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우칼럼] 덕유산(德裕山)을 다녀와서



우재완(국어교육학과 석사과정)

  


난생 처음 칼럼이라는 생소한 장르의 원고를 청탁받고 보니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막막한 것이, 평소 한 페이지 분량의 원고를 제출할 만큼의 생각도 없이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전공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다면,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문장으로 문학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려 하겠으나, 이에 머뭇거리고 있음은 독자 여러분들께서 같은 대학원생이라면 공감하는 바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다만 내가 재미있게 다녀온 여행 이야기나 하며 쉬어가는 코너로 꾸며볼 수밖에 없음을 부끄러워하며 이 글을 시작한다.



  얼마 전 나는 대학 친구들과 종주여행을 다녀왔다. 이를 계획할 당시 나는 준비하고 있는 시험이 있어 모든 일정의 권한을 친구들에게 위임해 놓은 상태였고, 친구들은 종주의 계획을 통보해왔다. 많은 내용들이 있었는데 나에게는 유독 덕유산(德裕山)이라는 이름의 의미가 눈에 띄었다.



  덕유산(德裕山). 덕이 많고 너그러운 모산(母山)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막상 등정을 시작해 보면 이 포근한 명칭은 곧 의아함을 자아낸다. 첫째, 12시간의 종주 코스 중 약수터는 단 두 곳, 게다가 약수터 앞에는 식수의 사용을 금(禁)하라는 내용의 경고 문구가 붙어있어 상당한 양의 물을 챙겨오지 않는 이상 ‘갈증의 늪’은 필연적이다. 둘째, 등정로는 매우 좁고 가파르며 곳곳은 로프에 의지하여 가야할 만큼 험하다. 이러한 이유로 덕유산은 항일운동의 격전지로, 의병들의 성지로 그 역할을 감당한바, 길이 이렇다보니 운동을 게을리 하던 나는 7개의 봉우리 중 불과 세 번째 봉우리(무룡산)에서 여지없이 다리의 통증을 느끼게 된 것이다. 친구들의 마사지를 받으며 나는 앞의 두 가지 이유를 근거로 들며 덕유산의 무덕(無德)함에 대한 아이러니를 비난, 이에 덕유산을 덕무산(德無山)으로 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등정을 지속하다보니 오히려 그 속에 덕유산의 덕(德)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실, 덕유산의 첫 번째 봉우리인 남덕유산을 오를 때만해도 아름다운 풍경 속에 나 자신이 세상의 중심인 양 느껴졌으며, 나의 건강에 대한 자부심 또한 오만하게 흘러 넘쳤다. 그러나 두 번째 봉우리(약수터가 있는 삿갓봉)에서 예상과 달리 식수를 충전하지 못한 당혹감, 세 번째 봉우리(무룡산)에서의 체력적 한계는 금세 나라는 ‘존재의 가벼움’을 자각하게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마지막 목적지인 향적봉에 이르고 보니,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라도 결국에는 이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동시에 앞서 느꼈던 나의 나약함에 대한 겸손함이 솟아올랐으며, 이것이야말로 과연 종주의 과정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덕유산의 참 모습, 참 가르침이리라 생각했다.


세상을 향하여 자신있게 대면하고, 나 스스로는 겸손함을 간직하자.


  세상을 살다보면 함께 공존할 때 빛나는 대상들이 하나의 대상에 굴복하여 그 빛을 잃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살펴볼 수 있는데, 자신감과 겸손함 또한 이 범주에 속하는 예가 아닌가 한다. 자신감의 팽창에 겸손함이 종속되어 그 빛을 잃으면 이는 곧 오만함으로 변질되기가 쉽고, 자신감이 결여된 겸손함은 말 그대로 소극적 태도의 온상이 되기 십상이므로, 이 둘의 균형과 조화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에 나는 향적봉의 정상에서 덕유산의 메시지를 곱씹으며, 덕유산을 비난했던 나의 태도를 머쓱해 했던 것이다.



  나는 아직 설악산은 산행해보지 못했지만, ‘설악이라는 책은 여러 번 읽어도 같은 페이지가 반복되는 일이 없다’고 할 만큼 그 모습이 다양하다고 한다. 내가 만난 덕유 또한 여러 모습 중의 일면으로, 책으로 따지자면 그 첫 페이지도 장식하지 못할 것이나 이는 필시 지성인으로서의 삶을 사는데 나침반이 되어줄 가르침이라 생각하여 이렇게 그 일각이나마 여러분들과 값없이 나누고자 하는 바이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7 15:5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