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우칼럼>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

박현익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인간은 죽음을 통해 실존에서 기억의 존재로 들어간다. 기억하는 이가 점점 줄어들다가 마침내 기억하는 이가 아무도 없게 되면, 죽은 사람은 완전한 무로 진입하게 된다. 완벽하게 잊혀지는 두려움. 거기에서 모든 종교와 예술을 비롯한 인간의 문화와 역사가 출발했을 것이다. 한 사학자는, 우리의 역사가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역사라고 말했다.

우리 현대사에서 기억되는 죽음들 중 주로 불의에 항거한 정의로운 죽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 그 자체를 기억하는 일은, 단순히 잊혀질 수 있는 어떤 사건으로서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이고, 이것은 남은 자들의 몫이다. 너무나 많은 죽음들이 기억되지 못하고 잊혀지는 시절이다.

사람이 쏜 물에 맞아 죽은 사람이 있다. 물을 쏜 자를 지휘한 자는, 물을 쏜 것은 정당했다고 말한다. 그가 물에 맞아 죽은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그의 시체를 부검하겠다고 한다. 죽음의 원인이 그 죽음의 의미를 결정한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그가 물에 맞아 바닥을 뒹구는 장면을 보고 "썰매타기"라고 말한 자도 있었다. 바닷물에 며칠 간 불어 있다 뭍으로 올라온 주검을 "오뎅"이라고 부른 자도 그들 중에 있었다.

죽음은 가벼워지다 못해 이제 웃음거리가 된 지 오래인 것이다. 죽음에 대한 조롱은 전적으로 산 자의 논리- 살아남은 자들의 논리이다. 그들에게 죽음은 인간의 보편적인 운명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에 따른 실패이다. 살아남지 못하고 왜 죽었는가. 왜 실패했는가. 왜 수학여행을 갔는가. 왜 사람이 많은 곳에 함께 모였는가.

실패한 자에 대한 낙인의 논리가 죽음에까지 이어지는 것은 실로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우리가 배운 약육강식의 논리 안에서 실패와 죽음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우리는 사회적 실패와 죽음을 이토록 비웃는 시대를 예상했는가? 이것도 무엇을 위한 하나의 과정인가?

야스퍼스는 인간이 갖는 형이상학적 책임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책임 중 가장 고차원적인, 윤리적인 책임이다. 그는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을지라도 단지 같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윤리적인 책임감을 느끼는 것. 그것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고 또 가져야 하는 감정이라고 보았다. 주어진 관계 없음 속에서 능동적으로 관계를 발견하는 것은 그대로 연대의 씨앗이며 가능성일 것이다. 우리는 다시 연대할 수 있을까? 함께 한다는 것은 개인의 취향 정도의 문제로 떨어져버린 것일까?

최소한의 연대, 최소한의 공감, 소통 등의 단어가 끊임없이 회자되는 것은 그 결핍과 갈급함을 동시에 드러내 주지만 그 출발점을 찾는 일은 여전히 우리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우리를 앞서간 수많은 망자들을 기억하고 위로하는 방식은 무엇일까? 우리는 죽음들을 잊은 것이 아니라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을 잊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애도의 방식은 조롱과 야유가 아니라 기억과 반성이라는 것.

이런 무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의 허위를 견딜 수 없다. 뭔가 사소한 이야기, 더 가벼운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다. 그러나, 안심해도 될 것 같다. 이미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가벼운 이야기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7 01:47:41: