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윤 외, 『흙흙청춘: 대학민국에서 청춘으로 살아남記』, 세창미디어, 2016.

청년 없는 청년 담론을 넘어서

Q. 다양한 전공의 필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인문학협동조합’에 대한 간 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최) 우선 이 책은 인문학협동조합에서 기획한 것이고 저자들 중 대부분이 조합원들이긴 하지만, 조합원이 아닌 저자들도 있습니다. 가령 《월간잉여》 편집장이신 ‘잉집장’ 최서윤 씨나, 드라마 칼럼니스트이신 송치혁 씨, 그리고 웹툰 연구자이신 구자준 씨 같은 분들은 인문학협동조합의 기획에 참여하신 외부 필자이시죠. 일단 인문학협동조합은 ‘앎’과 ‘삶’, 그리고 ‘노동’을 일치시키는 것을 지향하고 있어요. 현재의 대학에서는 그것들을 일치시키기 어려운 게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대학 밖에서, 그리고 전공의 울타리를 넘어서 위와 같은 지향을 공유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조합입니다. 조합원 수는 70~80명 정도이고, 정기적으로 위원회를 갖기도 합니다.  

Q. 이 책의 기획 의도를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최) 우선 청춘들 자신에 의해 논의된 청춘 담론이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어요.  기획과 편집을 담당하셨던 출판사 분들도 저희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계셨고, 최서윤 씨 같은 경우도 이미 이와 관련된 활동을 하고 계셨고요. 보다 자세히 말하자면, 외부에서 우리를 규정하는 기존의 세대론을 거부하고, 청년들 스스로 자기 세대를 이야기해보자는 뜻이죠.

Q. 후기에도 적혀 있듯, 두 분의 관점이 충돌되는 지점도 있습니다. 통일되지 않은 관점에서 필자들 각자의 글이 병치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인데, 이러한 기술 방식 역시 지금의 청춘 세대가 갖는 성격의 일단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아도 될까요? 의도한 편집 방향이 있다면, 그러한 방식을 택한 이유 등에 대해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 우선 애초에 위에서 언급한 기획 의도에는 저자 모두가 공감했지만, 서로의 관점을 통일시키기보다는 각자의 글을 거리낌 없이 써보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어요. 그 방식이 기획 의도에도 가장 부합할 것이라 판단하기도 했고요. 지금까지 타자에 의해 제출된 ‘청년론’이 우리 세대를 제대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거기에 동의할 수 있었다면 이 책을 쓸 필요가 없었겠죠.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이 책도 기획된 것이고, 무엇보다 기성세대에 대한 청년들의 반감이 사그라지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시도한, 나름의 새로운 방식은 먹거리, 웹툰, 드라마 등 각자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에서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본 청년들의 모습들을 일단 모아보는 것이었어요. 최종적으로 글을 모아놓고 보니, 지적하신 것처럼 각자의 관점이 서로 충돌하는 부분도 보이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애초에 청년들을 정의할 수 있는 단일한 세대론이 있다는 전제를 세우지 않았던 것은, 거꾸로 미시적인 차원에서 관찰된 모습들을 모아서 제시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입니다. ‘Top-Down’이 아닌 ‘Bottom-Up’ 방식이라고 하면 적절한 표현이 될까요? 아무튼 우리가 관찰한 청년들의 모습들을 포괄할 수 있는 세대론이 있다면 있는 대로, 없다면 없는 대로 이야기하기 위해서 그런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Q.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의 청년 세대 스스로 제출한 ‘세대론’이라는 점에 이 책의 의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집필을 마친 지금 생각해 보셨을 때, ‘청춘’이라고 불리는 세대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기억, 혹은 다른 세대와 구별되는 속성 등의 측면에서 두 분은 ‘청춘’이라는 세대를, 혹은 그 한 속성을 어떻게 정의내리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최) 사실 앞서도 말했지만, 기획 의도 자체가 ‘청춘 세대’를 정의내리면서 시작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청춘이 갖는 한 속성을 말하자면, 어떤 기조나 단일한 정치성, 혹은 ‘운동’으로 규정될 수 없다는 것 정도이지 않을까요? 사실 그 동안 제출되어 온 기성 세대의 청춘론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아요. ‘88만원 세대’, ‘20대 XXX론’ 등 진보진영의 규정이나 ‘달관 세대론’ 등 보수 진영의 정의까지 진보나 보수라는 차이는 있지만 모두 ‘성장’, ‘건설’, 혹은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나 ‘희망’을 갖자는 전제 하에 제시된 것들이라고 봐요. 지금의 청년 세대는 이런 주장에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봅니다. 아무리 성장, 건설에 대한 희망을 품어도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 사실 질문하신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기억’의 유무에서 기존 세대와 지금의 청년 세대가 갈린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 다른 점은, 기성세대에게는 각 세대별로 공유하는 기억이 무엇이었든 그것이 ‘슬픔’보다는 ‘성공’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물론 되돌아보았을 때 그것을 성공이라고 자평할 수 있을지는 따로 따져보아야 하는 문제이지만, 적어도 실패했을지언정 ‘한때 우리 손으로 무엇인가 변화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는 느낌을 가질 수는 있죠. 반면 지금 우리 세대에게는 말씀하신 촛불 집회, 세월호 사건 등이 그 기억들 중 하나가 될 텐데, 거기에서 그런 긍정적인 느낌을 갖기는 힘들 것이라고 봐요.  

Q. 최은혜 선생님께서는 기성세대의 청춘론을 거부하고, ‘희망 없음’ 그 자체를 인정하고 이 절망감을 자조적인 ‘놀이’로 전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 청춘들의 특징을 찾으셨습니다. 그 사례로 드신 것 중 하나가 음악이었는데요. 특이한 것은 그러한 자조적인 유머에 청춘들이 호응하지 않는 듯 보인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예로 드신 <Blank Generation>과 궤를 같이 하는 70년대 영국의 펑크나 90년대 후반, 소위 ‘조선펑크’라 불렸던 한국의 음악 조류들은 같은 세대의 엄청난 지지를 받았잖아요? 그러나 예로 드신 밤섬해적단의 노래, ‘흙수저 놀이’ 등이 하나의 현상으로 확장되기 위한 호응이 뒤따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전의 펑크 세대가 가졌던 ‘분노’가 이들에게 없는 것일까요? 아니면 분명 분노의 감정이 있는데 그것이 모이지 않고 있는 것일까요? 여기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최) 지금의 청춘들이 자신들의 희망이 없음을 인정하고 절망을 드러내는 방식이 다양함을 최대한 넓은 범위에서 다뤄보고 싶었어요. 어쨌든 ‘절망’이라는 감정, ‘성공’이라는 환상에 대한 조롱 등이 공유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사실 ‘하나의 현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사회, 혹은 체제를 바꾸기 위한 하나의 거대 담론이 형성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애초에 이 세대는 단일한 특징으로 아우를 수 있는 세대가 아닌 것 같아요. 또한 ‘거대 담론’이 있으며, ‘거기에 연대해라’라는 것은 청년들이 반감을 갖는 기성세대의 방식이면서, 또 너무 간편한 방식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하고요. 물론 ‘연대’가 아닌, 각자가 고립된 채로 절망만을 인식하는 방법이 어떤 변화로 이어질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책에 담긴 글에도 썼지만, 분명 우리가 ‘청춘’이라고 부르는 세대는 그 나름의 연대 방식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립음악생산조합이 가담한 두리반 철거 반대 투쟁이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500여 일 동안 계속된 농성 투쟁 끝에 시공사와의 협상에 성공한 이 사례는, 분명 기존의 점거 농성 방식과는 다른 형태의 연대를 보여주었죠. 성장과 희망의 내러티브로 점철된 청춘이데올로기에 균열을 가하는 나름의 미학이면서, ‘청춘’을 넘어서는 새로운 연대를 모색해야 하는 메시지를 던져준 사건이었다고 봅니다.        

Q. 김희원 선생님께서는 요한 하리가 제시한 ‘중독’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다시 재전유하신 점이 인상적입니다. 테카르트 이래로 확립된 근대성의 논리와 하이데거의 ‘탈존’을 대비시키며 ‘이 다음 세계’를 위한 ‘주체성의 회복’을 이야기하셨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체제의 ‘다음 사회’가 도래할 것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셨는데, 아직 그것이 현실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체의 전환’이 선행된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가령, 선생님이 예로 드신 ‘자발적 가난’과 기성세대가 청춘을 규정하는 한 방식인 ‘달관세대론’은 어떻게 구별되는 것일까요?
(김) 약물 자체에 대한 결핍이 아니라 관계의 결핍이 중독 증상을 유발한다는 것이 하리의 주장이었습니다. 제가 글에서 데카르트와 하이데거의 주체 개념을 대비시킨 이유 역시 ‘관계의 회복’을 말하기 위함이었어요. 한 인간이 타자들, 그리고 이 세계와 분리될 수 없는 존재라면, 자신이 속한 세계와의 관계를 주체적으로, 그리고 새롭게 규정해야 함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자발적 가난’과 ‘달관 세대론’ 역시 얼핏 동일한 의미를 갖는 듯 보이지만, 전자에는 ‘자발적’이라는 단어가 붙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후자의 경우는 타자에 의해 규정된 것이라는 점이 다르죠. ‘다음 사회’가 도래한 후에 주체의 전환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러한 전환들이 현 체제에 균열을 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Q. 이 신문의 독자인 대학원생들에게 한 마디 해주신다면?
(최) 이 책에서 보듯이 지금의 청춘들은 ‘절망을 자조하기’일지언정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과 현실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대학원생들도 자기 자신과 대학원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그것이 어떤 방식이든 나름의 관심과 이해를 보일 수 있었으면 합니다.
(김) 농담 섞인 말이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가 살펴본 청춘들이 모두 그렇듯, 지금 처한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다거나 끝까지 갔을 때 무엇인가 기대와 다른 것이 있을 리 없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죠. 그렇다면 적어도 지금 하고 있는 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서도 환상을 걷어내고 그것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인터뷰·정리: 문장원 기자 creep0927@korea.ac.kr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10 03:4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