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기획] 세월호 이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문학의 선언

지난 3월 28일 금요일 4시 16분, 광화문 광장에서 작가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일곱 번째 ‘304 낭독회’ 열리는 날이었다. 304 낭독회는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 304명을 기억하기 위해 작가들과 일반 시민이 함께 시작했다.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304명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304번의 추모행사를 열자고 누군가 말했다. 가만히 있기 힘들었던 시인, 소설가들의 참여가 이어졌다. 일곱 번째 낭독회의 테마는 <초록이 너무 푸르다>였다. 13명의 작가들이 준비해온 원고를 읽었다. “세월호를 생각하면 너무 슬프고 또 슬프다. 무엇이든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었다”라고 낭독회에 참여한 최은영 소설가는 말했다. 글을 읽는 작가들의 목소리에 울음이 뒤섞였다.




무엇이라도 해야 될 것 같은 마음을 사라지지 않게 만드는 일

작년 4월 16일 이후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고 다짐했다. 성찰의 시간은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고 세월호 사건이 유발한 슬픔의 기운은 거짓말처럼 사그라졌다. 망각의 힘은 나의 일이자 우리의 일이었던 세월호 사건을 점차 남의 일로 만들어 버렸다. 무엇이든 해야 할 것만 같았던 그 마음들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그때 각자의 마음이 뒤흔들렸던 경험은 정말 일어났던 일이었을까? 마음을 오래 지키는 일은 그렇게나 어렵다. 부정해야 할 대상은 재난대응시스템의 경직성이나, 진상규명은 외면한 채 여론관리에만 몰두하는 정치행위 및 누구보다 슬퍼하고 있을 유가족들에게 폭언과 모욕을 일삼는 반인륜적 행위뿐만이 아니었다. 슬퍼하는 자들과 함께 슬퍼할 수 있는 공감능력을 거세하는 세월의 무자비함에 대해서도 저항해야 했던 것이다. 기억하기 위해서는 기록해야 하며 많은 문인들은 이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문인들은 정부의 세월호 사태 처리 방식과 누적된 부정·부패 등을 비판하는 성명을 754명의 명의로 발표하는가 하면 릴레이 단식으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고, 작년 9월부터는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 수를 가리키는 ‘304 낭독회’로 그 취지를 이어 갔다. 10월3일에는 소설가 김훈·김애란, 시인 송경동·김행숙·권현형, 평론가 권희철·양경언, 희곡작가 최창근 등 문인 20여명이 진도 팽목항을 찾아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고 슬픔을 나누었다. 또한 문인들은 보다 많은 사람들과 슬픔을 공유하기 위하여 함께 책을 내기 시작했다. 시인 고은 외 68명이 참가한 시집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동시인‧동화작가‧그림작가 65명이 모여 쓰고 그린 󰡔세월호 이야기󰡕, 소설가 박민규 외 11인의 필자가 써낸 산문집 󰡔눈먼 자들의 국가󰡕가 대표적이다. 이 책들의 의미는 공감능력이 훼손되지 않기 위한 공감교육의 실천일 것이다. 슬픔의 공감 없이는 아무리 사건을 이해하려 해도 사건의 본질에 다가갈 수 없다. 결국 이것은 문인들이 세월호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노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가장 먼저 발간된 것은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이다. 작년 7월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된 이 시집은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공연에서 유족들에게 전달됐다.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구체적인 사건발생경위가 아니라 도처에 가득한 슬픔이다. 송경동 시인의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와 신철규 시인의 ｢검은 방｣의 부분을 읽어보자. “세상 전체가 기울고 있고 침몰해가고 있다/ 그 잔혹한 생존의 난바다 속에서/ 사람들의 생목숨이 수장당했다/ 그런데도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돌려 말하지 마라/ 이 구조 전체가 단죄받아야 한다/ 사회 전체의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해변에 맨발로 서 있던 유가족/ 맨살로 닿을 수 없는 거리가 얼어붙게 만들었다/ 죽을 때까지 악몽을 꾸어야 하는 사람들의 뒷모습/ 학살은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꾸는 악몽 같은 것”.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에 수록된 모든 시에는 절규와 분노 그리고 무엇보다 슬픔이 충만하다. 시에서 그 슬픔은 생존자 및 유가족들에게는 특수한 것이고,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는 보편적인 것으로 표현되었다. 당사자의 개별적 슬픔과 목격자의 공통적 슬픔이 모여 하나의 시집으로 묶인 것이다.


󰡔세월호 이야기󰡕는 9월에 별숲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동시인과 동화작가 및 그림작가들이 광화문 광장에 현수막으로 내걸었던 글과 그림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김하은 글, 김말랑 그림의 ｢내 약속｣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다시는 우리 언니처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요./ 나는 잊지 않고 지켜볼 거예요. 내 친구들도 그러겠다고 나랑 새끼손가락을 걸었어요. 언니도 바람이 되고 별이 되어 우리를 지켜볼 거예요.” 빠져나오지 못한 아이들을 바람과 별에 비유함으로써 그들 생명의 아름다움을 존중하고 남은 자들을 위로하는 한편, 그들과의 동행을 상상함으로써 비슷한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막겠다는 의지를 얻는 약속의 장면이다. 전경남 글, 이억배 그림의 ｢환생꽃｣을 보자. “죽지 않는 절대 죽지 않는/ 배가 뒤집혀도 살아나는/ 그래서 웃고 떠들고 랩 하고 춤추고/ 다시 밥 먹을 수 있는/ 환생꽃 따러 가요, 바다로/ 검어 짙고 캄캄한 바닷속으로 가요.” 사망자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염원하며 그들에게 다가갈 것을 말하지만 바다의 어둠은 여전하다. 󰡔세월호 이야기󰡕는 상처의 치유와 슬픔의 승화를 말한다. 그것은 슬픔에서 벗어나라는 억압적 명령이 아니라 슬픔을 안고 기억함으로써 동일한 슬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자는 제안과 염원이다.


󰡔눈먼 자들의 국가󰡕는 작년 10월에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산문집이다. 󰡔문학동네󰡕 2014년 여름호와 가을호에 게재된 글을 엮은 것이다. 여기서는 세월호 사건에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조직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작가들의 글이 수록되었다. 편집주간 신형철 편집위원은 “감성적 언어만이 아니라 논리적 언어도 구사할 수 있을 만한 작가를 섭외”했다고 말했다. 박민규 소설가는 ｢눈먼 자들의 국가｣에서 사건과 사고를 구분했다. 세월호 사건이 하나의 교통사고로 치부되는 나라가 눈먼 자들의 국가인 셈이다. 세월호가 바다에서 침몰할 때 거기서 사람들을 구해내지 못한 사건에 대해서 인지할 수 없다면, 결국 4‧16은 숱한 접촉사고처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힐 것이다.


아직 출간되지 않았지만 추모소설집 작업도 진행중이다. 최인석·전성태·이평재·이명랑·방민호 등 16명의 작가가 작품을 쓰는 중이며, 이 작품집은 세월호 1주기인 4월16일쯤 예옥출판사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문인들의 304낭독회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슬픔에 공감할 수 없는 순간, 대면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건은 처리하고 잊어버려야 하는 사고로 전락하고 만다. 슬픔마저 상실한 시대에 살지 않기 위해서, 무엇이든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문인들은 노력하고 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7 16:18: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