을 일하든 모두가 근로계약서를 쓴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점주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도록 근로기준법에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대학원생 조교들은 한 번 계약으로 6개월 이상을 근로하면서도 계약서를 쓰는 일이 없다. 그에 따라 근로시간도 제각각이다. 주 10시간, 주 20시간, 아니면 한 학기 300시간, 이렇게 정해지기도 하지만 대개는 그에 대해 알지 못하고 이것이 지켜지는 일도 많지 않았다.

  급여는 등록금 감면의 형식으로 대개 받게 된다. 말하자면 TA(Teaching assistant) ‘근로장학금’이다. 그래서 최저시급에 대한 기준도 없다. 근무 시간 대비 장학금을 환산해 보면 최저시급보다 적기도 하고 많기도 하다. 같은 학교에서도 인문계열 대학원생과 이공계열 대학원생의 ‘몸값’은 다르다. 시간에 따른 보수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등록금의 일정 비율을 감면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공계열 학생들의 시간 당 몸값이 훨씬 높은 것이다. 국립대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애초에 등록금이 사립대학교 대비 저렴하다고는 해도, 우리가 인터뷰한 모 국립대의 경우 6개월 동안의 조교 수당이 190만원이다. 등록금이 200만 원인데 한 학기에 300시간을 일하면 전액에 가까운 등록금을 감면해 준다.

  건강보험을 비롯한 4대보험 역시 보장되지 않는다. 결혼한 대학원생 조교들은 아이를 낳을 때까지 혼인신고를 미루는 일이 많다. 그것은 지역건강보험 가입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결혼을 하는 순간 독립된 세대가 되어 건강보험을 따로 납부해야 한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도 서류상으로는 여전히 부모님의 피부양자로 남는 것이다. 4대보험을 보장 받으면 실수령액이 적어진다고 우려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것은 노동자의 기본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 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가장 절실한 사회적 보장이기도 하다.

  결국 ‘근로장학금’이라는 이 마법의 단어 하나에 학생은 언제까지나 학생으로 남는다. 노동의 현장에서도 ‘노동자’가 될 수 없게 된다. 사실 ‘근로’와 ‘장학’은 서로 연동될 수 없는 개념이다. 근로가 장학의 범주로 들어서는 순간, 모든 노동권이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대학은 여기에서 두 가지 효과를 얻는다. 학생을 노동자로 사용하고서도 애초에 받을 등록금을 일부 감면해 주는 방식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보험금을 부담하거나 퇴직금을 내어 줄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어진다. 게다가 1인당 등록금 환급률을 크게 부풀릴 수도 있다. 대학은 응당 학생들에게 ‘급여’로 지급해야 할 것을 ‘장학금’ 명목으로 돌린다. 그것으로 우리는 이만큼의 등록금을 환급해 주고 있으니 얼마나 교육기관의 소명을 다하고 있는가, 하고 공표한다.

  근로장학금이라는 개념은 없어져야 한다. 대학은 대학원생 조교의 ‘노동권’을 인정해야 한다. 장학금이 아닌 급여를 지급해야 하고, 근로기준법에 따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그에 따른 모든 사회적 안전망을 보장해야 한다. 세상의 상식은 교문 앞에서 언제나 멈추어 서지만, 대학은 자신을 가장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공간으로 포장해낸다. 그 구성원의 노동권 문제에서, 대학은 우리 사회의 가장 전근대적인 공간일 뿐이다.
  인문학협동조합의 연구복지팀이 만난 여러 대학원생 조교들은 대부분 자신들을 ‘연구(노동)자’로 규정짓고자 했다. 그것은 결국 대학에서 계속 연구하며 존재하고 싶다는 욕망일 것이다. 게다가 자신을 연구자로도 규정하지 않으면 결국 이 대학에서는 ‘유령’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다. 연구자라는 한 줌의 자존감마저 놓아버리면 대학에서 결국 주체로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지금이 낫다.”는 일부 대학원생들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대학원생 조교는 연구자이면서, 동시에 학생이고 노동자다. 강의실에서는 학생으로서 그 모든 편의를 제공받아야 하고, 학과사무실과 대학의 여러 부처 등 그 어느 노동의 현장에서는 노동자로서 노동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것은 너무나도 간단한, 세상의 상식이다.

  “대학은 학생의 노동권을 보장하고, 학생에게 임금을 지급하라.” 대학원생 조교들보다도 오히려 그 숫자가 많은 학부생 근로장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10 01:5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