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읽기] 프랑스혁명 이후 국민국가 시대의 전쟁이론


클라우제비츠. 칼, <전쟁론>, 유제승 옮김, 책세상, 1832(1998).



프로이센의 군인이자 전쟁이론가였던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군사이론의 고전일 뿐만 아니라 많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에게 유명한 테제 즉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다’를 제기한 책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현대의 어떤 이론가는 이를 뒤집어서 ‘정치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의 연속이다’라고 주장했고, 이 주장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기도 했다. 그런데 클라우제비츠의 이 책은 단순히 군인들이나 읽어야 할 군사이론서 혹은 생각할만한 명제 하나를 제시한 책 정도로 치부될 수 없는 더 많은 통찰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이 글은 당대의 시대상과 저자의 경험에 주목해서, 책 전체를 통해 클라우제비츠가 제기한 여러 논점들 중 필자와 같은 일반인들이 상대적으로 간과해온 하나에 주목하려 한다. 그것은 바로 저자가 전쟁에 있어서 핵심적인 것이라고 강조한 국가와 정신력이다.




숙적 프랑스 군과 국민군대의 에너지


클라우제비츠는 1780년에 태어나 1831년 숨을 거두었다. 1832년에 출간되었다는 이 책은 유고작인 셈이다. 프로이센에서 활동했지만, 그는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서 살았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혁명이 확립시킨 상비군 제도를 통해 만들어진 프랑스 군대와의 대결이 그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1789년 혁명 이후 프랑스 군대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모토 아래 국민국가의 군대가 되어서 유럽을 휩쓸었다. 후대인들에게 포병술을 통해 전쟁전술의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는 나폴레옹은 예의 그 포병을 축으로 프로이센도 제패했다. 1795년 소위로 임관해서 군 생활을 하고 있었던 클라우제비츠는 1806년 프로이센의 붕괴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고, 그 자신도 프랑스 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후 약 10개월 동안 프랑스에 억류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 그는 군 생활을 계속하며 결국 나폴레옹의 패전을 목도하게 되었고, 숙적 프랑스 군을 무찌르는데 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패전과 억류생활의 기억은 씻을 수 없는 것이었던지, 생애 전체에 걸쳐 클라우제비츠는 패배의 원인들을 탐구하는 것과 프로이센 군을 개혁하는 문제에 몰입했다.


프랑스 군대와 싸우며 패전과 승전 모두를 경험했던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전쟁은 돌연히 국민의 관심사가 되었고, 자신을 국민으로 여기는 인구는 총 3천만 명이었다. … 모든 문제가 보나파르트에 의해 보완되었기 때문에 전체 국민의 에너지에 기반을 둔 프랑스군은 전체 유럽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군은 전통적인 유형의 군들을 상대로 승리에 대한 확신과 함께 전쟁을 수행했다. … 국민들이 전쟁이라는 중대한 국사에 참여했다”( 󰡔전쟁론󰡕 8편 ‘전쟁계획’ 중). 이 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클라우제비츠는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과 상비군이 가지는 힘, 그리고 이 요소들에서 파생된 프랑스 군대의 정신력이 당대 전쟁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라고 지적했던 것이다. 이러한 논점은 이 책의 역자해설에 간단히 소개된 그의 젊은 시절 논문인 1805년 글에서도 파악할 수 있다. 클라우제비츠는 이 글에서 전쟁을 지리적, 수학적으로만 분석하는 기존 이론을 비판하며, 전쟁이론은 병사들의 사기 및 지휘관의 심리와 같은 계량할 수 없는 요소들을 포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책의 구조


이 책을 읽어나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1편의 1장을 이해하는 것이다. 저자가 직접 서두에서 말하는 것처럼 1장이 전체 내용에 대해 일관된 방향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여느 독일 이론가들처럼 저자는 가장 근본적인 논리인 전쟁의 본질을 우선 제시한 후 마치 건축물을 쌓아가듯 구체적인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제시하며 전쟁의 총체에 접근해간다. 클라우제비츠는 기존의 전쟁이론이나 전략들이 논리적 필연성에 근거하고 있지 않으며, 개별 지휘관의 특정 사례들에만 의존하고,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잡담들로만 채워져 있다고 비판하며 이 책은 논리적 필연성과 구체적인 현실을 두루 갖춘 내적으로 일관된 것이라고 웅변한다.


책의 1편에서 저자는 전쟁을 ‘우리의 의지를 구현하기 위해 적을 강요하는 폭력행동’이라고 정의한다. 전쟁은 인간의지의 행위이고 전쟁의 목적은 나의 의지를 적에게 강요하는 것이고, 그 수단은 무기와 병사가 될 것이다. 이후 3장에서 지휘관과 기타 전쟁에서 발생하는 것들에 대해 논한 후 클라우제비츠는 2편 전쟁이론에서 전쟁술을 넓은 의미의 것과 좁은 의미의 것으로 구분하고 3편에서는 전략을 논한다. 전략을 논하는 데 있어서 그는 책의 다섯 개 장을 할애하여(3장부터 7장까지. 제목은 각각 ‘정신적 요인’, ‘주요 정신능력’, ‘군의 무덕’, ‘대담성’, ‘끈기’) 정신적 요인을 강조한다. 이 밖에도 책은 4편 전투, 5편 전투력, 6편 방어, 7편 전투력, 8편 전쟁계획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책세상 출판사에서 나온 번역판은 1편 1장과 8편은 완역을 했고, 나머지 부분은 발췌본을 원고로 번역을 했다고 한다.


군사이론에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 이 책은 따분하고 읽기 싫은 것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당대의 지성사에 초점을 두고 공부를 한다면, 혹은 이 책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와 같은 고대 서구의 전쟁을 다룬 고전과 비교를 해가며 읽는다면, 이 책은 이 글의 강조점을 크게 뛰어넘는, 그리고 여기에서 채 다루지 못한 많은 시사점들을 우리에게 줄 수 있을 것이다.




김경필(본교 사회학과 박사과정 수료)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7 16:3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