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우리에게 우리의 책상 놓을 땅이 있더라면


종종 캠퍼스를 다니다보면 인문대 대학원 원우들을 쉽게 마주친다. 식사시간만 그런다면 당연하지만, 그 이외의 시간에도 수시로 마주치게 된다. 왜인지는 간단하다. 우리에겐 발붙일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공대 대학원 원우들이 ‘랩실이 어디냐’고 물으면 쓴 웃음밖에 못 짓는 것이 인문대 대학원 원우들의 현실이다. 우리는 지박령도 되지 못하는, 부유령일 뿐이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 강의실로, 도서관으로, 열람실로 떠돌아다닐 따름이다. 캠퍼스는 넓지만 발을 붙일 곳이라고는 소수에게나 열리는 캐럴과 중앙광장의 구석진 열람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한 자리에 있질 못하고 오늘은 어디, 내일은 어디 이런 식으로 다닐 뿐이다. 그마저도 정해지지 않은 자리 중 그나마 맘에 드는 자리가 있을까, 카페에 가야하나 하는 불안이 그득한 채로 떠돌아다닌다. 원우를 만나거나 혹은 일이 있어 다닐라치면 공부하던 자리에서 얼마나 자리를 비워야하나 하면서 계산을 하고 나와야한다. 혹시라도 밖에 오래 다녀야한다면 자리를 치우고 어느 구석진 사물함에 짐을 쑤셔 넣은 다음 그 자리가 계속 비어있길 바랄 뿐이다. 혹은, 오래 다닐 일을 없애버리거나. 시험기간이 되면 일은 더 골치 아파진다. 학부생들도 공부를 하는 상황에서 대학원생들은 자리를 찾아 더욱 헤매게 된다. 그럴 때면 학교 근처에서 공부하는 걸 포기해야한다. 종종 원우끼리 이야기하다보면 차라리 컨테이너박스라도 주고, 전기만 대충 넣어준 다음에 앉아서 공부하고 개인공간으로 쓰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만큼 우리는 공간을 찾아 헤매고 있다. 하지만 나아지는 것은 딱히 보이질 않는다.

애초에 인문대 대학원생에게 주어진 공간은 몹시 한정적이고, 확장의 여지도 거의 없는 형편이다. 현재 미디어관 옆에 컨테이너 박스로 된 건물이 지어지는 것을 보면서, 저기에라도 우리가 들어갈 수 있나하고 자조하는 원우들이 있었다. 물론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우리들은 잘 알고 있었다. 인문대 대학원생은 앞으로도 떠돌아다닐 것을 알고, 운 좋게 어디선가 머무른다손 쳐도 그건 한시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공간이 필요하다. 너무 넓은 공간도 아니다. 다만 우리가 쓰는 약간의 짐을 둘 책상과 의자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공부를 하러 들어왔건만, 공부를 하기 위해 혹은 할 곳을 찾기 위해 떠돌아다니는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우리는 우리의 공간을 점유하고 싶다. 어디엔가 빌붙듯이 다니며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공간을 가지고 우리의 공부를 하고 싶다. 매일 같이 어디 빈 강의실이 없나, 도서관에 빈자리가 없나, 카페는 어디가 낫나하는 고민을 하지 않고 정해진 공간으로 간다는 일정함을 가지고 싶을 뿐이다. 이 넓은 캠퍼스에, 매해 건물이 올라가는 캠퍼스에, 세계 100대 대학에 선정되었다는 대학의 이 캠퍼스에, 인문대 대학원생이 설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10 02:1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