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인터뷰] 현재의 실천과 만나는 기억을 위해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다시 4월이다. 지난 1년이라는 시간을 돌이켜본다. 그동안 믿을 수 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수없이 많은 말들이 오갔다.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가. 배는 여전히 차가운 바다 속에 잠겨 있다. 유가족들은 여전히 길 위에 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기억하며, 본지에서는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의 김익한 교수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김 교수는 그간 ‘세월호를 기억하는 시민네트워크(http://sewolho-archives.org)’를 이끄는 공동 대표로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모든 기록물들을 수집하고 보관하는 일을 진두지휘해왔다. 이렇게 수집한 자료들은 안산 고잔동에 자리한 ‘416 기억저장소’로 모인다. 온전히 시민들의 기부와 참여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명지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 일주일의 하루하고도 반나절 동안 안산에 내려가 지낸다고 했다. 연구실 컴퓨터 바로 뒤 벽에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416 기억저장소에 담긴 기억들

지난 2014년 8월에 문을 연 416 기억저장소 1관에 이어, 새롭게 개관하는 2관에서는 4월 2일부터 두 달간 개관 전시회가 진행된다. <아이들의 방>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 첫 번째 기획 전시에서는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학생들의 빈 방을 찍은 사진들이 전시된다. “416 기억저장소 1관이 유가족을 중심으로 한 커뮤티니를 위한 공간이었다면, 2관은 시민들과 소통하고 만나는 공간으로 기획하였습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아이들의 집을 직접 방문하여 아이들이 생전에 쓰고 그렸던 일기, 그림, 편지들, 아이들의 사진, 사용했던 물건들을 수집했습니다. 수집된 것들을 보니 그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이었는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던 아이들이었는지 생생하게 읽을 수 있었다고 할까요. 그러고 나니 저 자신조차도 우리 집에 있는 제 아이들을 마냥 예전처럼 대할 수 없겠더군요. 그 아이들이 가진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김 교수는 416 기억저장소라는 공간을 통해, 많은 이들이 참사의 기록들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참사 이후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바다에서 건져 올린 아이들의 트렁크를 봤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안에서 진흙으로 범벅이 된 옷가지들이 뒤엉켜 나왔지요. 죽음이라는 사건의 현장감과 처참함이 생생하게 다가왔던 순간이었습니다. 제도적이고 교훈적인 차원에서 기억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처참하게 파괴된 실존들과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체험을 통해 그것을 진정으로 기억하는 일입니다. 참사의 기록물들은 그러한 기억을 저장하고 소환하기 위한 중요한 재료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세월호 참사 당시 배 안에서 소방 호스로 학생들을 구출하여 일명 ‘파란바지 영웅’으로 회자되었던 김동수 씨가 최근 자살을 시도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다. 그는 “세월호를 잊을 수 없는데 계속 잊으라고 말하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라는 전대미문의 충격적 사건을 체험한 이들에게 기억과 망각의 문제는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김 교수는 사건 이후 다양한 매체를 통해 ‘기억의 문제’에 대해 강조해왔다. “기억이라는 화두는 자칫 모호하고 추상적인 차원에만 머무를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는 개념입니다. 우리에게 남는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현재적 필요와 결합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416 참사의 기억을 단순히 슬픔이나 충격과도 같은 일차적 감정의 기억으로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어떠한 실천을 촉발하는 기억, 자신의 실천적 의지와 연결되는 기억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것이 416 참사를 겪고 지켜보면서 우리가 갖게 된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한 길입니다. 예를 들어 이 사건을 통해 극단적 물신화주의의 폐해를 목격했다면, 돈이라는 가치가 내 삶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 재고해보는 길로 나아갈 수 있지요. 또 참사 이후의 정부의 행태를 기억할 때, 지금 나의 정치적 참여 행위가 변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진정한 기억이란 나의 일상 속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기폭제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안산 고잔동에서는 416 기억저장소를 베이스 캠프로 삼아 유가족들이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진행되고 있다. 시민들이 직접 그들의 삶에 동참하여 자본주의적 소비 패턴에서 벗어난 마을 공동체와 협동조합을 구성해보고자 하는 일이다. 또한 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답사 코스도 기획 중에 있다. 이름 하여 ‘416 기억과 약속의 길’이다. 참사와 관련된 장소들을 직접 걸으며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함이다. 김 교수는 사건 이후, 학자로서 ‘역사’라는 개념을 새롭게 구성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역사를 해석하여 서술하는 행위에 회의를 느낍니다. 고정적이고 자의적인 역사가의 서술이 아닌, 현재 여기에 존재하는 실존들이 만들어내는 서사로 이루어지는 역사, 참여에 의해 만들어지는 역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억저장소처럼 장소가 실제 있어야 하고, 실체가 뚜렷한 사료들이 저장되어야 하고, 사람들이 모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대학원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자신의 세부 전공이라는 협소한 틀에 속박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실천의지입니다. 자신이 참여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해 좀 더 넓게 사고해주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묻곤 합니다. 세월호와 관련하여 자신이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는 그분들께 ‘일단 시간을 내라’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삶 속에서 일정 시간을 할애하여, 안산에 내려가 사건 현장과 유가족들을 직접 대면하기를 바랍니다. 짧은 시간이라도 좋습니다. 지금 그곳에서는 전국에서 모인 자원봉사자들과 재능기부자들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세부 전공의 연구자이기 이전에 한 사회의 지식인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기를 바랍니다. 살아 움직이는 지식인이 되십시오.”
  



인터뷰 : 최은혜, 신아현 기자
정리 : 신아현 기자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7 21:1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