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학은 기업의 하청업체가 아니다



교육부는 올해부터 ‘산업수요중심 정원조정 선도대학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취업률을 근거로 대학의 학과를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보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학령인구 감소시대를 맞이한 대학의 위기를 예체능과 인문사회계열 및 사범대학, 그리고 기초학문의 토대를 희생시켜서 넘기겠다는 뜻이다. 지난달 22일 건국대는 전공 10개를 통합하고 학부제를 대형학과제로 전환하겠다고 밝혀 이에 반발한 유명 연예인들이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지식기반사회가 이미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철지난 공업사회적 사고방식에 얽매여 인문학과 기초학문을 내팽개치고 있는 이 와중에 27일자 조선일보는 졸업생 대다수가 실업자가 되는 안타까운 현실의 대안이 대학의 친기업적 친자본적 개혁이라 주장하는 사설을 실었다. 그러나 청년실업 문제가 대두된 이유는 대학이 그간 친자본적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청년들이 입사할 좋은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사람을 먼저 뽑은 다음 그들을 키우고 그들과 함께 사업을 기획하는 인격적 공동체의 문화를 포기한 지 이미 오래다. 특별한 견제가 없는 한 사업을 먼저 기획하고 그에 맞춰서 적당한 숫자의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것이 기업의 생리이다. 입사시험은 객관적 기준만 넘기면 누구든 합격할 수 있는 절대평가가 아니라 선출인원이 제한된 상대평가다. 대학에서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을 학생들에게 강제적으로 주입시키는 일이 성공할 수도 없겠지만, 설혹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그로인해 없었던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대학생들 모두가 아무리 청춘을 바쳐 스펙을 쌓는다 하더라도 청년실업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정말로 청년세대 전체의 실업문제를 국가적 차원에서 고민한다면 해결책은 대학개혁이 아니라 기업개혁에서 찾아야 한다.


물론 대학이 현재의 학과구조를 영원불변하는 것처럼 반드시 고집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수요에 맞춰서 대학이 혁신해야 한다는 지적도 일반론적으로 볼 때는 타당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연구와 교육의 역할을 수행하는 대학이 사회 전체에 가장 잘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단순한 기능인의 양산이 아니라 다양하고 정확한 지식생산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학개혁의 기준은 취업률이 아니라 보다 깊은 앎에 이르는데 있어서 현재의 학과구조가 적실한가 아니면 다소 경직되었는가에 대한 주의 깊은 판단으로부터 찾아야 한다. 그리고 대학이 생산한 깊고 정확한 지식은 기업이 사업을 기획하고 확장해 나가는 데 있어서 예상치 못했던 도움을 제공할 것이다. 대학은 이렇게 기업의 일자리 창출을 돕는다. 그러면 대학에서 창의적 지식의 생산법을 부족하게나마 체득한 학생들이 그 일자리를 꿰찰 것이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기는 선순환이 일어날 것이다. 대학은 기업이 신입사원교육을 통해 충분히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가르쳐야 한다. 우리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는 기업에 맞추려다가 대학이 가지고 있던 강점을 상실하는 것이 훨씬 더 치명적인 손해이다. 쉽사리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처할수록 요령을 피울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정공법으로 돌파해야 한다. 대학은 기업의 하청업체가 아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7 19:4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