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칼럼]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



민족의 명절 구정이 지났다. 귀성길에 오른 사람들은 가족을 만나 한 바탕 이야기를 풀어놓았을 것이다. 결혼 적령기에 있을 대학원생들 중 상당수는 부모로부터, 친지들로부터, 혹은 지인들로부터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연인은 있는지, 혼인 상대는 있는지, 향후 계획은 있는지에 대해 묻고 답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이런 질문을 들었을 때 곤란한 사람들은 많겠지만 그들 중에 특히나 곤경을 겪어야 하는 자들이 있다. 바로 게이나 레즈비언, 혹은 트랜스젠더와 같은 성적 소수자들이다. 이들에게 전해지는 연애나 결혼에 관한 질문들은 더욱이 난처하고 가혹하다.


동성의 연인을 가진 사람은 가족들에 대해 자신을 잠재적 가해자로 느낄 수 있다. 커밍아웃을 할 경우 가족들이 상처를 입게 될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자신의 연인을 사랑하는 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가해 행동으로 느껴질 만한 상황이 주는 고통은 실로 안타깝다. 실제로 동성애자 중 상당수가 우울증이나 알콜 의존증을 겪고 있으며 심하면 자살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페르소나를 가지기 마련이라지만 자신의 맨얼굴이 용납되는 경험을 하는 것은 안정적인 자기 정체성 형성에 필수적이다.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눈총과 질타를 받는 곳에서 개인이 건강한 주체로 성장하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성적 소수자들은 그러한 난관을 돌파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나가고 있다. 스스로가 버팀목이 되어 사회의 압력을 견뎌내는 이들에게 우리는 박수를 보내야 한다. 비단 유명인들의 커밍아웃만이 주목 받아야 할 사건이 아니다. 자신의 사랑을 온 힘을 다해 지켜나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격려하고 지지해야 한다.


인간의 자유에 대해 성찰했던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는 사랑이란 외적 원인의 관념을 동반하는 기쁨이라 했다. 슬픔은 우리를 축소시키지만 기쁨은 우리를 확장시킨다. 사랑은 대상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인간이 더 큰 완전성을 향하게 하는 숭고한 감정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동자는 순하고 세계를 아름답게 변화시킨다. 그런 사람이 스스로를 잠재적 가해자로 느끼게 되는 것은 비극이다. 그들의 사랑의 힘이 좌절되거나 꺾이도록, 혹은 슬픔과 위축의 경험으로 고착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선민서 기자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7 15:5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