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칼럼] 세상에 나쁜 학생은 없다

박성호(공군사관학교 강사)



  얼마 전 인터넷을 뒤적거리다가 흥미로운 영상 하나를 발견했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EBS의 프로그램이었는데, 말하자면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애견 버전이었다. 개가 ‘나쁜’ 행동을 하는 이유를 전문가가 하나씩 짚어내면서 별다른 강제 없이 이를 교정해버리는 것이었다. 이걸 보던 한 친구는 감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와, 이 사람 완전 드루이드구만.”


  어느덧 강단에 선 지도 5년이 되었다. 하지만 어느 학기고 ‘익숙한’ 강의란 없다. 강단에 올라서보면 종종 내가 가르치기는커녕 오히려 배운다는 느낌을 받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형식적으로야 내가 튜터의 역할을 맡지만, 실제로는 학생들에게서 늘상 뭔가를 배워간다. 그것은 단편적인 지식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네들의 문화나 사고 전반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강단에서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던 적이 몇 번이었는지를 모를 지경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한 무슬림 학생은 봉사활동에 대한 지문을 읽다가 문득 이렇게 말했다. “이슬람에서는 부자들, 기부가 의무입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해서 자세한 사정을 물어보았더니, 이슬람의 교리에서는 돈이 많은 사람일수록 가난한 자를 위해 기부하는 것을 신성한 의무로 여긴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에 한편으로는 신기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이 설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꾸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것 참 부럽네요. 한국에서는 100만원 가진 사람이 1만원 가진 사람에게서 1천원을 더 빼앗으려고 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답니다.”


  비단 외국인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학부생들을 상대로 하는 교양강의에서도 이런 일들은 자주 벌어진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 파악할 수 없는 문화에 대해서 학생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과제나 발표를 통해서 이런 것들을 조리 있게 설명해주는 고마운 학생들도 있지만, 때로는 의도적인 태만이나 불만 제기, 혹은 장기 결석과 같은 이해하기 힘든 방식으로 나에게 가르침을 주곤 한다. 이런 학생들에게 훈계를 하거나 제재를 가하는 것은 손쉽고도 간편한 해결책이었지만, 그렇게 하는 순간 나는 학생들에게서 더 이상 아무것도 배울 수 없게 되곤 했다. 내가 일정한 ‘권력’을 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학생들은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의사소통을 곧잘 포기해버렸기 때문이다.


  강단에 서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대화의 주제는 줄곧 ‘요즘 학생’에 대한 성토로 이어지곤 한다. 병결을 얻어내기 위해 진단서를 위조해온 학생, 자신이 지난 학기에 낸 과제를 후배에게 돈 받고 판 학생, 학교에서 무료로 지급해준 교재를 손 하나 대지 않은 채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 중고로 판매한 학생, ‘요즘 학생’에 대한 이야깃거리는 항상 차고도 넘친다. 그리고 결론은 항상 이런 식으로 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한 발자국 물러서서 생각해보면, 결국 선생이 해야 하는 일이란 학생들의 메시지를 수신하고 해독하는 일이지, 그 메시지 자체를 단죄하는 일은 아니지 싶다. 그들을 경청하고 그들에게서 배우기를 포기하는 순간, 강사라는 존재는 강단 위에 선 화석이 되고 만다. 강사도 사람인 이상 납득하기 힘든 상황에 봉착하면 황당함이나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우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학자든 강사든, 자신이 마주한 대상 - 그것이 연구주제든 혹은 학생이든 - 에 대한 ‘호기심’을 포기해버리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정작 이렇게 말은 해도,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느새 한 가득 쌓여버린 병결(病缺)용 진단서 더미 앞에서 한숨을 쉬고 있다. ‘요즘 학생’들은 왜 이다지도 툭하면 아픈 것일까. 차라리 강사 말고 의사를 할 걸 그랬나, 이 진단서들만 봐도 굶어죽을 염려는 없을 것 같은데. 이번 학기에는 또 어떤 학생들에게서 어떤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지, 벌써부터 막막함이 밀려온다. 아마도 대학원 들어와서 첫 발제를 앞두고 있던 10년 전 요맘때가 꼭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까.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7 17:28: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